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08
나중에 아내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방에 들어갔더니 아이는 울고 있는데, 막상 저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그저 아이를 관찰하고만 있는 것 같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 상태가 정말 안 좋은 거구나 하고 느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일은 제게도 상당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나 자신의 공감능력이 그렇게까지 떨어져 있었던가 싶었지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때의 제게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서운 일이었죠. 내가 문제든, 우울증이 문제든 간에.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지나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닷새의 휴식 후였기에 제게는 나름대로 큰 도전이었습니다. 회사로 출발해서 일단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아침 약부터 먹었습니다. 졸음을 유발할 수 있으니 운전하기 전에는 먹지 말라던 의사의 당부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한참 동안 차에 앉아 있다가 가슴이 답답한 게 가라앉을 때쯤 문을 열고 나와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그다지 좋은 하루는 아니었습니다. 팀장 이하 직원들은 제 눈치를 봤고, 저는 그들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누군가가 나를 찾는가 싶어서 더럭 겁이 나더군요. 그날 오후에 진료가 잡혀 있어서 조퇴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사무실을 빠져나올 때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예상치 않게 길이 막혔습니다. 막힐 시간이 절대 아닌데 말입니다. 예약 시각에 늦어질 것 같자 더럭 겁이 났습니다. 오늘 약을 받지 못하면 큰일이라는 두려움이 갑작스럽게 덮쳐오더군요. 동시에 방향 잃은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막히는 길을 향해서, 또 좀 더 일찍 나오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해서 마구 분노를 퍼부어댔지요. 구체적인 건 차마 글로 적기에 민망할 정도입니다만, 어쨌거나 그렇게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갑작스럽게 밀려오니 영 버티기 힘들더군요.
천만다행으로 병원이 진료를 마치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상담 시각을 짧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지요. 일단 약은 기존의 양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이 지났습니다.
매일매일 상태는 비슷했습니다. 아침에는 안 좋았고, 저녁에는 좋아지기를 반복했지요. 다시 말해서 저녁마다 내가 괜찮아진 게 아닐까 싶은 희망을 품고, 다음날 아침마다 그 희망이 박살나는 걸 반복하는 일주일이었습니다. 간신히 일은 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는 없어도 기존의 일은 힘겹게나마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욕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게임도 하지 않았고 TV도 보지 않았으며 책도 읽지 않았습니다. 오직 모바일 게임 하나만은 플레이했는데, 그게 유일하게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모 유명인이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그날 저는 온종일 그 기사만을 반복해서 클릭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기괴하게 느껴지면서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되어 병원으로 갔지요.
똑같은 일상을 자꾸 반복해서 적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의사가 다시 한 번 더 약을 좀 더 늘려 주었고, 그 덕분인지 주말쯤 해서는 상태가 좀 더 나아졌다고 요약하면 되겠습니다. 아내가 기분전환을 해주겠다면서 미용실에 데려가서는 생전 처음으로 두피 마사지도 받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나쁘지 않더군요. 역시 돈 쓰는 건 좋은 일이라며 아내랑 낄낄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 월요일에는 상태가 한결 나아졌습니다. 저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지요. 여전히 아침에는 상태가 나빴지만 오후 무렵에는 기분이 좋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조금 노력하면 남에게 멀쩡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요. 그날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지금까지 치료해 온 과정 중에 오늘이 상태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의사도 함께 기뻐해 주더군요. 그러면서도 신중해야 하니 당분간은 지금 약을 그대로 유지하자고 했습니다. 그간 약 복용량을 늘린 게 세 차례나 되다 보니, 솔직히 저는 이제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얌전히 전문가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지요. 대신 면담을 이제 일주일에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이기로 하고 그렇게 병원을 나왔습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로 상태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일도 깔끔하게 잘 처리했지요. 제 상태를 아는 직원이 저더러 예전이랑 똑같아 보인다고 하더군요. 저는 농담따먹기로 응수하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후 퇴근했습니다. 거의 '기분이 좋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 발작이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