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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08. 2019

탕거 전투 : 장비 일생일대의 대승

삼국지 속 전쟁들 01

  장비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때라면 당연히 탕거에서 승리를 거둔 순간일 겁니다. 대략 216년~217년 사이에 벌어진 이 전투에서 장비는 위의 명장 장합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 장합을 완벽하게 박살내고 이후 한중 공략전의 교두보를 만들어냅니다. 자. 그럼 이 전투의 전후 과정을 한 번 따라가 보실까요?


  그전에 먼저 지도부터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주니의 삼국지 세상(http://blog.naver.com/sjkim2090)의 지도에 기타 표시를 덧붙임. 


 1. 발단 


  214년. 유비는 3년에 걸친 싸움 끝에 유장을 물리치고 익주를 차지합니다. 


  215년. 조조는 장로를 정벌합니다. 한중은 하늘이 내린 요새라고 하지요? 지도를 보면 주위에 엄청난 높이의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고 그 가운데 작은 평지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한중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방어하기 좋은 곳이겠습니까. 장로는 이곳에서 제정일치의 종교 왕국을 건설하고 반쯤 왕 노릇을 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천하를 모두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하는 조조가 그것을 두고 볼 리 없었죠. 


  한중 정벌은 무척이나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본인의 능력에다 행운까지 겹쳐 결국 한중을 차지하죠. 장로는 파중으로 도망칩니다. 파(巴) 지역은 한중 아래쪽의 험지인데 파중/파서/파동으로 나뉘며 이 셋을 일컬어 삼파(三巴)라고도 합니다. 이곳은 이민족의 거주지였고 유장과 장로가 티격태격 다툴 때도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로가 파중으로 도망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적어도 파중 일대에 유비의 세력이 온전히 미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전개


  조조가 한중을 차지하고 장로가 쫓겨 오자 파 지역의 이민족들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래서 215년 9월, 파의 이민족 중 일부가 조조에게 항복하죠. 정사에 두호, 박호 같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파 지역에 살던 이민족의 우두머리 격입니다. 조조는 박호를 파동태수로, 두호를 파서태수로 삼고 열후에 봉하지요. 


  장로 역시 견디지 못하고 11월에 항복하고 맙니다. 이로써 조조는 한중은 물론이거니와 부분적으로 삼파 지역까지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파에서 내려가면 익주의 광활한 평야지대가 나오지요. 조조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비를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익주를 차지하여 기반을 마련한 지 일 년밖에 안 되었는데, 유비의 운명도 경각에 달린 셈입니다. 유엽과 사마의가 나서서 조조에게 권하지요. 유비가 촉을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촉 땅 사람들은 그를 마음으로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공격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조는 유비를 공격하지 않고 돌아갑니다. 


  대신 그는 한중에 하후연과 장합을 남깁니다. 하후연은 조조 휘하에서도 손꼽히는 맹장이었고 또한 그가 신뢰해 마지않는 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장합은 원소 아래 있다가 조조에게 항복한 후 하후연과 세트가 되어 여러 공을 세웠죠. 특히 한중을 점령하기 직전 서쪽의 이민족을 토벌하면서 많은 공적을 쌓은 바 있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후연과 장합의 조합은 훌륭한 인선이었습니다. 

 



 3. 위기


  하후연과 장합은 한중에서 그저 놀고먹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유비를 괴롭혔지요. 주로 하후연이 한중을 지키는 동안 장합이 별도로 일군을 이끌고 익주를 공격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특히 파 일대를 넘나들면서 파 땅의 백성들을 끌어다 한중으로 옮기는 데 집중합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고대 사회에서 백성들을 끌고 간다는 건 곧 노동력, 경제력, 군사력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유비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요. 



  탕거 전투가 216년에 있었는지 217년에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저는 216년 말에서 217년 초, 즉 유수구 전투를 전후한 때가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때 장합은 기세 등등하게 익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합니다. 지도에서 별표로 표시된 곳까지요.


  삼국지연의에서는 탕거/몽두/탕석을 한데 묶여 다루는데, 조금 살펴보면 탕거는 파서군에 속한 탕거현을 의미하고 몽두와 탕석은 탕거현 내의 지명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익주의 중심부가 눈앞에 보이는 곳까지 온 셈이지요. 정사 장합전을 살피면 심지어 파동/파서 두 군을 항복시켰다고까지 합니다. 물론 당시 파서태수였던 장비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었으니 만큼 정말로 두 군을 온전히 차지했다기보다는 일정 부분 승리를 거둔 정도로 보입니다. 그래도 장합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장합의 공격을 막는 임무는 장비에게 주어졌습니다. 관우와 함께 유비의 무한 신뢰를 받는 장비가 직접 인솔하는 병력이라면 익주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 병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패한다면 장합이 익주를 멋대로 활개 치고 다닐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유비는 성도가 아닌 강주에 주둔하며 장비를 후방에서 뒷받침해 줍니다. 장합의 공격을 막는 데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 셈입니다. 장비로서는 결코 패해서는 안 될 싸움이었습니다. 




 4. 절정


  장비는 탕석과 몽두에서 장합과 일전을 벌입니다. 정사 장비전에 따르면 약 50일 동안 서로 겨루었다고 하죠. 아마 공격을 퍼붓는 장합과 험지에 의지하여 그를 막아내는 장비의 대결이었을 겁니다. 


  탕석, 몽두 일대는 산이 험하고 계곡에는 강물이 흐르는 곳인지라 일반적인 평지에서의 싸움과는 그 양상이 크게 달랐습니다. 병력은 밀집되지 못하고 좁아빠진 산길을 따라 길게 늘어졌지요. 장비는 병사 만 명을 이끌고 장합의 진격로와 다른 길을 통해 그를 요격합니다. 그 선택은 적중하였습니다. 장비는 길게 늘어진 장합군의 허리를 끊어 버렸고, 장합의 병사들은 앞뒤가 서로 도울 수 없게 된 나머지 각개 격파당합니다. 장합은 말을 버린 채 두 발로 걸어서 산의 샛길을 통해 도망쳤지요. 그를 따르는 병력은 고작 십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장비가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가장 큰 승리를 움켜쥐는 순간이었습니다. 


  장합은 그야말로 목숨만 붙은 채 한중까지 돌아갑니다. 조조가 임명한 파서태수 두호와 파동태수 박호 또한 황권에게 패하여 도망친 후였습니다. 파 일대는 안정을 되찾았지요. 삼파 일대는 이제 명실상부 유비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5. 결말


 이 싸움으로 인해 유비는 조조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조조에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났지요. 법정은 성도로 돌아온 유비에게 한중을 치자고 건의합니다. 유비는 응낙하지요. 


 217년 10월. 유비가 장비, 마초, 오란을 보내 하변에 주둔합니다. 조조는 좌절감이 키운 사나이 조홍을 보내 대응합니다. 아마도 이건 한중을 공격하기 전에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입니다. 장비나 마초가 워낙 명성이 쟁쟁한 장수들인지라 누구나 이 공격을 주공(主攻)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공격은 이쪽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218년. 유비가 본대를 이끌고 직접 한중으로 출병합니다. 


 3월. 하변에 있던 장비와 마초는 도망칩니다. 오란은 도망치지 못하고 조조의 편에 선 저족에게 목이 달아나지요. 그러나 그 사이에 유비는 한중의 입구인 양평관을 차지하고 앉아 하후연과 맞섭니다. 본격적으로 한중 공방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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