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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분수 Jan 24. 2018

3. 치즈를 포기하지 않은 완전 채식

우리가 채식해서 좋은 점을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새로운 요리 재료와 이국적 음식 맛을 누리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나물과 발효 음식으로 이뤄진 한식 세계에 새삼 감동한다.

과식이 줄고 간식을 덜 탐한다. 남편의 경우 두통과 식은땀이 줄었다.

누군가 대신 죽여주고 내장을 발라서 토막 낸 고기와 생선을 만지지 않아도 된다.

도마와 싱크대가 항상 깨끗한 것만 같다.

수채통 악취가 덜하며 음식물 쓰레기 관리가 수월하다.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내 한 끼를 위해 동물 한 마리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렇다면 채식해서 나쁜 점은?


외식할 때 식당과 음식 종류가 제한적이다.

채식에 익숙해지면 과식도 하고 간식도 자주 탐한다.

도마와 싱크대가 깨끗한 것 같아서 대충 닦는다.

가끔 유제품이 든 빵이나 케이크를 먹고 나면 방귀 냄새가 지독하다.

채식 초반 금단 증세가 있다.


그렇다. 항상 먹던 것들을 갑자기 끊자 몸이 그것들 때문에 안달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달걀부침이나 베이컨이, 점심에는 햄버거나 자장면이, 저녁에는 갈치구이나 뚝배기 불고기가, 밤에는 양념 통닭이 생각났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무엇이었을까?

우유는 간단히 두유로 대체할 수 있었다. 소시지와 베이컨은 암 유발 식품이라니 포기가 쉬운 편이었다. 이런저런 고기 종류나 해산물을 제치고 나를 가장 괴롭힌 식품은 달걀이었고, 남편에게는 치즈였다.





달걀

달걀은 이런저런 음식에 두루 쓰는 재료이다. 이것만 넣으면 빵과 케이크 맛이 마법처럼 부드러워지니 제과제빵에도 빠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대부분 식구에게 타박받지 않는 음식 재료라서 우리 식탁과 떼놓고 생각하기가 힘든 것 같다. 딱히 뭘 요리해야 할지 모를 때 달걀만 있으면 식사 준비가 수월하니까.


샛노랗고 물컹한 노른자가 숟가락 안으로 주룩 흘러드는 달걀부침, 새우젓 냄새가 살짝 풍기는 야들야들한 달걀찜, 색이 고와 밥상을 살리고 아기 엄마들도 살리는 달걀말이, 미리 준비해놓으면 출출할 때 한 개씩 까먹기 좋은 삶은 달걀, 부글부글 끓는 냄비에 이것 한 알만 깨 넣으면 영양까지 확보한 것 같아서 내 몸에 덜 미안해지는 라면, 달걀 풀어 넣은 볶음밥, 오므라이스, 프렌치토스트…


아! 도대체 달걀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인가! 채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달걀을 중독 식품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우리들의 달걀 사랑을 이해하는 어떤 사람들이 달걀 대체품을 만들기도 했다. 해조류로 만든 이 가루 식품은 물과 섞으면 엉겨 붙어서 달걀과 비슷해진다고 한다. ‘이런저런 첨가물을 넣어 가공한’ 가짜 달걀 식품과 ‘서로 공격하지 말라고 주둥이를 잘리고 온갖 스트레스에도 명이 된다면 2년 동안 A4 종이만 한 공간에서 알만 낳다가 결국 도살되는 닭이 낳은 거의 완전식품으로 알려진’ 달걀 중에서 뭐가 더 좋고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달걀 대체품이 있는 줄 몰랐고, 금단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탈출구에 매진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달걀을 흉내 낸 채식 요리들이 꽤 있었다.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을  강황 가루를 조금 섞은 두유에 빵을 적셔서 구워 먹었다. 여기에 발효 향을 내는 뉴트리셔널 이스트* 넣으면 맛과 모양이 더욱 그럴듯해진다.

몽글몽글한 에그 스크램블이 아른거리는 아침에는 두부 스크램블을 시도했다. 고슬고슬하게 으깬 두부에 강황 가루나 뉴트리셔널 이스트로 맛과 색을 낸다. 여기에 토마토를 썰어서 함께 볶고, 올리브유를 발라서 구운 빵 위에 얹으면 색깔도 살고 맛도 더 좋다.

부침개 반죽에 달걀을 넣지 않고 밀가루나 메밀가루, 부침가루만 써도 잘 부쳐진다. 특히 단백질 함량이 높은 메밀가루로 전이나 팬케이크를 만들면 음식 질감과 향이 훨씬 좋고 뱃속도 든든하다.

엄마는 만두 속에 달걀을 넣지 않으면 잘 엉기지 않는다고 일러주시곤 했는데, 국물 쫙 뺀 김치를 송송 썰고 으깬 두부에 숙주나 부추 등으로 버무리면 만두 속으로서 문제가 없다. 만두피 반죽에 달걀을 넣지 않아도 만두 모양이 잘만 나옴은 물론이다.

달걀 없이 제과제빵도 가능하다. 연두부나 바나나를 이용하면 브라우니 같은 걸쭉한 반죽을 만들 수 있다. 베이킹소다와 레몬, 식초는 케이크의 부푼 감촉을 살려준다. 각종 요리에서 달걀 대체품으로 전분과 아마 씨 가루도 사용해볼 만하다.


채식을 시작하고 첫 몇 달은 뉴트리셔널 이스트와 강황 가루로 달걀 요리를 흉내 내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일부러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을 일이 없다. 달걀을 사지 않으니 요리할 수 없게 되고, 보지 않고 먹지 않다 보니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채식하고 두세 달이 지나자 달걀 없는 삶에 익숙해졌다. 지금도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달걀말이를 보면 맛있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만, 그뿐이다. 달걀말이 몇 조각으로 얻는 혀의 즐거움보다 닭장 속에 갇힌 닭에 의존하지 않는 내 식생활에서 오는 만족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2017년 달걀 파동으로 가정이고 식당이고 슈퍼마켓이고 온 나라가 난리였을 때 내가 얼마나 태연했던지 생각하면 좀 자랑스럽다.


*뉴트리셔널 이스트 Nutritional Yeast

뉴트리셔널 이스트는 맥주나 포도주, 빵을 만드는데 쓰는 효모를 포도당이나 당밀 같은 먹이를 주고 며칠간 키운 뒤에 열을 가하고 말려서 만든다. 옅은 노란 빛깔을 띄며, 모양은 마른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누른 부스러기 같다.  효모가 비타민 B12 생성하는 박테리아를 자연스럽게 만나서 자라면 비타민 B12 함유한 뉴트리셔널 이스트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있는 대부분의 뉴트리셔널 이스트는 B12 따로 첨가한 것이다. 비타민 B12 채식으로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라고 알려져 있어서,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쓰는 뉴트리셔널 이스트에 B12 첨가해 파는 경우가 많다. (https://en.wikipedia.org/wiki/Nutritional_yeast)





치즈

한국의 나물 반찬이나 김치 같은 발효 음식에 익숙한 나에게 치즈는 기호식품에 불과하다. 없으면 안 먹으면 된다. 그런데 남편은 미국인이다. 내 멋대로 과장하자면 그의 반은 치즈가 길렀다고 할 수 있다. 채식을 결심하고 앞으로의 식사를 생각하면서 남편의 뇌가 치즈에 닿았을 때, 그러니까 스테이크 없는 주말과 돼지고기 없는 보쌈이나 불고기 없는 한식, 칠면조 고기 없는 추수감사절을 힘겹게 양보한 뒤에 그의 상상이 ‘치즈 없는 피자’에 닿았을 때, 그의 얼굴은 막막함이 겹친 사색 상태였다. 모짜렐라 치즈가 늘어지지 않는 피자, 체다치즈가 녹아내리지 않은 햄버거, 치즈 토핑을 올리지 않은 타코, 새하얀 사워크림과 치즈가 빠진 부리또… 말이 되냔 말이다!


남편은 공공의 이익만큼 자기 행복도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채식도 치즈도 포기하지 않았다. 문제는 비건 치즈로 비교적 간단히 해결되었다. 시중의 비건 치즈는 전분과 식물성 기름이 주재료이다. 일반 치즈처럼 길게 늘어지는 끈기는 좀 부족하지만 맛과 냄새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비건 모짜렐라 치즈의 재료를 보면, 완두콩 단백질과 감자 단백질, 전분, 식물성 기름 등을 주재료로 썼다. 우리는 가끔 피자나 라자냐를 만들 때 이 가짜 치즈를 쓴다. 남편의 샐러드 점심 도시락에 조금씩 썰어 넣는 비건 체다 치즈도 모짜렐라 치즈와 성분이 거의 같다. 다만, 체다 치즈의 노란빛을 내기 위해 고추나 파프리카 가루, 붉은 열매 씨앗으로 만든 가루 등을 더한다.


살펴보는 김에 비건 마요네즈도 한번 볼까?

나는 콜슬로나 샐러드드레싱을 만들 때 마요네즈를 쓴다. 자주 쓰는 재료는 아니어서 한번 사두면 반년 넘게 쓴다. 비건 마요네즈는 식물성 기름과 식초, 소금, 설탕, 물, 약간의 전분과 레몬즙 등으로 만든다. 일반 마요네즈와 달리 달걀노른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제품 성분에 콜레스테롤이 없다. 비건 치즈도 마찬가지로 콜레스테롤을 함유하지 않는다


비건 마카로니 앤드 치즈

뉴트리셔널 이스트의 힘을 빌리면 집에서도 치즈 맛을 낼 수 있다. 우리가 즐겨 만드는 치즈 맛이 나는 음식은 마카로니 앤드 치즈이다. 한국 아이들의 일요일에 짜파게티가 있다면, 미국 어린이들의 방과후는 마카로니 앤드 치즈(맥앤치즈)가 책임진다. 맥앤치즈는 치즈, 우유, 버터, 밀가루를 범벅 해 걸쭉하게 만든 국수요리이다. 치즈와 우유, 버터를 뺀 비건 맥앤치즈는 믹서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영양도 훨씬 좋다.

나를 맥앤치즈의 세계로 안내한 남편의 요리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감자와 양파를 삶아서 어느 정도 김을  후에 뉴트리셔널 이스트와 캐슈넛, 강황가루, 후추, 소금을 넣고 믹서에 간다. 뉴트리셔널 이스트를 많이 넣고 재료를 곱게 갈수록 부드럽고 걸쭉한 치즈와 비슷해진다. 여기에 준비한 파스타를 섞으면 .

밀가루면으로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을 감자가 대신하고, 뉴트리셔널 이스트가 내는 독특한 향이 그윽하게 퍼지면서 입안을 차지게 감도는 맛이 아주 그만이다. 비건 맥앤치즈를 처음 먹던 날 나는 말해야 했다. “정말 이게 치즈가 아니라고?”


집에서 만드는 비건 치즈

채식을 시작하고 얼마 동안은 비건 치즈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은 직접 치즈를 만들기도 했다.

집에서 만드는 비건 치즈는 주로 캐슈넛과 뉴트리셔널 이스트, 올리브 오일, 레몬즙, 마늘, 소금 등으로 만든다. 캐슈넛 대신 구운 가지 속으로 대신하기도 하며, 두유나 아몬드 우유, 전분도 종종 재료로 등장한다. 치즈 색깔을 내기 위해 큐민이나 고운 고춧가루를 넣고, 물컹하면서 탱탱한 질감을 위해 한천을 쓰기도 한다. 치즈 향은 약간의 낫또나 된장으로 살릴 수 있다.




누군가는 흉을 볼지도 모른다. 채식한다더니 예전에 먹던 음식 흉내나 내고 진정한 채식을 할 줄 모른다고. 채식이라면 풀만 먹는다는 고정관념을 져버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또는, 채식주의자는 자연식과 건강식만 먹는 좀 까다로운 별종이면서 고기 먹는 사람을 야만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기대를 벗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건 치즈 같은 가공식품에 대한 걱정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예전 입맛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 동물성 식품이 제외된 삶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우리가 식습관을 바꾸려는 목적은 분명하다. 고기 생산을 줄여서 식량 재분배를 기대하고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굶주리는 십억 지구인의 반대편에 선 사람으로서, 탐욕에 사로잡힌 한 인간으로서 내 발자국을 돌아보려는 시도이다. 공장식 사육과 마구잡이 어획의 윤리적 문제를 넘어 그 뒤에 감춰진 사회, 환경적 비용의 진실에 경악하고 그에 반기를 든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우리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 채식을 선택했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끼만큼의 변화를 원한다면, 에세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책 훑어보기!

채식한 날짜 수에 따라 얼마나 많은 물과 숲, 곡물을 아끼고 동물을 살렸는지 계산해주는 웹사이트

http://thevegancalcula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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