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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20. 2019

한중 전투 : 유비의 비상 (1)

삼국지 속 전쟁들 02

  탕거 전투에서 장비는 장합을 제대로 박살 내 버렸습니다. 장합은 전 병력을 잃고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샛길을 따라 도망갔지요. 이제 파 일대는 안정되었습니다. 다시는 그 누구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참고자료 : 탕거 전투)

 
   유비가 성도로 돌아오자 법정이 이렇게 건의합니다. 
 

  "예전에 조조가 장로를 항복시키고 한중을 평정했을 때 있지 않습니까. 그때 쳐들어왔으면 우리는 큰일 났을 텐데 뜻밖에도 하후연과 장합을 남겨둔 채 그대로 돌아갔단 말이지요. 조조가 머리가 나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닐 겁니다. 아마 무슨 우환이 닥쳤기 때문이겠죠.(그러니 얼른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자. 그럼 이제 생각해 봅시다. 하후연과 장합이 우리 장수들보다 뛰어납니까? 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젠 우리가 한중을 공격합시다! 한중을 차지하면 잘하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고, 중간만 가도 옹주와 양주를 차지할 수 있으며, 최악이더라도 우리 영토를 지키는 방어기지로 삼을 수 있습니다."  


  유비는 그 말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유비는 육십 평생에 처음으로 조조를 상대로 한 선제공격에 나섭니다. 
 
  그러나 유비는 즉시 군사를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217년 10월, 유비는 하변으로 장비와 마초를 보냅니다. 오란과 뇌동이라는 두 장수도 함께 갔지요. 장비나 마초가 워낙 명성이 쟁쟁한 장수들인지라 누구나 이 공격을 주공(主攻)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조조의 대응은 자신이 믿어마지않는 친족 조홍의 파견이었습니다. 조조는 평생 자신의 친족들을 중용했습니다. 아마도 배신과 배반이 횡횡하는 당시 시대에서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자가 필요했기 때문이겠지요. 조홍은 조인, 하후연과 더불어 그렇게 조조의 신뢰를 받았던 친족 장수였습니다. 유비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 정도로 무게감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겠지요. 
 
  조홍은 병사들을 이끌고 하변으로 요격을 갑니다. 그러나 이는 한중을 공격하기에 앞서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유비의 양동작전에 불과했습니다. 본대를 이끄는 장수는 장비와 마초가 아니라 바로 유비 자신이었습니다. 218년. 유비가 본대를 이끌고 직접 한중으로 출병합니다. 
 

하변으로 간 양동 부대와 한중으로 진격한 유비의 본대

 

  유비는 일단 진격로상에 있는 마명각도(馬鳴閣道)를 차지하려 합니다. 아시다시피 익주는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군사의 이동로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당장 탕거 전투에서도 장합이 좁은 길을 따라 진격하다 앞뒤가 분단되어 대패하고 말았죠. 이곳을 확보해야만 한중으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후연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서황을 보내 유비의 진격을 막습니다. 유비가 장수 진식을 보내 마명각도를 차지하자 서황이 요격에 나섰는데, 대승을 거두었고 진식의 병사들은 퇴로를 찾지 못해 벼랑이나 강물에 떨어져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이 공로는 매우 큰 것이었기에 조조가 절을 내릴(假節. 황제의 권한 일부를 부여) 정도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유비는 결국 마명각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치열한 격전 끝에 양평관마저 차지하지요. 양평관은 한중의 서쪽 방면 입구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곳을 차지함으로써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었고, 또한 하변에서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는 마초와 장비가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218년 3월. 하변에 있던 장비와 마초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퇴각합니다. 하지만 조홍의 병력을 다섯 달이나 묶어두었으니 할 일은 다한 셈이었죠. 다행히도 유비가 양평관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안전하게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오란은 도망치지 못하고 조조의 편에 선 저족에게 목이 달아났지만요. 
 
  이때 유비는 이미 한중의 목젖에 칼날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마명각도를 확보하고 진격하여 양평관을 점령한 유비

 

   하후연은 장합과 함께 유비의 군세에 맞섭니다. 물론 조조에게 도움도 요청했죠. 유비가 직접 왔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 합니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붙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조조는 위왕(魏王)이 된 이후로 사방에서 빈발하는 반란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습니다.


  먼저 218년 1월, 허도에서 길본, 경기, 위황 등이 주도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승상장사 왕필이 이들을 진압하지만 그 과정에 상처를 입어 본인도 곧 사망하지요. 오래된 친구이자 부하인 왕필이 죽었다는 소식에 조조는 크게 화냅니다. 그리고 허도에 있는 한 황실의 부하들을 모두 업으로 불러들입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나와서 불을 끈 자들은 왼쪽에 서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놈들은 오른쪽에 서라.”
   ‘불을 껐다고 하면 칭찬해 주겠지?(대부분 왼쪽으로)’
   “불을 끄러 나왔다는 놈들은 다들 반란을 도우려 나온 반역도당이다. 죄다 죽여라!”
   "야 인마......!(뎅겅)"
 
  뒤이어 218년 4월. 멀리 북쪽 유주에서 오환족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조조는 자신의 넷째 아들 조창을 보내 토벌하도록 합니다. 그 후 군사를 조련하여 마침내 7월에 서쪽으로 떠납니다. 같은 해 9월에 장안에 도달하죠. 그리고 10월에 이번에는 남쪽 완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조조는 본래 서쪽으로 떠나면서, 남쪽의 관우를 견제하기 위해 조인을 형주 번성으로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여력이 없었던 탓에 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자 조인을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죠. 기껏 번성까지 내려갔던 조인은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올라갑니다.
 
  이렇듯 사방에서 반란이 발호했던 탓일까요. 기껏 장안에 도착한 조조는 한중으로 진격하는 대신 그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아 버립니다. 그것도 반 년이나요. 아마 보급 문제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제 추측일 뿐입니다. 여하튼 조조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식은 유비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유비에게는 다시없을 천재일우의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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