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의 몸
있잖아, 종종 생각했었어
내가 지구가 아닌 어딘가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여기가 아닌 저곳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저 먼 곳이라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자잘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전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릴없이 바라면서 말야
그러다 어느 날 너를 만났어
너의 두 눈 안에,
나의 시들어 있던 눈길이 닿는 순간
나는 느꼈어, 어떤 섬광이 내 마음속을 가로지르는 것을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예쁜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전까진 감히 상상도 못했던 만큼 벅찬 기분이 되어서
나는 예감했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이곳의 차원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나는 바로 이곳에서
저 먼 곳이 아닌 지구에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그 모든 자잘한 것들을 축복하면서
아스라하게만 느껴지던 모든 것들을
생생한 손길로 어르고 또 어루만지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아는,
너를 안은 나로 말야
어쩌면 알았을까,
네 자그만 몸에 엮인 투명한 실은
내 뼈 마디마디마다
내 살 한 점 한 점마다 엮여 있어
너의 존재야말로 나를 노래하게 하는 현이 되리라고
매일 매 순간
전까진 그려 본 적 없는 새로운 노래를
처음엔 몰랐겠지,
그 노래도 언젠간 마디마디 낡아 시들 테고
제 몸처럼 외던 가사도 잊혀지겠지만
그래서 다시, 꿈 같은 오늘은
꿈처럼 머나먼 역사가 되겠지만
모르고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단다
오늘이 역사가 되기 위해 지나가야만 했을
우리 앞에 놓인 무수한 시간의 얼굴을
나는 처음처럼, 그때처럼
시간을 잊은 사람처럼
닳고 닳도록 사랑하리라는 것을
그 사랑으로 하여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저 먼 곳에
닿으리라는 것을
저곳이 아닌 이곳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너와 함께
글: Editor LP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존중과 경외의 인사!
작가는 ‘삶과 죽음’을 중력이의 ‘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어짐과 끊어짐’, 그리고 ‘속박과 자유’라는 의미를 담아 이야기한다. 많은 것들과의 ‘얽힘’이 때로는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얽힘’은 우리의 생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인연들과의 관계이고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주름진 아이가 지구를 떠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 우주의 반짝이는 별이 되는 장면에서 소중한 이와 이별하는 슬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얽힘’이 단지 속박이 아니라 소중한 연결이라는 걸 더욱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이 안에 삶에 대한 철학을 편안하게 그려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