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 스무디와 샐러드 도시락
결혼하고 처음 몇 번의 주말은 부엌에서 전쟁을 치렀다. 남편이 부리또와 샐러드를 만드는 동안 내가 양배추 절임과 김밥을 만들고 있거나, 남편이 추수감사절 요리(칠면조 구이, 스터핑-고기 기름이나 육수, 빵, 버터, 향신료 등으로 만든 음식, 감자 샐러드, 익힌 콩 줄기, 크랜베리 잼, 스콘, 호박파이 등)를 하는데 하필 그날 배추랑 총각무를 사는 바람에 내가 김장하는 식이었다. 서로 이런저런 요리를 해주겠다며 달려들었으니, 칼도 도마도 그릇도 냄비도 가스레인지도 오븐도 남는 게 없었다.
참 이상하다. 엄마 집 부엌에서는 어른 네댓 명이 움직여도 일사불란 전혀 문제가 안 되니 말이다. 아마도 엄마 부엌에서는 보스가 하나라서 그렇겠지. 아무튼 요리하는 시간을 나눠 쓰는 건 우리가 신혼 때 터득한 싸우지 않는 지혜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보스가 둘씩이나 있어 자리다툼이 있을지언정 집에서 채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꼬박꼬박 점심 도시락을 싸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외식하는 우리로서는 주체적인 요리사가 많을수록 식생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남편이나 내가 요리에 특기가 있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 그렇다고 우리 집 요리에 특별히 내세울 만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끼니마다 “정말 맛있다!”라고 몇 번씩 외치곤 한다. 솔직히 맛이 없을 때도 가끔 있다. 뭘 만드는지도 모르고 재료를 섞다 보면 이게 뭔가 싶은 음식이 되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고른 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기 때문에 밥맛이 좋은 것 같다. 차려진 밥상 앞에서 음식 타박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식사 시간이 즐거운 이유다.
그러면 우리의 아침 식사는 어떨까?
우리는 주로 스무디를 먹는다. 시간 여유가 있고 많이 출출할 때는 고소한 오트밀을 곁들이기도 한다. 언젠가 제인 구달 선생이 아몬드 한 줌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다는 글귀를 읽고, 그것만 먹고 어떻게 다음 식사까지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나마 '위장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어느 한의사의 말을 듣고 난 뒤엔 스무디 한 잔과 견과류 한 주먹 정도로 아침 시간이 버틸 만 해졌다.
우리 집 대표 아침 식사인 스무디의 주재료는 케일이다. 두부 스크램블이나 메밀 팬 케이크, 오트밀을 제치고 케일이 대표 아침 식사가 된 이유는 이 녹색 잎이 가진 영양소 때문이다.
케일 Kale
양배추의 조상으로 알려진 케일은 비타민과 무기 염류가 풍부하여 채식 식단에서 매우 중요한 채소로 꼽힌다. 비타민A와 비타민C는 물론 혈액 응고와 칼슘 섭취를 돕는 비타민K 함량이 압도적으로 높고, 눈에 좋은 루테인과 임신부에게 꼭 필요한 엽산을 비롯해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한다. 무엇보다 케일은 같은 양의 우유보다 많은 칼슘과 단백질을 가진다.(Wikipedia-Kale/Milk 항목 참고)
그런데 우유와 케일을 같은 양으로 놓고 보면 실망스럽다. 우유 100g 은 반 컵이 조금 못 되지만, 케일 100g은 손바닥만 한 케일 잎이 열대여섯 개나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유 한 잔을 따라서 마시는 것과 케일을 씻어서 쌈해 먹거나 주스, 스무디로 만드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은 다르다. 하지만 케일과 우유를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이나 지하수/토양/대기 오염 영향 정도를 생각하면 먹는 데 드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고 싶다. 무엇보다 난 다 큰 사람이라서 소젖은 필요 없다.
케일이나 상추, 시금치 같은 잎채소는 씻는 게 가장 큰 일이다. 이에 채식 1년 차가 되었을 즈음 남편은 특별한 조치를 마련했다. 남편의 일주일이 수월해지는 비결은 일요일 2시간에 있다. 남편은 일요일 오전에 늦은 아침을 먹은 뒤에 채소를 씻는다. 한 주 동안 아침 식사가 될 케일 스무디 재료(케일, 당근, 사과 등)를 씻어서 통에 담고, 샐러드 도시락도 세 통을 싸서 월, 화, 수요일 점심으로 한다. 샐러드를 냉장고에 며칠 넣어두면 차갑고 맛이 없을 것 같지만, 씹다 보면 씨앗과 올리브유가 다른 재료와 어울려서 입안에 고소한 맛이 퍼진다.
케일은 삶으면 비타민A와 K를 제외한 대부분 영양소를 잃기 때문에 가능한 한 생으로 먹거나 살짝 데쳐 먹는다.
케일 스무디
재료(2인분)
사과 1개, 당근 1/3 조각, 케일 잎 4~5개(손바닥 크기, 줄기 포함), 바나나 1개
밀싹/보리 싹/아로니아 가루 1작은술씩
스피룰리나 가루/치아 씨 1/2작은술씩
두유나 물 1.5컵
요리법
1. 사과와 당근은 잘 갈리도록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는다.
2. 모든 재료를 순서대로 믹서에 넣고 간다.
*크고 단단한 덩어리를 믹서 아래에 깔아주고 돌리면 내용물이 많이 튀지 않아서 버리는 것이 적고 설거지가 쉽다.
*과일과 각종 가루, 씨앗 등은 지역과 계절에 맞게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한다. 미숫가루나 잣도 잘 어울린다.
*취향에 따라 샐러리나 파슬리, 약간의 생강을 넣는다.
*케일은 잎보다 줄기 쪽에 단맛이 더 많고 즙도 훨씬 많이 나온다.
갖은 샐러드 도시락
재료
케일을 비롯한 온갖 채소와 씨앗, 남은 음식, 샐러드용 올리브유
요리법
1. 케일, 상추, 양배추, 당근, 피망, 샐러리, 고수를 먹기 좋게 썰어 큰 그릇에 담는다.
2. 취향에 따라 잘게 썬 말린 과일이나 비건 치즈, 양파를 추가한다.
3. 그위에 해바라기 씨, 아마 씨, 참깨 등 씨앗류를 넉넉히 뿌린다.
4. 올리브유 1작은술을 뿌리고 고루 섞되, 잎채소가 상하지 않도록 한다.
5. 4번으로 도시락통을 9할쯤 채우고 그 위에 먹고 남은 음식을 꾹 눌러 담는다. 삶은 검은콩이나 병아리콩, 현미밥, 곡물 빵, 스파게티, 피자, 부침개, 두부 부침, 팔라펠, 삶은 감자, 익힌 비트, 나물 등 어떤 음식도 괜찮다. (찬밥을 그냥 먹기 어렵다면 고추장이나 간장, 참기름, 깨, 후추, 김 가루 등으로 밥을 비벼서 넣어본다.)
6. 먹기 전에 취향대로 올리브유나 발사믹 식초, 후추를 뿌린다.
* 고수는 파슬리나, 파, 바질 잎 등으로 대체할 수 있고, 매운맛을 좋아하면 할라피뇨 같은 피클을 잘게 썰어 넣으며, 신맛을 좋아하면 레몬이나 라임즙을 뿌린다.
* 말린 과일, 비건 치즈, 양파, 참깨, 아마 씨는 특유의 향과 씹는 맛 덕분에 도시락을 비울 때까지 샐러드 맛이 질리지 않는 역할을 한다.
* 4번 과정에 들깻가루를 섞어도 되고, 너무 기름진 게 싫다면 아예 4번 과정을 빼도 괜찮다.
* 퀴노아를 삶아 넣을 수도 있다. 퀴노아의 쌉쌀하고 독특한 향과 톡톡 터지는 맛이 샐러드 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 남은 식빵으로 크루톤crouton을 만들어 샐러드에 넣어도 좋다. 크루톤은 식빵을 깍둑썰기한 다음 간단히 기름이나 비건 버터를 묻혀 노릇해지게 굽는다. 혹은, 기름/비건 버터/다진 마늘/바질 가루/오레가노 가루 중 있는 재료를 섞어서 반죽을 만들고 조각낸 빵에 묻힌 다음 굽는다. 다 된 크루톤은 식혀서 샐러드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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