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물어 가는 하루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편지를 보낸 다음 날, 서울 국제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주말이었지만 밀린 업무가 있어서 허겁지겁 마무리하고 갔더니, 잠깐 ‘바쁜 사람 코스프레’를 한 셈이 됐습니다.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코엑스까지 이동하는 제 모습이 마치 “지금 협력사와 회의만 두 개를 동시에 뛰어야 해!”라고 외치는 CEO라도 된 것 같더군요. 현실은 그저 책이 좋아 도서전에서 실컷 책 구경을 하고 싶어 마음이 급한 독자 한 명일 뿐이었지만요.
도서전의 끝자락이라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아 기대만큼 깊이 둘러보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김애란 작가님, 윤성희 작가님의 북토크를 들었습니다. 두 분 모두 '거짓말'과 관련된 제목의 소설집(<이 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을 내셨죠. 거짓말이 주는 위로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셨는데, 작가님들께서도 위로가 쉬운 일은 아니라는취지로 말씀하신 대목이 제겐 되려 위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을 잘한다는 것, 제겐 평생 숙제입니다.
문형배 헌법 재판관님의 강연도 함께했습니다. 말씀을들으며 시야가 매우 깊고 넓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 권의 사람책을 만나는 기분이었어요.
SNS에서 뵙고 궁금했던 《자연관찰일기》의 이다 작가님을 만났고, 도서전 주빈국 대만의 천쉐 작가님께 사인도 받았습니다. SNS에서 눈여겨보던 출판사의 책들을 한자리에서 살펴본 것도 즐거웠습니다.
끌리는 책들을 모시듯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책 쳐다보는 게 왜 이렇게 재미있지? 진로를 출판업으로 잡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이건 살짝 늦은 감이 있어서 패스합니다. ^^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닌지라 주말은 몸이 쉬어야 하는데, 지난 주말은 업무에 도서전에 시계와 눈치게임을 하며 긴장 속에 보냈더니, 이번 주말엔 제 몸이 먼저 저항했습니다. 하루 종일 충전되지 않은 배터리처럼 기운이 빠져 있다가 이제야 겨우 추스르고 이 글을 씁니다. 다행히 오늘이 다 가기 전에 편지를 보낼 수 있네요. 다음 주엔 아침 햇살과 함께 띄울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보겠습니다.
지난주부터 장마의 기미가 보이더군요.
비 오는 날에 읽으면 좋을 소설들의 내용을 하나씩 떠올리며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난 편지에도 언급했던, 일명 ‘방구석 비 맞기’ 아이템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윤흥길의 <장마>였습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남긴 상처와 고통을 장마로 형상화하고, 그 속에서 해소의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이지요. '장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두 전선이 대치하는 이미지를 환기하는 작품입니다.
이어 손창섭의 <비 오는 날>입니다. 한국전쟁 직후의 부산, 동옥 동욱 남매의 우울한 삶이 제게도 습기처럼 스며드는 것만 같습니다.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은 어떨까요. 온 세상이 물에 잠겨버린 디스토피아가 펼쳐집니다. 읽다 보면 정말 방수 휴대폰 케이스를 챙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 문학에만 비가 내리는 건 아닙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온 여름을 이 하루에>에서는 태양을 본 아이를 질투해 가두어 버리는 화성의 세계가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장마철 불평이 오히려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이지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에서도 비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나생문 앞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화는 음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요즘 지하철에서 옆 사람 통화를 들을 때의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학 속의 비는 대개 인간에게 적대적으로 등장합니다. 왜일까요?
인간은 물에서 태어났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쫓겨나야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물을 완전히 다스릴 수는 없지요. 필요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 - 그 근원적 불안이 비를 위협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비 오는 날 기운이 처지는 건 인간 본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다음을 어떻게 보내느냐겠지요. 저는 결국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비는 멈출 수 없다. 내 손에 잡히는 건 책과 커피다. 영화와 스파클링 음료도 좋다.”
티스푼이나 탄산수 뚜껑이라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작은 위안을 얻습니다.
오늘 편지의 부제를 '저물어 가는 하루'라고 붙인 건 최근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때문입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탓인지, ‘저문다’라는 말에 자꾸 마음이 머뭅니다.
물론 저무는 건 하루만이 아니지요. 제 스마트폰 배터리, 지난주에 사둔 냉장고 속 복숭아, 그리고 체력도 꾸준히 저물고 있습니다. 다행인 건, 저물어야 새롭게 차오르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이겠지요.
다음 주엔 <사양>을 둘러싼 생각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도 제 편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마 한복판에서, 비는 멈추지 않지만 마음만은 가볍게, 치킨 한 조각이라도 붙들고 버텨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