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감기약』 X 할머니표 달걀찜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때의 일입니다.
부엌 김치냉장고 옆의 구석에 앉아 작은 시위를 했었죠.
‘할머니는 싫엇! 엄마한테 갈랫!’
꼼짝 않고 똥 씹은 표정을 한 채 바삐 움직이는 할머니를 바라보곤 했어요.
할머니는 홀로 식당을 했는데, 아침엔 장사를 하는 곳에서 밤이면 이불을 펴고 잠을 잤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손님들의 신발로 닳던 문지방, 이리저리 펴고 접던 밥상들, 음식을 담아 나르던 냄비와 접시들, 그 사이를 누비다 간간이 숨을 고르듯 제 이마를 쓸어 주던 할머니의 물기 어린 손.
할머니의 이마엔 땀이 송골 맺혀 있었지요.
손님들이 떠나면 휑한 식당, 아니 집에서 할머니가 늦은 저녁상을 차립니다.
밥그릇 두 개와 나물 반찬 몇 가지가 올라간 작은 상을 두고 단둘이서 마주 앉으면, 토라진 저를 두고 애꿎은 숟가락을 만지작만지작하는 할머니.
‘콩나물 싫으면 계란 같은 거 부쳐 주믄 먹을 텨?’
제가 입 꾹 닫고 깨작깨작 밥알만 세니 할머니는 부엌 가스레인지 앞에 섭니다.
‘할머니 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돼? 방학 숙제 때문에 그래.
안 해 가면 혼나는데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야.’
이번엔 할머니가 입을 꾹 다뭅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제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건 한 입도 안 먹어야겠다며 자세를 고쳐 앉는데 눈앞에 놓이는 접시 위 노르스름한 것.
달걀프라이보다 부드럽고 말랑말랑 포슬포슬한 동그라미. 바로 갓 쪄 낸 달걀찜이었답니다.
따끈한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달걀 속에, 달달 고소한 할머니표 간장을 함께 곁들여 먹으면 진짜 맛있걸랑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입 두입 떠먹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지요.
무엇이든 특별할 것 없이, 별일 아니라며 툭툭 일어나 뚝딱 만들어 내어 주던 할머니의 손.
그 안에 깃든 안심되는 맛.
제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마다 할머니는 말하곤 했지요.
‘할미한테 말해 봐. 할미가 해 주믄 되지.’
그러다 문득 자다가 먹다가 엄마가 그리워져 끙끙대면 할머니는 암말 없이 그저 옆에 있어 주었지요.
당신께 쉬이 곁을 주지 않더라도 어린 손주 마음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요.
내 엄마의 엄마, 할머니이니까요.
토라진 손주 마음 사르르 녹여 주는
할머니의 손맛 레시피
1. 달걀에 우유를 넣고 잘 섞어 가며 풀어 줍니다. (맛술과 참치 액젓을 조금 넣어 주어도 맛나요.)
2. 푼 달걀에 물을 조금 넣어 채에 한 번 거르면 더욱 부드럽고 매끄러운 달걀찜을 만들 수 있어요. (번거로우면 패스!~)
3. 냄비나 뚝배기에 담아 가스레인지 혹은 인덕션으로 익혀도 되지만, 찜기로 7~9분 정도 쪄 내면 탱글한 푸딩 식감이 됩니다. (불이나 열로 다 익히면 둥근 공처럼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 되고요!)
4. 함께 곁들일 양념도 필수!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양조간장을 넣어 약불로 살짝 졸여 주면 달달하고 고소한 소스가 완성됩니다. (설탕이나 소금, 케첩, 양념치킨 소스를 곁들여도 엄지 척 찰떡궁합!)
글: Editor 영
얼어붙은 겨울을
사르르 녹여 준 할머니의 사랑
김희주 작가의 첫 그림책, 『할머니의 감기약』은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어느 찬 겨울날이, 할머니가 지어준 따뜻한 생강차 한 잔에 스르르 녹아 품어지는 모양을 이토록이나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려냈습니다. 아이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한 겨울 풍경과 움츠러든 어깨를 포옥 안아주는 할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운 색채가 스며든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우리는 꼭 두터운 할머니 이불에 폭 감싸인 것만 같은 기분이 됩니다. 이 겨울, 우리가 꼭 필요로 했던 사랑이 바로 여기, 할머니의 생강차 한 잔에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