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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14. 책편지] 책으로 배우기

세상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울 수 있을까?

by 겨울아이 환

밤이면 가을이 찾아오고,

낮에는 하늘이 하얀 잉크로 파란 바탕에 마음을 받아 적는 시절이 왔습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걸으니, 요즘은 자주 행복을 느낍니다.


어제 운동을 하며 문득, ‘세상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호흡이 불안정하다며 여러 번 설명해 주셨지만, 끝내 뜻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채 수업을 마쳤습니다.

매일 하는 호흡조차 알아차리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언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곱씹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농구 교실에 처음 가는 아이에게 『내일은 농구왕』을 꺼내 주고, 애니메이션 <슬램 덩크>를 보여주는 엄마입니다.

물론 책을 읽고 만화를 본다고 해서 아이가 곧장 농구를 잘하게 될 거라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세계의 어휘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몸의 움직임을 배우는 데에도 언어가 필요하니까요.


둘째 주 수업을 마친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이제 좀 적응됐어.”

그 적응은 제가 건넨 책보다는 몸의 반복과 경험 덕분일 것입니다.


몸을 쓰는 일은 늘 초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호흡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 졌습니다.

‘테드 창의 『숨』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더라’ 하고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집중을 못하니, 운동이 더뎌도 이상하지 않지요.


책과 몸 사이라.

예전에 지인과 나눴던 대화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은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의 대화였지요.

아니, 이렇게 기본 호흡조차 버거워하면서, 그 대화에서는 어떻게 호흡이 모든 인생 과업의 치트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얘기를 나눴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 대화와 나의 실제 호흡 사이 - 그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결국 테드 창의 단편 『숨』을 펼치며, 운동 중에 했던 딴생각을 실현하였습니다.

짧은 소설이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진입도,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은 작품이지요.


이야기 속 주인공은 금속 실린더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야 살아가는 기계 존재 해부학자입니다. 뇌의 기전이 궁금해진 그는 마침내 자신의 뇌를 직접 해부하기로 결심합니다.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동료들이 일정한 시각에 연구실에 들리도록 스케줄을 조정해 두기도 합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결박한 채 해부를 시작합니다.

연구의 성공과 죽음이 동시에 자신의 손에 달린 긴장 속에서 그는 해부를 완수합니다.

하지만 유레카의 순간에도 뛰쳐나갈 수는 없습니다. 몸을 묶어둔 채 스스로의 뇌를 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가 발견한 것은, 기계 존재의 뇌는 공기의 흐름 패턴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기억 역시 그 패턴이 회로를 지나며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영원히 저장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우주 차원에서 공기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며, 우주가 평형을 향해 갈수록 그들의 사고와 활동도 느려지다 결국 멈추게 되리라 예측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깨달음을, 미래에 자신들을 발견할지도 모를 존재에게 편지로 남깁니다.


공기의 패턴, 기억의 패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호흡은 들이쉬고, 공간이 있고, 내쉰다.”

운동은 바로 그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공간에 내 몸을 위한 공기의 패턴을 새겨 넣는 과정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물론 몸의 움직임을 글이나 말로 다 배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운동 과정을 돌아보고 언어로 정리하는 일은 운동력을 향상하는데 작은 도움을 줍니다.

마치 『숨』의 주인공이 해부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요.


창밖을 보니 파랗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대기는 저마다의 패턴을 이어갑니다. 하늘이 우리의 생각을 받아 적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쩌면 소설 속 기계 존재의 뇌에서 기억이 발생하는 원리와 닮아 있지 않을까요?

하늘도 나름의 생각을 대기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아, 구름점성학이라도 주장할 것 같은 엉뚱함으로 번지고 있는 이 글을 급히 마무리해 봅니다.


주말의 비로 가을이 조금 더 가까워지겠지요. 곧 다시 더워졌다가, 또 차가운 바람이 성큼 다가올 겁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도 제 편지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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