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라니 Feb 04. 2021

점심, 쌈밥을 먹으며.

요즘 에세이



어제 점심으로 쌈밥을 먹었어. 잘하는 쌈밥집에 간 건 아니고, 집에 어제 사둔 쌈채소가 있었기 때문이지. 보통 쌈밥집에 가면 고기랑 같이 먹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그러진 않았어. 부대끼기 싫었거든. 그냥 엄마가 냉이를 넣고 끓인 진한 된장찌개에 김치랑 해서 먹었지.


쌈이란 식문화는 기발해. 어느 나라를 가든 잎에다가 밥을 싸먹는 건 잘 없대. 그리고 싸먹는 이파리도 종류도 여럿되잖아. 상추랑 깻잎 말고도 신선초, 호박잎, 겨자채....아, 오늘 먹은 건 곤달비였어. 생긴건 곰취랑 비슷한데 좀 작아. 향도 곰취만 못하긴 한데, 나는 그래도 좋았어.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종종 밥과 싸서 입에 한가득 풋풋한 향을 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야.


조선에 이덕무라는 사람이 <사소절>에서 양반의 식사예절 중에 쌈밥에 관한 대목을 썼는데, '쌈스플레인'이 참 가관이야. 양반은 쌈을 손을 대고 싸서는 안되고, 입 또한 크게 벌려서는 안된다고 적혀있대. 맛있게 먹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격을 잃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솔직히 양반은 쌈 먹지 말라는 소리겠지. 


이렇게 쌈밥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건, 점심에 쌈밥을 먹는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먹던 점심때가 생각났기 때문이야.


출처 - 양치기


회사에선 식대를 지원해주었지만, 그런데 나는 얼마 안가 편의점으로 가버렸어. 이유는 식사자리에서 직장 내의 '누군가'를 의식하여 먹는다는 건 실로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야. 언제는 점심때, 이사님과 볶음밥을 먹으면서 30분 내내 자신의 종교지론에 관한 강의를 들어야했어. 다른 날은 광고주한테 열 받은 상사가 쏟아대는 뒷담마저도 온전히 듣기도 해야했지. 그러면서 내 점심시간은 '인정해주지 않는' 노동 시간이 되어버린거야. 그래서 나는 혼밥을 할 수 밖에 없었지.


그리고 점심 메뉴의 '사막화'가 나를 혼밥의 편의점으로 이끈것도 있어. 정말 물이 없는 사막이라기보다는 소금과 밀가루로 가득한 식단이 마치 사막처럼 보였어. 점심은 대부분 튀김, 덮밥, 고기, 밀가루 같은 것들로 일주일을 거의 채워버렸거든. 물론 점심메뉴가 통일이 아니라, 여러갈래로 나뉘어서 가긴 했지만, 어딜 가도 채소는 보기 어려웠어. 매일 채소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내 점심에 밀가루 사막화는 버겁더라고. 싱싱하고 물기 가득한 음식이라고는 김밥천국의 김밥 밖에는 찾을 수 없었어. 그래서였는지 편의점 샐러드가 궁여지책으로 먹게 되었어. 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겠더라고.


출처 - 구글


그리고 이제서야 누구 눈치 없이 편하게 양손 바삐 움직이며 쌈밥을 먹고 있어. 뭘 싸먹든 간섭받지 않고, 그냥 싱싱함을 오롯이 먹을 수 있어서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야. 이렇게 혼자 양손 바쁘게 쌈밥을 사먹는 걸 보면, 반사회적 인간인지 의심도 들지만, 괜찮아. 내 취향이 누군가를 해치지는 않을 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차포떼고 이기라고 하시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