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짜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특한 향을 내는 이 이국적인 음료를 어디에서 처음으로 맛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어느 인도식당이었겠지. 회사 언니들과 누구누구 험담에 열을 올렸던 명륜동 깔리나 창신동 골목 안 히말라야 같은 이름을 건 식당이거나. 자주 마신 건 아니다. 인도식당 음식값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그러니까 아주 가끔 짜이를 마셨다.
그러다가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는 동안 짜이를 생각나게 하는 떼따릭을 알게 되었다. 짜이와 떼따릭의 세세한 차이는 잘 몰랐다. 홍차와 우유, 설탕을 섞은 따뜻한 차라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다만 떼따릭은 우유 대신 단맛이 강한 연유를 쓴다. 떼따릭은 ‘잡아당긴 차’라는 뜻이다. 뜨겁게 끓인 차를 양손에 든 용기에 번갈아 가면서 잡아당기듯이 따르길 반복한다. 이러는 동안 재료가 고루 섞이고 차는 마시기 좋은 온도로 적당히 식으며, 찻잔 위에는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간다. 짜이가 인도에서 그렇듯이 떼따릭도 말레이시아의 국민 음료로 통한다. 마막이라고 부르는 인도계 무슬림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면 떼따릭 한 잔을 시켜 놓고 한두 시간쯤 훌쩍 보내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가끔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앉아서 기름진 로띠차나이에 떼따릭을 시켜 아침 식사로 대신하곤 했다.
그때 옆집에 남인도에서 온 아주머니가 살았다. 한가한 오전이면 아주머니와 함께 요가를 했다. 책에서 읽기만 했던 풀무 호흡을 그분에게 처음으로 배웠다. 들숨과 날숨을 아주 짧게 나눠 오륙십 번쯤 반복해야 하는데, 때로는 두통이 생긴다고 착각할 만큼 쉽지 않았다. 곁눈질로 이 호흡 운동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힘차게 태양 예배를 여러 번 했다. 그렇게 사십 분 정도 요가를 하고 나면, 먹고 마시고 수다 떨기에 한두 시간을 보냈다. 고소하게 튀긴 와데를 물어 먹고 담백한 찐방 이들리를 달 수프에 찍어 먹었다. 아주머니는 카레 냄새가 풍기는 닭고기 요리나 볶음밥 비르야니를 싸주기도 했다. 그중에서 제일은 직접 만들어주시던 짜이였다. 아주머니는 그냥 짜이가 아니라 이런저런 향신료를 넣은 마살라 짜이라고 했다. 무슨 향신료인지 몰라도 컵 안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충분히 달콤한 이 차에 검붉은 팜 설탕 덩어리를 곁들여 먹으면서 우리는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말레이시아를 떠난 후 한동안 짜이를 잊었다. 몇 년이 흐르고, 에스프레소 커피 음료는 부담스럽지만 달콤한 게 생각날 때면 카페에서 차이라떼를 주문했다. 계피 향이 약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카페의 차이라떼는 목 안에 끈적하게 달라붙을 만큼 다디달았다. 그래도 짜이의 독특한 향과 폭신한 두유 거품에 기대어 이 국적 불명의 음료를 즐겼다.
그즈음 라즈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에겐 세 아들이 있다. 연락이 끊기다시피 한 둘째 아들을 빼고 자식이 둘만 있다고 말 한 어느 날, 아저씨는 그 죄책감에 불안해하며 고해성사라도 하듯 나에게 가족 이야기를 했다. 라즈 아저씨는 인사할 때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시간을 주어 상체를 굽혔다. 연 날리는 즐거움을 종종 이야기했고 멀리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아저씨에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이야기를 할 땐 조심해야 했다. 나에겐 흘려듣고 말 사건이지만, 아저씨 눈에는 울컥 울음이 올라왔기 때문에.
내가 도시를 떠나야 했을 때 아저씨 집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거듭 사양했지만 아저씨는 극구 차 한잔하고 가길 바라셨다. 아저씨는 마살라 짜이를 만들어주시겠다고 했다. 텔레비전 옆에는 내가 드린 접난 화분이 있었다. 새집에 적응하느라 그랬을까 잎줄기 끝이 약간 마른 듯 보였다. 부엌 탁자엔 식빵과 바나나, 귤이 이런저런 소식지나 메모장과 섞여 있었다. 아저씨는 작은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서두르는 와중에도 우유와 물을 계량컵에 반듯이 재고 갈색 가루를 냄비에 넣은 다음 싱크대 옆 서랍을 열었다. 나라면 칼이나 수저를 놓았을 만한 서랍 속에는 향신료 봉투들이 있었다. 아저씨는 풀빛 색깔이 나는 작은 열매 대여섯 개를 집어 도마에 올렸다. 과도를 옆으로 눕혀서 힘을 주니 두드득 하고 마른 열매가 으깨졌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카다몬을 보았다. 부엌에 우유 냄새가 풍겼다. 끓인 우유를 마시는 건 몇 년 만이었기에 좀 역했다. 그래도 한 모금씩 천천히 넘겼다. 아저씨 마음을 쌓듯이. 헤어질 땐 아저씨처럼 허리와 목을 굽혀 인사를 하고, 아저씨 눈매를 따라서 나도 미소 지었다. 나는 아저씨의 고향 네팔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네팔이라는 단어는 육십이 넘은 남자의 여린 눈빛과 순수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교통이 불편한 동네로 이사 온 뒤로 칩거하는 날들이 늘었다. 카페 가는 일도 쉽지 않게 되어 마살라 짜이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집에 이미 있던 계피와 생강, 육두구, 올스파이스를 넣어보았지만 맛이 나지 않았다. 곧 정향과 카다몬을 차례로 샀다. 이렇게 저렇게 섞다 보니 카페에서 파는 차이라떼 맛의 비밀을 알았다. 독특한 향을 내는 약간의 카다몬은 필수였고 맛의 결정은 넉넉한 설탕에 있었다. 그리고 내 입맛에 맞는 마살라 짜이는 생강과 카다몬에 달려 있다는 것도 알았다. 홍차를 우려 넣을 때도 있지만, 차 맛에 무감하여 그럴까 홍차 없이 생강, 카다몬, 약간의 계피면 되었다. 달콤한 케이크나 과자가 준비되었을 땐 설탕은 빼고 생강 양을 늘린다. 매운 생강이 넉넉히 들어간 짜이는 오후 서너 시쯤 몸을 덥히기에 알맞다. 으깬 카다몬을 냄비에 넣고 손에 남은 자릿한 향을 들이마신다. 아무리 맡아도 뭐라 설명하기 힘든 이 냄새는 내게 마살라 짜이를 만들어주던 이들을 생각나게 한다. 차가 끓기 전에 불을 끄고 두꺼운 컵에 담아 뒤뜰로 나섰다. 바람은 아직 차지만 햇살은 따사롭다. 햇살이 비치는 나무 바닥에 자리를 잡고 겨우내 특별히 한 일도 없이 동창에 걸린 발을 주무르며 내 멋대로 만든 마살라 짜이를 홀짝인다.
재료 준비 (2잔)
물 1컵
식물성 우유 1컵
생강가루 1/2작은술
계피가루 1/4작은술
정향가루 1/8작은술
카다몬 4~8개 (혹은 카다몬가루 서너 꼬집)
설탕 1/2~1큰술
홍차 1작은술이나 티백 1개
만들기
1. 카다몬, 설탕, 홍차를 뺀 나머지 재료를 냄비에 넣고 중간 불에서 덥힌다.
2. 카다몬은 도마에 올리고 칼을 옆으로 눕혀 으깬 다음 냄비에 넣는다.
3. 차는 끓이지 않고 뜨거울 만큼만 덥힌다. 냄비에서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입맛에 맞게 설탕을 조절해 넣고 숟가락으로 저어준 다음 불을 끈다.
4. 홍차를 넣고 냄비 뚜껑을 덮은 뒤 5~10분 정도 우린다. 뜨거운 차가 좋다면 3번 과정 중간에 홍차를 넣어 미리 우려도 좋다.
4. 거름망에 카다몬, 홍차 등 건더기를 걸러내고 대접한다.
*물과 우유 비율은 입맛에 맞게 조절한다.
*생강이나 계피는 가루 대신 생생강이나 말린 계피 조각을 써도 좋다.
*계피와 정향 대신 올스파이스 가루를 쓸 수 있다. 인도에서는 지역에 따라 짜이에 넣는 재료가 달라진다. 개인 취향에 맞춰 얼마든지 색다르게 만들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