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주로 어디에서 책을 읽으시나요?
저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장 많이 읽고, 주말에는 거실 빈백에 반쯤 기대어 책을 펼칩니다.
가끔 카페에도 가지만, 책을 읽는다기보다 ‘읽을 마음’을 오래 즐길 때가 많습니다.
라떼 거품을 바라보고, 책과 음료의 페어링을 천천히 음미하는 날도 있지요.
오늘은 편지를 쓰며 독서에 적합한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출근 전에는 읽을 책을 챙기는 편이지만, 지하철에서 독서 대신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집에서 아이가 전화로 엄마를 찾거나, 직장에서 이른 업무 연락이 오면 책장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습니다.
돌아보니, 독서는 결국 타인과 얽히지 않은 시간에 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소음에 다소 민감한 편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는 열린 공간보다 조용한 폐쇄형 공간이 독서에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개방형 교실은 소음의 변수가 커서, 아동의 읽기 이해와 유창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개방형 교실은 여러 학급이 칸막이 없이 큰 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전 아동은 아닙니다만, 공간의 형태가 저의 독서에도 차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거실에 커다란 탁자를 들였습니다. 억지로 독서 시간을 정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아직은 제가 주로 앉아 있지만, 제가 잠든 밤이면 딸아이가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곤 합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책을 읽는 광경을 상상하고 만든 공간이기는 하지만, 고독을 즐기는 독서가에게는 다소 훈련이 필요한 프로젝트입니다. 지금까지는 함께 모이지 않고 번갈아 가며 읽는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큰 탁자 덕분에 거실은 한결 도서관 같아 보이고, 분위기도 따뜻해졌습니다.
충분한 책과 긍정적인 대화가 오가는 가정 문해 환경은 아이들의 읽기 능력 향상에 의미 있는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자녀가 있는 우리 집의 거실은 도서관 같은 풍경을 조성하는 것이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책은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들고 다니기보다 자리마다 책을 비치해 두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책이 있으니, 한 권을 끝까지 붙잡고 읽기보다 그 자리에 놓인 책을 집어 들어 읽게 됩니다. 출퇴근길에는 전자책으로 인문서적이나 에세이를, 직장에서는 짧은 틈에 읽기 좋은 사전식 책을, 집에서는 주로 소설을 읽습니다. 자연스레 병렬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독서 습관이 먼저였고, ‘병렬독서’라는 단어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독서법은 앞부분의 내용을 불러오는 부담만 줄이면 오히려 더 다양한 책을 읽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한 권의 책을 지속하는 부담을 낮춰 주기 때문이지요. (병렬독서의 작은 팁: 핵심 인물, 사건을 짧게 메모로 남겨 두거나 밑줄을 쳐 두면 1주쯤 건너뛰고 돌아와도 바로 이어집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에 관한 논의도 흥미롭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일수록 종이책이 이해도에 소폭 우위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페이지를 오가며 정보를 능동적으로 연결하며 읽는 독자에게는 격차가 작거나 거의 없어 보입니다. 숙련이 덜 된 어린 독자에게는 종이책이 내용 이해에 더 유리하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저는 책을 사서 집에서 읽는 편입니다. 빌리고 반납하는 과정이 바쁜 일상에는 다소 번거롭습니다. 또한 책 귀퉁이를 접거나 밑줄을 긋는 습관까지 있습니다. 그러다가 집이 책으로 포화 상태가 되면 전자책과 도서관 책도 병행하고, 때로는 책을 정리해 내다 팝니다. 5년 전 이사 때는 2000년 이전 책을, 작년 이사 때는 2005년 이전 책을 정리했지만,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은 골라 남겨 두었습니다.
오늘은 독서와 관련한 다소 잡다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평범함이 주는 공감을 기대해 봅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는 이와 비슷한 주제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지하게 다뤄집니다. 생활 속 작은 장면들이 독서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어떻게 책을 읽으시나요? 책 읽기에 좋은 장소나 팁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남은 시간이 무한하지 않은 만큼, 눈 건강과 시간을 아껴 알뜰하게 읽고 싶습니다.
이번 주말은 마치 해외 휴양지의 우기처럼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외출은 불편하지만, 책 읽기에는 좋은 날입니다. 지난주에는 구병모 작가의 신작 소설 《절창》과 미국 작가 앤 패칫의 에세이 《진실과 아름다움》을 읽었습니다. 두 책 모두 ‘책과 맞닿은 삶’을 진하게 다룹니다. 책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아끼고, 세상의 많은 이야기 속에도 독서하는 삶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지난 책이 다음 책을 자연스레 이끌어 주는 듯합니다. 이 취미가 쉽게 끊기지 않는 이유겠지요.
새로운 주는 9월입니다.
더 선선해진 공기 속에서 가을의 맛을 길게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