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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분수 Jan 07. 2022

일주일에 한 번은 한식

맛있는 비거뉴어리 day 6

당신이 채식을 시작하고 싶어 하고, 한국인이라면(아마도 한글로 된 이 글을 읽는 거의 모든 이들이 한국인이겠지만..) 축하하고 싶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서 세 배쯤 풍성하게 채식을 즐긴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식은 훌륭한 채식 식단이다.


서울 거리에서 완전 채식 식당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식을 알기 때문에 절망적이진 않았다.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 들깨탕, 비빔밥, 곤드레밥, 막국수가 있었고, 골라 먹을 수 있는 채소 반찬도 풍성했다. 물론 육수나 젓갈을 쓴 김치와 반찬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돼지고기 넣은 된장찌개나 달걀 빠트린 순두부찌개를 받고 아차 싶기도 했다.
동물 단백질 위주로 차린 밥상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그나마 한식은 갖은 반찬 덕분에 채소와 고기가 조화를 이루는 편이다. 엄마 집 밥상에는 향긋하고 씹기 좋은 나물이 넘치고, 밖에 나가면 사찰음식점이나 두부 요리전문점 같은 천국도 존재한다. 한식을 생각하면 우리 조상의 슬기로움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바닷속부터 산속까지 두루 살펴서 먹을 만한 것을 가려내고, 건조와 염장으로 한겨울에도 채소를 즐기는가 하면, 고사리와 도토리처럼 독성이 강한 재료마저 안전하고 맛있게 식용할 방법을 전수했으니까.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p.107.     

 

최근에 출간한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에 25가지 채식 요리법을 소개했는데, 그중 한식은 없다. 우리가 한식을 먹지 않아서는 아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서너 끼니 맛있게 먹는다. 다만, 한식 조리법은 워낙 널리 알려졌고, 한국인에게 친숙하기에 우리가 즐겨 만드는 외국 요리로 책을 채웠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을 보면 역시 채식은 벽이 높나 보다.


1. 도대체 채소만으로 어떻게 요리해?

2. 시간 없는데 애들 해먹이려면 어쩔 수 없어.

3. 금방 허기질 텐데?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1. 쉽진 않겠지?

2. 그렇긴 하지?

3. 그럴 수 있지.


채식 초반에는 막막하고, 불편하고, 금세 허기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 대답은 위와 같다. 그리고 혹시 질문한 사람이 다른 말도 듣길 원하면 이렇게 덧붙인다.


1. 고기, 생선, 달걀, 젓갈을 제외해도 재료는 무궁무진해. 싱싱한 것과 말린 것, 절인 것과 발효한 것, 삶고 찐 것, 볶고 구운 것, 무치고 버무린 것 등등.


2. 채식 초반이라면 항상 쓰던 재료 없이 요리해야 하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긴 해. 대신 고기나 생선을 손질할 시간이나, 육류/생선이 묻은 조리도구를 꼼꼼히 씻어야 할 노력은 필요 없어져.


3. 채식 초반에는 이런저런 금단 증상과 함께 허기진 기분이 들기도 했어. 근데 서서히 적응된다? 필요한 칼로리는 곡물과 뿌리채소, 콩, 견과, 씨앗 등에서 충분히 섭취할 수 있나 봐.




아래 사진대로 먹은 뒤 세 시간 지났다. 후식을 먹을 수 없을 만큼 아직도 배가 불러 섭섭하다.


항상 이렇게 잘 차려먹진 못 한다. 보통 된장국/미역국에 김치 정도 곁들이거나 간단하게 김밥을 만든다.

오늘은 제대로 차려 먹고 싶었다. 갓 지은 현미밥이 고픈 그런 날이랄까. 마침 도라지와 냉동한 나물류가 있어 푸짐한 상차림이 가능했다.


미역국 재료는 딱 다섯 가지. 맹물 미역 마늘 두부, 그리고 남편이 만든 된장. (정말 맛있다!!)

사진 가운데 두부 요리 양념은 간장 마늘 고춧가루 통깨. 간만 잘 맞추면 다 맛있다.

초록 나물은 지난여름 뒤뜰에서 뜯은 비름. 아침에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했다가 살짝 데쳐서 간장과 마늘, 참기름, 통깨로 무쳤고.

깻잎은 이 지역에서 구하기 힘든 건데, 김치 손님 중 한 분이 뒤뜰에서 키운다면서 주셨다. 횡재!


이 모든 반찬을 만들고 먹을 줄 아는 나는 행운아다. 나를 키운 음식이라 그럴까? 한식이 참 좋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끼만큼의 변화를 원한다면, 에세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책 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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