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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분수 Jan 24. 2018

2. 채식주의자인데 가끔 고기를 먹는 나는 뭐지?

채식을 시작하고 두어 달이 지났을 때 한 친구를 만났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채식해온 친구였다. 그녀는 내 새로운 결심을 듣자 마치 내가 자기 옆집으로 이사라도 간 것처럼 기뻐했다. 우리가 만날 때면 내가 그녀를 배려해서 식당을 택하곤 했는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친구는 고기와 생선은 안 먹는 대신 달걀과 우유, 치즈, 버터는 먹지만, 나는 동물의 알이나 유제품까지 먹지 않는 채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반식당에서 밥을 먹자면 나보다 친구의 선택권이 넓다. 


식당에서 자리를 잡은 우리는 메뉴판을 짚으며 무슨 재료를 썼는지 따져보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옆에서 기다리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가 비건이거든요.”


친구는 동지가 생겨서 마음이 들뜨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나를 배려한다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창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채식주의자거든요."보다는 "저는 고기를 안 먹거든요."가 왠지 듣기에 편하다. 무엇보다 나는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채식을 결심한 이튿날, 냉장고에 있던 칠면조 고기와 소시지를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이사를 앞둔 어느 날에서야 다시 그 고깃덩어리를 꺼내었다. 이걸 어쩌지? 어쩌긴. 칠면조야 우리가 널 언제 또 만나겠니 하면서 마늘 듬뿍 넣고 푹 고아서 잘 먹었다. 


그때 먹은 칠면조와 소시지가 첫 외도는 아니었다. 카페에서 주문할 때 깜박하는 바람에 우유 넣은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남편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크루아상을 하나 사서 함께 야금거리며 어떻게 비건 크루아상을 만들 수 있을지 가벼운 토론을 했으며, 두어 달에 한 번쯤은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가 좋아하던 식당에 가서 고기 요리를 먹었다. 여행 중에는 비건 식당을 찾아 헤매면서 괜히 서로에게 신경질 부리다가 우리 이러지 말고 뭐라도 먹고 보자며 햄버거를 우적거리는가 하면, 작년 결혼기념일에는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스테이크 식당에 갔다.


2016년 1월 채식을 결심한 뒤로 완전히 달라진 것은, 우리 집 장보기 목록에 생선과 해산물, 육류와 그 가공품 및 달걀, 유제품 같은 동물성 식품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부부에겐 큰 변화였다. 회사에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외식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하기에 집에서 하는 식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날 그 결심 뒤 우리 집 부엌은 “Fish, Meat, Eggs and Dairy Free Zone”이 되었다. 




채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가끔 육식도 하다 보니 내 채식의 정체성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뭐야! 듣고 보니 너는 비건이 아니네? 그럼 뭐라고 하는 건데?” 

“글쎄. 거의 비건? 아니면 노력하는 비건?” 


내가 어떤 유형의 식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쯤에서 아리송한 채식주의자 용어를 알고는 넘어가야겠다. 




프룻테리언 Fruitarian 

동물과 식물을 죽이지 않고 채취할 수 있는 열매(과일과 씨앗, 견과류)만 먹는다. 

비건 Vegan 

육류, 생선, 해산물, 달걀, 우유, 유제품에 더해 벌이 만드는 꿀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락토 베지테리언 LactoVegetarian 

우유와 유제품(치즈, 버터, 크림, 요구르트)을 허용한다. 

오보 베지테리언 OvoVegetarian 

달걀 같은 동물의 알을 섭취한다. ovo는 라틴어로 ‘알’을 뜻한다.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Lacto-Ovo Vegetarian 

우유, 유제품, 달걀을 먹는 채식주의자로, 보통 서양에서 말하는 베지테리언이 이에 속한다. 

페스코 베지테리언 Pesco-Vegetarian(Pescetarian) 

우유, 유제품, 달걀에 더해 생선과 해산물도 먹는다. 

폴로 베지테리언 Pollo-Vegetarian 

우유, 유제품, 달걀, 어류, 조류(닭, 오리, 칠면조 고기 등)까지 허용하되,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는다.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기본적으로 채식을 하지만, 개인적 욕구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한다. 

옴니보어 Omnivore 

육류와 채소를 골고루 먹는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남편과 나는 플렉시테리언에 가까운 것 같다. 가끔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나 개인적 욕구에 맞춰 육식하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을 줄이고 생명을 중시하는 소비 생활을 유지하면서 육식하는 다른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의 선택적 육식으로 우리의 채식 생활은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앞일이야 알 순 없지만, 아마도 고기를 점점 덜 먹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식하면 기분이 좋기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신념이나 윤리적 죄책감도 있지만, 한동안 맡지 않은 우유, 버터, 고기 냄새와 맛 때문일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흙에서 기른 재료로 만든 식단이 주는 싱싱한 맛을 알아버렸고, 그것만으로도 충만하게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끼만큼의 변화를 원한다면, 에세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책 훑어보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고기 대신 콩을 먹는다면?" (The Atlantic)

https://youtu.be/2jtDZXbN-_c



"채식은 당신의 건강 지켜주고, 지구 환경도 살립니다"(헤럴드 경제)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12140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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