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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an 28. 2021

그랜저 광고는 왜 차를 팔지 않을까?

2020 & 2021 성공에 관하여



연초마다 나오는 그랜저 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무언가를 판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마치 공익광고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착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옳고 바른 것을 광고에 담았습니다. 창의적이긴 하지만,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왜 그랜저는 차를 팔지 않고, 공익적인 스토리를 담았을까요?





그랜저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지금 10대에겐 생소하겠지만, 90년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각그랜저'의 위상을 아실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랜저하면 '고급', '품격'에 대한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있습니다. 이런 신문기사도 있을정도였으니까요.


'평교사들이 뉴그랜저를 비롯한 고급승용차를 운행,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 조선일보(1994.03.13)


이처럼 그랜저는 원래부터 포지셔닝이 잘 된 브랜드입니다. 1986년에 나온 그랜저는 구매력이 충분한 부유층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고급세단이었습니다. 외제차의 수입이 본격화되지 않은터라, 고급 세단하면 그랜저를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경쟁자가 없는, 독점 아닌 독점의 시장인 것이죠. 그래서 당시 부의 과시를 넘어서 성공의 상징으로까지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2009, 현대차)


그러나 2000년대부터 외제차의 등장, 고급차 시장 경쟁의 가열로 그랜저 본래의 포지셔닝이 흔들리게 됩니다. 쉽게 얘기해서 성공의 상징이 그랜저에서 외제차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위의 영상처럼 성공에 대한 어필을 하더라도, 유효하지 못합니다. 점잖고, 세련된 마치 잘 나가는 사장님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광고들이 너나 할 것없이 넘쳐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쟁에서는 항상 차별성이 있어야 살아남습니다. 모두가 다 똑같은 것을 얘기할 때 다른 셀링 포인트가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차가 상징성과 캐릭터를 얘기할 때, 이제 그랜저는 다른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랜저, Great again


"우리 이 다음에 성공하면 뭐할까?  그랜저 사야지." (2019, 현대차)


그랜저는 과거 자신의 브랜드에 가진 인식들, 소비자의 말들을 되짚어봅니다. '그랜저=성공'이라고 연상할 수 있었던 이미지를 다시 광고에 등장 시켜줍니다. 이게 요즘와서 먹힐 것 같냐구요? 네. 승산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그랜저를 구매하려는 타겟 자체가 이미 '각그랜저'의 기억이 있는 30대 후반, 40대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브랜드의 인지가 있는 타겟이기에, 구태여 연결시키지 않고 회상만 시켜줘도 그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연상됩니다.


이것을 광고학에서는 점화라고 합니다. 어떤 개념에 대해서 머릿 속에 산재되어있을때에, 마치 불씨 하나만 켜주면 관련된 이미지와 개념들이 연이어 연상되는 것 말입니다. 과거 남아있던 '성공의 상징'을 다시금 그 때를 아는 타겟에게 점화시킴으로써, 성공한 사람들의 차로 인식시키려고 한 것이죠.


사람들은 의외로 경험에 의존적입니다. 낯선것, 생소한것에는 경계하고 과거에 긍정적이었던 경험에 대해서는 호의적입니다. 소위 '믿고 본다', '믿고 거른다'와 같은 행동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의 혹은 타의의 경험을 기반으로한 소비자 행동입니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 호의적인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다시금 옛날의 위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포부가 담겨있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그랜저, 2021년의 성공을 말한다.



그랜저는 '성공에 관하여'라는 캠페인을 작년과 올해에 연이어 진행하였습니다. 고급, 품격, 명품에 대한 장신구는 내려놓고, 그랜저만이 말할 수 있는'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급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었지만, 성공이라는 고유의 스토리는 그랜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이런 성공이라는 키워드 위에 '착함', '바름' 을 이야기합니다. 작년에는 성공의 다양한 형태에 주목했다면 올해는 성공을 위한 품격과 자세에 관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환경, 유기견, 올바름과 같은 키워드가 이번 광고의 키워드였는데요. 공익광고는 아니지만, 책임과 도덕에 대해서 격조있게 잘 다루었습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자동차 광고가 이런 도덕까지 이야기할까요?


저는 이것을 브랜드자산과 관련있다 생각합니다. 광고에서는 브랜드라는 것이 단순히 이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 힘, 광고에서 했던 말 하나하나가 다 브랜드 자산에 포함되는 것이죠. 차를 팔기 위한 광고이긴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자, 회사의 향후전략까지 녹아든 광고이기에 치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현대차는 현재 수소전기차와 같이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 중에 '환경'에 대한 어필은 이를 의식하여 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적 책임, 기업의 브랜드 가치까지 고려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번 캠페인에서는 무겁지 않게 스토리로 잘 풀어냈습니다. 상업광고에서 "불편해도 해야지"와 같이 행동을 독려하는 카피는 매우 뻔할 수 있기에 주의해하지만, 담백하고 심플하게 풀어냈습니다. 


어쩌면 이런 가치 소비, 윤리에 대한 어필이 비로소 통하는 시대가 도달했음을 알리는 광고가 아닐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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