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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분수 Dec 21. 2021

김치 사는 미국인들

삼 년째 김치를 파는 이유

우리가 사는 그랜드정션이란 도시의 인구는 6만이 조금 넘는다. 이 도시가 속한 메사 카운티는 충청남도 면적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15만 4천 정도로 충남 당진시 인구보다 적다. 메사 카운티의 아시아인 비율은 0.5%, 메사 카운티에서 가장 큰 도시인 그랜드정션의 아시아인 비율은 0.7% 정도다.

인구 비율에 비하면 아시아 음식점은 많아 보인다. 구글맵에서 그랜드정션 내 아시아 식당을 검색하면 스무 곳 남짓 나온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한식당은 없다. 작은 동양 식품점은 두 개 있는데 한국 식품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 김치가 그나마 팔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만든 김치가 맛있어서 팔린다고 하면 신빙성이 떨어질 것 같아, 우선 이렇게 한국 식품 접근성으로 왜 우리가 삼 년째 김치를 파는지 따져본다.  


콜로라도 강 서쪽에서 바라본 그랜드정션 북쪽과 동쪽 지역.


김치를 팔면서 만나는 한국인도 조금씩 늘어난다. 사업 첫 해였던 2019년, 이 동네에 산다는 한국인을 본 건 한 가족이 전부였다. 올해에는 세 번 보았다. 그중 두 분은 최근에 이사 왔다고 했고, 한 분은 몇 해 동안 실내 체육관을 운영하고 계셨다고 한다. 여행 중에 장터에 들렀다는 한국인이나 한국계 미국인 분들도 가끔 있었다. 그중에는 덴버처럼 한국 슈퍼마켓이 있는 도시에 살면서도 이 작은 도시에서 만든 김치를 맛보겠다고 구매해주신 분들도 많다.

그 외 99% 손님은 한국인이 아니다. 손님들 성향은 다양한데, 재미 삼아 네 개 부류로 나눠보았다. (손님을 나눈 구분 기준과 그 수치는 순전히 장터에서 내가 받은 느낌에 기댔기 때문에 매우 믿을만하지 않다.)

 

99%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첫째 부류는 김치 맛을 아는 분들이다. 다시 말하면, 김치를 애정하는 분들로서 김치 현수막을 보고 얼굴에 미소와 기대를 안고 다가온다. 맛을 보곤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 눈가에 웃음이 넘쳐흐른다.

두 번째 부류는 김치라는 음식 이름을 들어만 봤다는 분들로 40% 정도를 차지한다. 김치가 장 건강에 좋다고 알고 있지만, 슈퍼마켓에서는 맛을 볼 수 없어 그동안 사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시식 기회를 고맙게 여기고 한두 병, 때로는 여러 병을 사 간다. 대부분은 김치 맛이 좋아서 사는 것 같(다고 믿고 싶)고, 어떤 분들은 몸에 좋다니까 꾸준히 먹어보겠다는 심산 같기도 하다.

세 번째 부류는 김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다. 장터에 나가면 도대체 김치가 뭐냐면서 다가오는 분들이 꼭 있다. 그들 중 몇몇은 맛을 보고 생각보다 괜찮다면서 구매로 이어지고, 한두 명은 피클이네, 나 식초 싫어해, 하고 지나간다. 그러면 최소한 잘못된 정보를 갖고 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마음에 우리는 말한다. 피클과 달라요, 식초는 안 들어가요, 소금과 채소만 섞어서 생긴 발효 효과예요, 톡 쏘는 건 몸에 좋은 젖산균이에요, 하고 말해본다. 그러면 그들은 식초가 아니라는 말에 놀란 눈치지만, 곧 내 스타일 아니야, 하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선다.



마지막으로 김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치가 싫다면 관심 없는 사람들이 그러듯 그냥 우리 매대를 지나가는 게 보통일 테다. 하지만 어쩌다 한두 명은 자기 존재를 알린다. 멀리서 우리를 확인하곤 다가와 2m 정도 거리를 둔 채 말한다. 김치? (아주 가끔 ‘기무치’라고도…) 어후, 난 싫어, 라고 하는 단호박 같은 분들이다. 혹은 나 한국에 살아봐서 잘 알아, 그건 안 먹어봐도 돼, 라는 말도 들린다. 그럼 우리는 묻는다. 한국에 언제쯤 계셨어요? 8~90년대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때로는 시기가 70년대까지 올라간다. 한적한 동네의 장터로 갈수록 이런 분들이 더 많이 나타난다.

일주일에 한 번 잠깐 김치만 팔며 느낀 점이지만, 동네가 작을수록 색다른 걸 시도하길 꺼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일단 맛이라도 보고 싫다고 하면 깔끔히 물러날 수 있지만, 맛보기조차 꺼리는 사람들을 보면 좀 아쉽다. 내가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 누군가에겐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나 보나.

그리고 아주 가끔 이런 사람들도 있다.


한 여자가 새초롬하게 다가와 ‘신김치’가 있느냐고 물었다. 신김치를 한글 그대로 말해서 하마터면 못 알아들을 뻔했다. 신김치는 없으나 이 김치들 삭히면 다 신김치 된다고 했다. 여자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며 두 해 살았는데 신김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눈치가 있길래 맛 좀 보라 했다. 그녀는 한 입 깨물더니 이게 아니라며 맛보기 전에 이미 마음먹은 대로 돌아섰다. 또, 삼사십 년 전에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한 아저씨들은 한국 어디에 있었다는 자기소개를 먼저 하며 다가온다. 그리곤 김치 맛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어쩔 땐 한번 갸우뚱하는데, 하나같이 그 맛이 아니야 하고 돌아선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139쪽.


그들이 기억하는 그 특별한 맛을 우리는 낼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젓갈을 쓰지 않으니 그들 기억 속의 맛과 꽤 다를 테다.

손님들은 다양하다. 설령 누군가 얼굴을 찌푸리며 우리가 파는 음식이 싫다고 해도 상처가 되진 않는다. 우리가 좋아하니까. 김치는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응용법도 다양해서 지지고 볶고 끓이고 심지어 푹 삶기도 한다. 밥과 찰떡궁합 반찬이자, 뭘 만들어 먹나, 하는 걱정까지 덜어주는 훌륭한 요리 재료다. 아삭아삭 새콤하고 톡 쏘는 맛을 대체할 다른 음식은 없다. 그리고 이젠 슈퍼마켓에서 파는 김치는 못 사겠다고 말하는 단골손님들이 있으니까.



조금 전 같은 동네에 사는 메리 언니가 다녀갔다. 물론 언니라고 불러본 적은 없다. 때 되면 문자와 전화로 먼저 챙기고 살가운 점이 꼭 언니 같아 하는 말이다. 메리 언니 남편이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큰 도시에 가면 한국 식당을 꼭 찾을 정도라고. 씹는 맛을 아는 분이라 깍두기를 특별히 좋아하는데, 언니는 오늘도 세 병을 품에 안고 가셨다.

내일 오전에는 지역에서 꽃 농장을 하는 부부가 들를 예정이다. 덴버에 사는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매운 배추김치를 가져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삼 년째 김치를 판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김치가 맛있다. 그러니 타인에게 팔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김치가 팔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류를 잘 만났기 때문이란 걸 안다.

한국과 한국적인 모든 것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3년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김치 맛을 보고 싶어 하고, 더 자주 구매로 이어진다. 김치 효능을 홍보하려고 열을 올릴 필요도 없다. 많은 이들은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김치가 몸에 좋다고 알고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식당 없는 이 작은 도시에서 김치 맛을 볼 수 있음을 고마워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김치를 팔고 싶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끼만큼의 변화를 원한다면, 에세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책 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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