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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5. 책편지] 저녁, 가족의 말

- 다자이 오사무, 《사양》

by 겨울아이 환

안녕하세요,
오늘도 제 편지를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 무탈하게 보내셨나요?


저는 큰 아이의 시험 기간에 잠을 줄이고 공부하는 아이 옆에 함께 있으려고 애를 써보았어요. 그 여파인지 피로가 누적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에 일찍 잠을 청하여 지금은 비교적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 딸과 함께했던 시간이 벌써 희석되고 있어요. 그렇다고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겠죠? 딸이 힘든 시험 공부를 나홀로 하고 있다는 기분은 덜 들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지난 주 편지엔 다자이 오사무의《사양》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씀 드렸죠. 조금 나누어 보겠습니다. 누군가는 스포일러라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전후 일본 소설인 이 작품을 읽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오늘의 편지는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주인공 가즈코와 나오지 남매는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자제입니다. 이들의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삽니다. 어머니이지만 가장 귀여운 인물로 묘사됩니다.

남매는 달랐습니다. 장녀인 가즈코는 도쿄를 떠나 어머니와 시골인 이즈로 떠나야 하는 상황을 떠맡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제목 '이즈의 무희'의 그 이즈입니다. 이제 이곳의 오래된 중국식 시골집이 그들의 새로운 집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픈 어머니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가난한 삶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한편 남동생 나오지는 도쿄에서 무기력하고 방탕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작가 지망생이지만 자신의 길을 열어가지 못합니다. 유명하지만 방탕하게 살아가는 작가 우에하라와 어울리며 마약 중독과 자살 충동에 시달립니다.

나오지가 이즈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몰락한 집안에 오히려 짐이 될 것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기분을 맞추려고 아픈 몸으로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가즈코는 더 이상 귀족이었던 과거의 가치나 전통적 삶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나오지와 어울렸으며 그녀가 동경했던 소설가 우에하라에게 그녀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아내도 아이도 있었던 그는 모호하게 반응합니다.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결국 그의 사랑을 얻어내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 그녀의 새로운 삶은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인 것처럼 묘사됩니다.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가즈코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전통적 가치를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녀였지만, 현대의 독자가 보기엔 그녀는 결국 구시대의 그늘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아이를 키우며 사는 삶의 무게를 알기에, 그녀가 왜 새롭게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마음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가즈코였다면 가족의 몰락으로 인한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마치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로라처럼 그 집을 떠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이야기의 제목은 《사양》이 될 수는 없었겠지요.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직후 기존의 가치가 전복되어 가는 일본의 사회 상황을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전 '한 가족이 저물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내가 태어나면서 구성된 원가족은 부모 세대의 죽음을 통해 해체의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겪기 마련이니까요. 한 세대가 물러나는 쓸쓸함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나이에 이르러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꽤 예정된 슬픔이지만 결코 예비하고 싶지 않은 감정에 대해 떠올려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장녀인데요, 이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장녀의 삶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고 떠올린 작품이 몇 있습니다. 그 작품을 읽을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말이지요. 기회가 되면 그런 소설 이야기를 모아서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저는 가족은 행복의 원천이라는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 이미지에 상당히 취해 있던 모양입니다. 제가 놓치고 있던 가족이라는 존재의 민낯과 그 리얼리티에 대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 가족은 변수인가요? 축복인가요?


어제 가족과 함께 생애 첫 독서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고 사랑하면서, 가족과는 책 얘기를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롭게 느껴졌습니다.


첫 가족 독서 모임은 캐나다 작가 조던 스콧의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로 진행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어쩌면 궁금하실 수도 있는 가족 독서 모임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이번 주 토요일도, 제 편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마가 벌써 끝났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지난 출근길에는 매미 허물을 보았습니다. 빠르게 여름으로 진입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폭염에 건강 유의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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