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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May 20. 2023

우울증으로 병가를 신청했습니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12

주초에 병원에 가서 의사분과 병가에 대해 상담을 했습니다. 제가 병가를 낼 수 있겠다고 하니 상당히 기뻐하면서 좋은 선택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다소간의 절차를 거친 후, 저는 질병코드 F322가 명시된 진단서를 발급받았습니다. 


부서 직원들에게 제가 병가를 낼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 제게는 가장 힘들었습니다. 부서장이 자리를 비운다면 남은 팀장들이나 직원들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부서 직원들이 오히려 저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뭐랄까, 문자 그대로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병가 신청 절차는 정말이지 순식간에, 그리고 너무나도 간단하게 완료되었습니다. 인사 부서에 알려준 후 진단서를 첨부한 병가 신청서를 기안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병가를 낼까 말까 했던 수많은 고민들이 다 무엇이었나 싶어서 맥이 좀 풀리기도 했습니다. 반드시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어서 병가는 그 다음 주부터 내기로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두 일 모두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끝났기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마지막 날에 행사를 하나 마무리한 후, 사무실로 복귀해서 팀장님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남기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각이 훌쩍 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정리하고 돌아가려는데 서무주임님이 슬쩍 와서 귀띔해 주더군요. 


"직원들이 일부러 안 가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말이었습니다. 8시 59분에 출근하고 18시 1분에 퇴근하는 사무실이 제 원칙이었기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퇴근시간에 맞추어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있더군요. 


뭔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머뭇머뭇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직원들의 시선이 제게 쏠렸습니다. 하지만 막상 눈을 마주치니 뭐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군요. 잠시 어색한 표정과 자세로 서 있었는데 다행히도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말했습니다. 


"두 달 후에는 꼭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프면 꼭 쉬세요. 부서장이 지금 하는 것처럼, 아프면 반드시 쉬세요."


그렇게 해서 두 달 간의 병가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지금 병가 중인 공무원입니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증세가 너무나 다양해서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지속 기간만 해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한두 달 만에 완치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몇 년 동안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평생 동안 약을 복용하면서 다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느 쪽에 해당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제 목표는 직원들에게 약속한 대로 두 달 후에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의 조언대로 가능한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가라앉아 있는 마음 상태를 차분하게 하고, 운동을 한 후 샤워를 합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얼마간 글을 씁니다. 오후에는 가급적 일부러라도 밖으로 나가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한 후에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합니다.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예전보다는 다소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물론 잠을 자기 전에는 반드시 우울증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심리 상담을 받습니다. 


이런 하루하루의 삶을 의사에게 말했더니 웃으며 말하더군요. 


"좋습니다. 더 이상 바람직할 수 없는 생활 패턴인데요."


물론 쉬고 있다 해서 갑자기 증세가 씻은 듯 낫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그런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나는 그저 일 때문에 지친 것일 뿐이고, 회사에 나가지 않는 그 순간부터 완벽하게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러지는 않더군요. 여전히 가끔씩 상태가 안 좋고, 아침에 약을 추가로 먹어야 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간혹 업무 관련 일이 떠오를 때면 정신상태가 급속도로 저하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두 달 동안 내가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질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최소한, 지금의 저는 죽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일단 만족합니다. 저는 살아야 하니까요. 하고 싶은 게임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습니다. 저를 기다리는 직원들이 있고, 몇 안 되지만 친구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저와 삶을 함께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힘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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