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비 아껴 수익을 늘려볼까
연말을 맞아 올해 김치 사업 수익을 따져보았다.
결과는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장터에 나가는 횟수를 매주 1회에서 2주 1회로 줄였으니 투자 시간과 노동력 대비 수입은 증가한 셈이다.
내 관심사는 재료 비용이다. 혹시나 좀 줄였을까 싶었는데, 수입에서 재료비 비중은 1/3 정도로 전년도와 비슷하다. 가정용 부엌에서 만들어 파는 코티지 푸드 사업이기 때문에 임대료나 상업용 주방 대여료는 없다. 나머지는 모두 우리 수익이다. (코티지 푸드 사업 참고 글)
재료 비용을 아낄 방법은 있다.
유기농 채소 고집하지 않기
재료비에서 가장 큰 비중은 배추와 고춧가루가 차지한다. 이 두 가지를 빼면 가능한 유기농 재료를 쓴다. 배추와 고춧가루는 유기농을 찾기 어렵고, 있다고 해도 가격 차이가 너무 뛰어서 쓸 엄두가 안 난다.
만약 모든 김치 재료를 비유기농으로만 사면 채소 구입비를 1/4~1/3 정도 절약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도 가능한 유기농을 쓰는 이유는 흙과 물은 물론 농사짓는 땅에 얽힌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다. 다행히 미국 대형 슈퍼마켓에서 파는 유기농 채소 가격은 싸다.
미국 농산물값은 한국 채솟값과 비교하면 싼 편이다.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슈퍼마켓을 예로 들면, 사람 머리만 한 케일 한 다발이 2천 원이 안 되고, 2.3kg짜리 당근 한 봉지는 4천 원 정도에 판다. 모두 유기농 가격이므로 비유기농은 좀 더 쌀 테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채소가 무조건 낫다고 확신하진 않는다. 유기농 채소에도 친환경 제초제나 살충제 외에 미국 농무부에서 승인한 약품을 쓸 수 있으므로, 농약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나마 흙과 물을 덜 오염한다는 믿음으로 유기농을 산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p.178.
대량 구매 시 유기농과 비유기농 가격차이를 무시할 수 없지만, 농약 사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오이를 예로 들어볼까? 비유기농 오이는 아무리 씻어도 껍질이 끈적거린다. 베이킹소다로 박박 문지르고 식초에 담가 둬도 끈적끈적하면서 미끄덩한 뭔가가 남아 기분이 나쁘다. 지난주에 김치 담글 때 유기농 오이가 너무 시들어 보여서 비유기농을 샀는데, 나중에 오이 맛을 보니 화학 약품 맛이 났다. 게다가 유통 과정에서 얼었던지, 김치를 익힌 다음 맛을 보니 오이가 뭉그러졌다. 결국 오이김치는 팔 수 없게 되었다. 소량 담았기에 큰 피해는 없었다. 오히려 석유 냄새나는 오이로 담근 김치를 팔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단가 높은 지역 농산물을 쓰지 않기
지역 농부에게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는 유기농이 아니어도 구매하는 편이다. 이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김치 재료로 마늘, 양파, 쪽파, 당근, 서양 무, 왜무 등이 있다. 당근은 캘리포니아 산 유기농 가격이 워낙 싸기에 슈퍼마켓에서 사지만, 그 외에는 값이 좀 나가도 농부들에게 직접 사려고 한다. 지역 농산물은 유통 거리가 짧기 때문에 다른 주에서 실려 온 것보다 확실히 신선함이 오래간다. 무엇보다 지역 농산물로 만든 김치를 선호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걸 안 이상, 단가가 좀 높아도 그랜드 메사에서 키운 오이나 팰리세이드 산 무를 쓰려고 노력한다.
김치를 팔기 전까지는 직거래장터나 지역에 뿌리를 둔 작은 사업장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서고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보니 어떤 흐름이 보였다. 여행객이나 가끔 나들이 삼아 오는 지역 주민들 사이로 매주 시장을 보는 주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역 경제를 걱정하고 토산품을 아끼며 작은 사업장들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랐다. 작년 코로나19 유행병으로 상황이 어려웠어도 주최 측의 노력으로 장터는 열렸고, 매번 방문자가 천 명이 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직거래장터에 의존하는 지역 농부들에게 정말 다행이었고, 장을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소중한 기회를 감사히 여겼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p.180.
김치 속 재료 줄이기
마늘과 고춧가루, 바닷소금만 있어도 김치를 만들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가능한 엄마가 하던 대로 만들고 싶다. 굵게 썰어 씹는 맛이 좋은 무, 색을 살리는 당근, 맛을 돋우는 사과도 빼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김치 만들기가 좀 복잡해진다. 이곳에서 재료 구입 시 가장 곤란한 게 무와 무청이다.
한국 무는 차로 네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덴버의 한국 슈퍼마켓에 가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주로 구할 수 있는 무는 다이콘daikon이라고 부르는 길고 하얀 왜무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왜무는 대개 줄기가 없다. 모두 잘라버리고 팔기 때문이다. 가끔 싱싱한 줄기가 달린 왜무를 보면 가격이 두세 배쯤 돼도 살 수밖에 없다. 무청을 쓰지 않으면 일이 훨씬 수월할 텐데. 하지만 엄마가 습관처럼 하시던 말씀이 내게는 법이 되었다.
"매운 무청이 들어가야 김치 국물 맛이 시원해진다."
엄마는 손에 양념을 묻히고서야 이곳저곳에 숨은 재료를 찾았다. 엄마가 “아이고, 생강 깜박했다. 저기 김치 냉장고 오른쪽에 있어. 좀 꺼내라.” 하면 나는 양념에 풀을 덜다가 생강을 찾았다. 베란다 어딘가 엄마만 아는 곳에 숨겨진 젓갈을 찾아서 국자로 덜어오고, 냉장고 서랍 검은 봉지에 든 고춧가루를 꺼내 매운 내 날리지 않도록 살살 양념 위에 얹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고춧가루를 뺀 나머지 양념 재료는 믹서에 갈기 시작했고, 이때 사과도 함께 넣으면 설탕 넣은 듯 국물 맛이 달고 시원하다고 했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p.141.
재료비를 아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진 않는다. 내가 먹고 싶은 김치를 팔고 싶고, 내 김치를 사는 사람들도 엄마표 김치에 흡사한 맛을 보았으면 한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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