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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May 12. 2023

결국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05

날이 흐려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샤워를 하는 내내 샤워기에 목을 매달린 저를 상상했습니다. 그래도 어제도 괜찮았지 않았느냐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면서 출근을 서둘렀지요.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아 그날의 일정을 체크했습니다. 제가 부서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전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불과 이삼 분이면 끝날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 인근에 앉아 있는 팀장과 주무관의 대화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부서의 중요한 현안업무이자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던 그 업무를 진척시키는 방향에 대한 것이었지요. 대화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고, 그저 아주 사소한 결정을 내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잠시 후면 두 사람이 나름의 결론을 내린 후 제 확인을 구하러 올 터였습니다.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통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저는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업무에 대해 듣는 것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로 느껴졌습니다. 처음 겪는 감각이 제 온몸을 휩쓸었고, 급격하게 숨이 가빠졌습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사무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갈 곳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춤에 쭈그리고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누구인지 모를 몇몇 직원들이 제 옆을 지나갔지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저는 격렬하게 온몸을 떨면서 울 뿐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게 흔히들 말하는 공황발작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발작이 맞느냐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지요. 아무튼 제 안에 있던 무언가가 그날 터져버리고 말았고, 저는 그대로 무너져내렸습니다. 


한동안 울고 나자 다소 마음이 진정이 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해야 하는 그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지요. 저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우선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사무실로 돌아갔지요. 하지만 부서장이 그런 꼴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본 사무실은 어색한 침묵과 불안한 눈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 목에서 나왔지만 제 것 같지 않은 목소리로 저는 팀장들을 불러모았고, 마치 삐걱대는 목각인형처럼 걸어서 일을 해야 할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 일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그럼에도 오 분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오자 팀장의 걱정과 의문이 뒤섞인 시선이 저를 향했습니다.  




피할 수도 있었겠지요.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스럽게도, 저는 그 와중에 상당히 괜찮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팀장들을 모두 회의실로 불러모았지요. 그리고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제가 우울증에 걸렸고, 하필 오늘 상태가 최악이었으며, 팀장님들이 아까 보신 모습은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말입니다. 


거의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제 팀장들은 제게 과분할 정도로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격려를 해 주고 누군가는 응원을 해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개인사까지 꺼내면서 위로해 주었고 누군가는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일단 며칠이라도 휴가를 좀 내라고. 사무실 일은 자신들에게 맡겨 두고 좀 쉬라고. 


정말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저는 그 말들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의학과 질병에 걸린 사실을 숨긴다고 합니다. 왜인지는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저는 오히려 드러내고 알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옛말에도 아픈 건 티를 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 혼자 세상의 고통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고 한들 드러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 관련 증세들은 더욱 그렇지요. 배려나 동정을 바라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왜냐면, 오래된 속담처럼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니까요. 제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렸다는 사실 자체가 제 정신건강에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조직 내 소문이라는 건 너무나도 빨라서 어차피 곧 알려지게 되더라고요. 저는 제 부서에 속한 사람들이 저의 상태를 소문을 통해 듣고 뒤에서 수군대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제가 직접 정확하게 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물론 아내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 상태를 당연하지만 아내에게 가장 먼저 털어놓았습니다. 그 때 아내는 저를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직장에서 저의 약점이 되어 누군가가 저를 물어뜯을 수도 있다며 우려하더군요. 아마도 그 말도 사실일 겁니다. 직장에서는 원하든 않든 간에 이른바 '적'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지위나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제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은 여러 의미에서 꽤나 맛있는 먹잇감이 되겠지요. 하지만 없지요, 뭐. 물어뜯을 테면 물어뜯으라지요. 물어뜯긴다 해도 죽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보다는 엉망진창인 제 상태부터 당장 해결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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