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가 그렇게 되기까지
2016년 1월 갑자기 채식을 결심했다.
장대한 시작은 아니었다.
완벽한 과정도 아니었다.
다만 장 볼 때는 동물성 식품을 사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켰다.
그리고 5년. 가끔 외식할 때나 누군가 준비해준 음식을 먹을 때를 빼면, 우리가 만드는 음식은 완전 채식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채식을 하지만 개인적 욕구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육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육식에 한 발을 걸친 어중간한 채식인-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flexible+vegetarian)
굳이 우리 식단에 이름을 붙이자면, 플렉시테리언이 되겠다. 실생활에서 쓸 일이 거의 없는 단어지만 책 제목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브런치에 올리지 못한 원고가 쌓일 즈음, 그 원고 뭉치 제목으로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좀 더 쉽고 바로 이해되는 문장으로 제목을 바꿔보려고도 했다. 그 제목에 맞춰 책 표지 시안도 만들어봤지만, 결국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마음에 뒀던 제목이 '나'에 가까웠다.
글을 쓰는 건 재밌고도 어렵다. 그런데 가끔 어떤 단어나 어구,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잊히지 않고 대체 불가하다.
한편 이 매거진 제목 '어느 채식주의자의 고백'은 석연치 않다. 채식 초반에는 별생각 없이 쓰던 채식주의자라는 용어가 언젠가부터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유별나고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주의자'라는 단어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누군가에게 채식을 주창할 정도의 논리력이 없다.
다행히 말하기 부드럽고 뜻도 적절한 단어가 있었다. 채식인. 채식주의자보다 간결하고 의미도 분명하며 내가 추구하는 바에도 걸맞다. 누군가를 육식에서 채식으로 전향하는 것보다 내 삶을 내 마음에 들도록 꾸리는 일이 나에겐 더 중요하다. 완벽한 채식인은 아니지만, 조금 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련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끼만큼의 변화를 원한다면, 에세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책 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