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이
어느 날 아침 출근길
만원 버스에 올라, 사람들 틈에 끼어
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당신을 봤어요.
마음이 가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요.
포기하고 다음 차 타려는데
등 뒤로 어느 손이 닿아 오더니
단숨에 나를 칸 안으로 밀어주었지요.
놀라서 돌아보니
당신이었어요.
이거 타고 먼저 가라고
가는 길 만들어 주겠다며
기합 넣고 등을 팍팍 밀어주던
막 처음 본 당신의 얼굴.
왜 그리 내게 힘을 내주었어요. 벅차게.
어느 날 밤 퇴근길
하루치 기운을 다 쏟고 나서
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당신을 봤어요.
노란색 점포 불빛 속에서
어둔 골목길 안쪽까지 닿아 오던 음식 냄새와 그릇 소리.
이미 밤이 깊었는데, 밥을 짓고 문을 열어 두었지요.
밥은 먹고 오는 거냐고
말을 걸어 주었지요.
막 처음 들은 당신의 소리,
방금까지 배 채울 생각일랑 없었는데
왜 그리 손맛이 좋아요, 따뜻하게.
당신이 날마다 손수 일군 밭.
난 걸음 한 번 한 적 없이 살았지요.
한 날엔 농사지어 난 땅콩이며 감자와 상추들
품에 안고 나를 찾아와 준 당신을 봤어요.
땅콩은 강한 불에 볶고 상추는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
든든히 싸 주는 당신.
왜 이리 수고스런 일을 해요, 미안하게.
하나둘 세어 가며 살아 보니
여기저기 당신들의 손길이 참 많아서
마음이 놓여요.
지켜 주어 고마워요.
내가 당신을 보았을 때,
당신도 나를 보았겠지요.
이번엔 나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처럼.
글: Editor 영
산 아랫마을, 마지막 남은 세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동물들의 특별한 이야기
자식들 이름 따라 진수네, 경애네, 숙자네…
오늘은 잊었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마을에 남은 마지막 주인인 세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비밀 임무를 펼치는 산짐승들의 이야기. 주름진 할머니의 손길과 역동적인 동물들의 움직임이 손끝에 느껴질 듯한 부드러운 시골 풍경 속에 넋 놓고 머무르다 보면, 어디선가 산메아리가 울린다. 우리에게도 텅 빈 땅이, 가슴 한 구석 시큰해지는 이름이 있지 않느냐고. 이제는 그 땅의 계절들을 힘껏 일구며, 그 이름 힘껏 부르며 살아가 보지 않겠냐고. 때론 시끄럽고 때론 속 깊은 몸짓을 주고받으며 우리 함께 ‘비밀 결사대’가 되어 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