나와 당신, 우리를 이어 살리는 “밥춤”
한국인에게는 ‘밥심’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어느 외국인이 바라본 관점에서도, 한국인들에게는 유난히도 ‘밥’을 중심으로 한 언어와 사고 체계가 특별히 발달되어 있다고 합니다.
‘밥벌이’를 해야 한다, ‘밥그릇’을 챙겨야 한다와 같은 관용어가 흔하게 쓰이듯 말이지요.
어느 나라에서든 먹고 사는 일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양식이겠지만,
그중 유난히도 ‘밥’에 대한 한국인의 애착이 강한 것은 우리 조상들의 애틋한 역사와 혼이 알알이 서려 있기 때문일지도요. 역사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결코 쉽지 않은 환경에서 투사의 정신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조상들에겐, 바로 그 밥 한 그릇을 위해 누군가는 상상도 못할 만큼 지난한 수고와 인내가 필요했음이 인에 박인 뼛가루가 지금 우리의 살과 피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렇게까지 거창한 의미로 굳이 파고들지 않아도, ‘밥’, 이 한 단어의 울림이 얼마나 정겹고 또 힘이 되는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마주하는 화려한 한 끼도 물론 소중하지만 한자리에 있어 온 지 오래된 식당에 세월이 굽이굽이 주름진 모습으로 정겹게 손님을 맞이해 주시는 어머니, 아버지가 차려 주시는 밥상 앞에선 저는 종종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지금 제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그저 밥, 그저 국이 아니고, 오랜 시간 오랜 세월 속의 이야기를 머리가 아니라 저 경이로운 ’몸‘으로 살아낸 이의 손끝에서야만이 우러나오는 그 어떤 혼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요. 그 땅과 바람과 몸의 기억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요. 분명, 주름진 손끝에는 그 어떤 화려한 기술과 지식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손맛'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주름진 밥상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건한 마음을, 저는 종종 길을 가다 마주치게 되는 모르는 얼굴들의 땀방울에서도 발견합니다. 땡볕 아래 교통 정리를 하고 있는 경찰 아저씨, 이만큼 높게 쌓인 짐들을 나르는 중인 택배 기사님, 음식물 쓰레기차를 운반하고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 주시는 환경 미화원 분들에게서··· 스치듯 지나가는 그분들의 표정과 몸짓 안에는 제가 다 헤아리지 못할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깨끗한 거리를 걸어, 오늘 내게 주어진 몫의 일을 하고, 상쾌한 계절의 바람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 설레는 마음으로 대문 앞에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 수고한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몫의 선물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나의 밥 한 끼,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당신의 밥 한 끼를 위해 우리가 하루하루 짓고 있는 몸짓 하나하나가 모여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삶을 감당하기 위해, 또 감당하는 걸 넘어 현현히 살아 있기 위해 추는 이 '밥춤'이 결국은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세상까지 밝히는 일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렇게 우리가 연결될 수 있도록 이루어진 이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나를 살리는 일이 곧 당신을 살리는 일이고, 당신을 살리기 위해 곧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눈물겨운 세계가 경이롭게 느껴지거든요. 그러므로 저는 오늘도, 저물어가는 녘 위에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딛고 서서 두 손을 모읍니다.
'제가 아는, 또 모르는 당신께. 오늘도, 당신 몫의 밥춤을, 당신만이 가진 추임새와 리듬으로, 당신만이 출 수 있는 모양으로 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당신이 아는, 또 모르는 저는 어제는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오늘의 선율에 몸을 맡겨 집으로 돌아갑니다.
당신이 가능하게 해 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러요.'
글: Editor LP
오늘이라는 무대에 올리는 삶이라는 춤
『밥․춤』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그림책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과 익숙함에 무심코 지나치는 삶의 순간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삶은 없고, 덕분에 오늘도 우리 동네는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그런데 밥벌이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리듬에 맞춘 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탁소 아주머니가 우아하게 팔다리를 뻗은 모습은 마치 발레의 아라베스크 동작 같고, 채소 가게 아주머니의 날렵하면서 부드러운 몸짓에 칼춤 동작이 겹쳐집니다. 숙련된 일꾼의 노련한 몸놀림은 마치 춤동작을 연상시킬 만큼 춤꾼의 동작과 통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이들의 소박한 몸짓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진솔한 춤인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세상은 날마다 춤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