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래분수 Dec 25. 2021

도약 없는 사업

그래도 꾸준한 부업

팰리세이드는 우리가 사는 그랜드정션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산세가 수려한 가필드 산과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메사(산 정상은 편평하고 등성이는 벼랑처럼 떨어지는 지대)로 알려진 그랜드 메사가 만나는 분지에 자리한다. 팰리세이드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하고 체리, 살구, 포도와 포도주도 생산한다.

도시라고 부르지만 면적은 3제곱킬로미터 정도이고, 인구는 약 2,700명(2010년 기준)인 작은 마을이다. 유타 주와 콜로라도 주를 연결하는 70번 국도 바로 옆에 위치하고, 너른 과수원이 깔린 경치에 산악스포츠까지 더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날이 따뜻해지면 라벤더, 블루그라스, 복숭아, 와인 축제 등이 이어지는데, 가장 큰 축제로 꼽히는 8월 복숭아 축제에는 15,000명 이상이 이 작은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가필드 산의 최고봉인 북클리프에서 내려다본 팰리세이드


우리는 팰리세이드 직거래 장터(파머스 마켓)를 좋아한다. 장터는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데, 주최 측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코로나19 유행병에도 불구하고) 매 회 1,500명 안팎이 장터를 찾았다고 한다. 그랜드정션 장터와 달리 수십 개 부스가 두어 블록에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래서 어느 자리에 있어도 중앙 광장에서 흐르는 라이브 음악이 들린다. 그리고 정신없이 김치 시식을 진행하다가 잠깐 허리를 펴면 가필드 산의 듬직한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가을 막바지의 장터. 몇몇 부스는 장사를 포기할 정도로 바람이 셌던 날이다. 거리가 한적한 덕분에 시야가 트였다.


무엇보다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이 좋다. 사워도우 빵을 만드는 부부와 수제 버터를 만드는 부부, 그랜드 메사 중턱에서 유기농법으로 지은 농산물을 파는 청년, 불같이 매운 프레첼을 파는 아저씨, 커피 볶는 부부, 웃음이 좋은 유리 공예가 할머니 등등. 모두 사람 좋고 친근하다.

우리가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던 3년 전, 이들 모두가 우리 등장을 반겼고,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버터 파는 부부는 인큐베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은 초보 사업자가 사업을 시작하고 성장시키고 안정화하며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과정을 돕는데, 이곳에서 사무 공간과 상업용 주방을 빌리거나 각종 사업 자문을 구할 수 있다.

 

고지대에서 재배한 허브로 향기로운 차를 만들어 파는 분은 김치 만들기 수업을 제안했다. 지역 농부들은 이듬해에는 배추를 심어보겠다고 했으며, 자기네 농장 앞에 둔 매대에서 김치를 팔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코티지 푸드 사업(참고 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도매가 어렵다는 뜻을 밝히면, 모두 안타까워하면서 상업용 주방을 소개했다.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회와 제안을 거의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 사업은 성장 없이 처음 수준을 유지한다. 매출 증가가 성장이라면 우리 사업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판매처를 늘리지 못하고 있고 일하는 손은 오히려 줄었다.



첫 해에는 남편과 함께 김치를 만들고 팔았다. 그 해 직거래 장터가 문을 닫은 11월, 남편은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남편은 위층 방을 사무실로 꾸며 모니터를 바라보는 삶을 다시 시작했고, 그 방 아래에 있는 부엌에서 나는 계속 김치를 만들었다.

한창 바쁠 때면 배추 20kg에 무와 오이를 10kg쯤 사서 이틀 동안 김치를 만들었다. 그런 날엔 새벽 한두 시까지 일하는 건 기본이지만 할 만했다. 첫 해에 남편과 함께 겪은 시행착오 덕분에 재료 배합은 안정되었고, 이런저런 만들기 요령이 생겨 작업 능률이 올랐기 때문이다. 남편 도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서류 업무는 여전히 남편이 맡아주고 있고, 가끔 점심시간을 쪼개어 마늘과 양파를 까며 눈물도 대신 흘려준다.


장터에는 가능한 혼자 나가지만 내가 사정이 안 되면 남편이 가고, 축제가 겹치는 날엔 김치를 더 싣고 둘이 함께 나가기도 한다. 혼자서 시식까지 하면서 김치를 팔려면 엉덩이 붙일 짬도 없지만, 천막을 접을 때면 성취감이 높다. 그동안 집에 남은 사람은 쌓여 있는 집 안팎 일을 하니 이래저래 노동력과 시간을 절약한다. 이렇게 한 사람 노동력을 90%쯤 덜 쓰지만, 첫 해에 둘이 일해서 벌던 것 이상으로 매출이 난다.

그래 봤자 이렇게 소극적인 김치 장사로 얻는 수입은 생계를 유지할 정도가 못 된다. 그러니 부업에 가깝겠다.

 

사업 확장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상업용 주방은 시간당 15불에서 70불 이상까지 비용이 든다. 최소 비용으로 하루 8시간을 쓴다면 120불이 나오는데, 배추절임이 필요한 김치 특성상 주방을 빌리려면 하루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생산량을 늘리려면 최소 한두 명을 고용해야 한다.

일단 사업 형태를 상업용으로 바꾸면 코티지 푸드와 병행할 수 없다는 점도 망설임의 원인이다. 상업용 주방에서 만든 것만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사업을 완전히 상업용으로 전환하는 것과 코티지 푸드 사이에서 장단점을 따지고 내 역량을 가늠하다 보면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결국 우리 김치 사업은 용돈 벌고 친목 쌓고 지역 내 음식 문화 다양성에 기여하는 정도에 3년째 머물러 있다. 김치 판 돈으로 그럴듯한 건강 보험에 가입한 다음, 남편, 일 그만 해도 돼, 하고 말하진 못 한다. 그래도 남편은 너그럽다. 한국에 다녀올 경비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좋아해 주니, 나는 감사하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끼만큼의 변화를 원한다면, 에세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책 훑어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김치 사는 미국인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