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07
목요일에도 아침에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면, 약을 늘린 후부터는 그런 증세가 줄어들고 대신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우울하더군요. 저로서는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습니다. 그래서 약을 먹은 후 이불 안에서 고요하고 조용하게 이유 없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나니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 그날의 일기도 쓸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제가 일기 따위를 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제일 하기 싫었던 숙제가 일기 쓰는 거였어요. 다만 우울증이 생긴 후로는 거의 매일 제 상태를 점검할 겸 휴대전화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저는 그걸 일기라고 부릅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매일매일 기록했던 그 일기를 보면서 쓰고 있습니다.
이유 없이 숨이 가쁜 건 한번 발작을 일으킨 후로 새로 생겨난 증상이었습니다. 때로는 마치 잠자는 동안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헐떡거리면서 아침에 눈을 뜨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점심때쯤 매우 큰 용기를 냈습니다. 샤워를 하기로 한 겁니다.
일기장을 보면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기억납니다. '씻고나오기 성공!'이라고 느낌표까지 쳐서 적어 놨네요. 샤워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극단적인 충동을 이겨내며 마침내 샤워를 해낸 제가 스스로 기특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뭘 그리 거창하게 표현하느냐고 웃어넘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의 저에게는 정말 문자 그대로 목숨이 달린 일이었습니다.
씻고 나오자 맥이 탁 풀리더군요. 아침도 먹지 않았는데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뭐라도 꼭 챙겨먹으라는 아내의 당부를 기억하면서 억지로 밖으로 나갔지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초밥집에 가서 초밥을 먹었습니다. 맙소사.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더군요.
이게 우울증의 증상인지 아니면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뭐가 이유든 간에 저는 여러 가지 욕구가 전체적으로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식욕과 성욕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설령 맛있는 걸 먹더라도 그 맛이 딱히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원조 게이머임을 자처하던 저였음에도 게임 또한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책도 보지 않았습니다. 수면욕도 마찬가지여서 눕는 순간 잠드는 걸로 유명했던 제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기 일쑤였습니다. 반면 낮에는 오히려 약기운 탓인지 낮잠을 자는 경우가 늘어났지요. 말하자면 기쁨이라는 감각 자체가 어느 정도 차단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울적해진 마음으로 그날도 병원에 갔습니다. 이틀 만에 만난 의사는 처음에 설명했던 것처럼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에스시탈로프람이 작용하기까지는 적어도 한 달 내외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대신 좀 더 강한 처방이 필요하겠다면서 에스시탈로프람과 벤조디아제핀의 양을 추가로 늘려 주었습니다. 처음에 비해 전자는 1.5배, 후자는 3배(아침약까지 계산하면 4배)가 된 셈이었습니다. 약이 이렇게 자꾸만 늘어나니 슬며시 불안한 마음도 들더군요. 하지만 그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의사는 말했습니다. 부작용이 걱정되거나 할 정도의 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두어 주 정도 더 있으면 상태가 조금씩 괜찮아질 것이니 힘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전날 병원에 다녀온 덕분인지 금요일 아침은 한결 나았습니다. 전날은 일어나서 약 먹고 두 시간 동안 우울했지만 이번에는 그게 한 시간 가량으로 줄었거든요. 그날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자살 충동은 줄어들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점이 너무나 다행이었습니다. 일단 목숨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약을 늘린 효과인가 생각하면서 그날 하루는 온종일 뭐라도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시도가 딱히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입맛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고, 제가 사랑해마지않는 육포에서는 소독약 맛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단순히 점심 메뉴를 정하는 간단한 결정에도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때때로 회사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끔찍한 기분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도 여전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글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주말도 별다를 일 없이 보냈습니다. 다소 무기력하게, 우울함을 끌어안은 채, 하지만 아주 큰 불안감은 없이. 처음으로 자신의 증세를 자각한 지 고작 보름 가량이 지났다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꽤나 괜찮은 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건 그렇게 안심할 때마다 제 뒤통수를 강렬하게 후려치더군요. 매우 아프게 말입니다.
일요일 밤에 아이랑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는 거실에 있었고요. 아이가 갑자기 제게 말을 꺼냈습니다. 다음날 학원 보강이 잡혀 있는데 가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엄마는 좀 무서워하니만큼 상대적으로 만만한 아빠에게 말을 꺼낸 것이었습니다. 워낙 눈물이 많은 아이라 그런지 급기야 눈물까지 보이더군요. 아마도 평소의 저였더라면 안아주며 토닥이거나 또는 위로의 말을 해 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만히 앉아서 울고 있는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애가 울어. 학원 가기 싫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