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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Apr 29. 2021

만인의 전망을 위하여.

'서울로 7017'


나는 서울 토박이야. 태어나길 서울에서 태어났고, 군대 시절외에는 서울을 크게 벗어나본 적이 없어. 그런데 최근에서야 서울로 7017을 갔어. 물론 차량 통행으로는 많이 해봤겠지만, 사람의 길로 바뀐 이후로 걷는 목적으로 가본 건 처음이었어. 저녁 약속이 서부서울역에서 만난 덕분에, 약속을 파한 이후에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던 거지.



근데 참 낯설었어. 여긴 원래 자동차의 길인데, 내가 이렇게 천천히 걷고 있다니 말이야. 그리고 속력을 내어 달리지 않고, 서울 밤 한가운데에 공중에 멈춰있는다는 건 기묘한 경험이야. 자동차 창 밖에서만 휙휙 지나가던 야경이, 이제는 정지된 야경으로 즐길 수 있으니 좋은 곳인 것 같아


걷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야경에 대한 양극화야. 여기서 야경이라함은 불야성의 도심이 만들어낸 일련의 불빛들이 대부분이야. 높은 곳일수록 더 넓게 볼 수 있고, 도심에 가까이 있을수록 우린 찬란한 불빛의 행진을 볼 수 있어. 



이런 전망 좋은 야경은 동등하게 허락하지 않아. 야경을 보려면 보통 뷰가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하거나, 전망대와 같은 곳에 돈을 주고 오르거나, 밤에 비행기를 타야만 볼 수 있어. 그것도 아니라면 고층빌딩에서 야근을 한다면 또 볼 수 있겠지. 정리해본다면, 어디에 속해있거나, 일정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이상 높은 곳에서 경치 좋은 야경을 보기는 다소 어렵다는거지.(적어도 한국에서는)



출처_tvn 알쓸신잡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유현준 교수가 한 말 중에 '건축은 높을수록 권력을 상징한다'는 말이 생각났어. 그러니까 높은 것을 쌓는 것은 권력의 과시라는 것이지. 더 나아가 보면 우리가 굳이 전망 좋은 곳을 찾고 돈을 내서 보는 이유는 경치도 경치이지만, 우리가 권력을 표출하고 싶으면서 동경한다는 것이지. 이를 '앙망(仰望)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


웃기지. 높은 곳의 밤 풍경을 보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값을 매기니 말이야. 그래서 서울로 7017이 대단했어. 입장료 하나 받는 것 없이, 우린 여기서 누구에게나 똑같은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으니 말이야. 조금 과하게 이야기한다면, 자동차와 효율을 위한 도시에서 이제는 사람을 위한 도시로 진일보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어.


씁쓸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여기라도 있으니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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