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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20. 2019

한중 전투 : 유비의 비상 (2)

삼국지 속 전쟁들 03

  해가 바뀌어 봄이 된 219년 1월, 유비는 마침내 선공을 가합니다. 이때 유비의 작전은 실로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우선 유비는 정예병 1만 명을 10부대로 나눈 후 직접 지휘하여 밤중에 장합을 기습합니다. 장합의 부대 또한 정예병이었지만 유비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버텨냈지만 유비의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 불까지 질렀죠. 
 
  그 광경을 본 하후연이 대응에 나섭니다. 이때 하후연은 장합에게 동쪽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남쪽에 있었습니다. 장합이 불리한 상황이기에 하후연은 급한 데로 자신의 병력 절반을 나누어 장합에게 지원 보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유비가 노리던 상황이었습니다. 유비는 자기 자신조차도 적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유비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는 맹장 황충이었습니다. 정군산 높은 곳에 주둔해 있던 황충의 부대는 유비의 명령이 떨어지자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아래로 돌격해 내려갑니다. 병력을 절반이나 내보낸 하후연은 그 기세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황충은 한 번 싸움으로 적을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 하후연의 목까지 베어 버렸지요. 완승이자 압승이었습니다. 
 

   하후연의 죽음을 전해 들은 조조는 통곡하며 진군을 명합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듣고도 유비는 오히려 자신감에 찬 말을 내뱉습니다. 
 

  “조조가 직접 와도 소용없다. 한중은 내가 차지하겠다!”


  조조는 일단 하후연을 대신해 또 다른 친족 조진을 정촉호군(征蜀護軍. 촉을 정벌하는 호군)에 임명한 후 서황과 함께 파견합니다. 급히 남하한 조진은 일단 유비의 장수 고상을 격파하여 유비의 기세를 꺾어놓습니다. 뒤이어 조조의 대군이 드디어 한중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유비에게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한중에서 장안으로 통하는 길은 잔도(棧道)로 이루어져 있어, 군사들은 벼랑에 매달린 줄을 잡고 흔들리는 나무판자를 밟으며 엉금엉금 기어가듯 진군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군량과 물자를 운송하는 것이 지독하리만큼 힘들었죠. 군사들이 초식동물이어서 풀을 뜯어먹지 않는 다음에야, 굶주린 군사들은 싸울 수 없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유비는 다시 양평관으로 물러나 험준한 곳에 의지한 채 지구전으로 돌입합니다. 조조와는 달리 유비에게는 아무런 보급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냐고요? 최종행정병기이자 내정기계인 군사장군 제갈량이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끊임없이 보내 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조는 단기간에 결판을 내고자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그 기세가 얼마나 흉흉한지 심지어 유비가 있는 본대에까지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주위 부하들이 퇴각해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유비는 크게 화를 내며 거부합니다. 본래 유비는 성질이 워낙 더러운 인물인지라, 소싯적에 감찰관인 독우를 두들겨 팬 적도 있었고 훗날에는 수염 없는 자신을 놀렸던 부하를 죽여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유비가 성질을 내니 감히 아무도 무어라 할 수 없었죠. 
 
  그때 법정이 갑작스레 나타나 유비의 부근에서 어슬렁거립니다. 크게 놀란 유비가 외치죠.

 “효직(孝直. 법정의 字)은 어서 화살을 피하시오!”

 그런데 법정이 넉살 좋게 대답합니다.

 “주군께서도 화살을 피하지 않으시는데 소인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유비는 결국 굴복하고 법정과 함께 뒤로 퇴각합니다. 


  게다가 군량으로 고생하는 조조를 더욱 괴롭히기 위해 유비는 황충을 내보내 군량을 탈취하게 합니다. 그러나 조조는 이를 미리 예상하고 방비해 둔 터였죠. 다만 조조는 한 가지를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정사에서는 충성스럽고 진중한 무장이며, 동시에 연의에서는 가히 인간백정이라 할 만한 조운의 존재를요. 
 

  조운은 황충이 돌아오지 못하자 불과 수십 기의 기병을 이끌고 정찰에 나갑니다. 그러다 조조의 대군과 조우하죠. 여기서 조운은 그 얼마 안 되는 병력을 기막히게 운용하여 오히려 다수의 적을 농락합니다. 게다가 심지어 부하 장수가 다쳐서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니 직접 구해주기도 하죠. 이후 조운은 공성계를 펼쳐 조조의 병력을 격퇴합니다. 다음날 유비가 그 말을 듣고는 이렇게 칭찬하지요. 
 

  “자룡의 한 몸은 모두 담 덩어리인 모양이오!”





  3월부터 5월까지 조조는 지속적으로 공격해 옵니다. 그러나 유비는 끝내 조조를 격퇴해 냅니다. 결국 군량이 떨어진 조조는 계륵(닭갈비)이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중이라는 땅이 마치 닭갈비처럼 먹을 게 없지만 버리기에도 아깝다는 의미였죠. 
 
  그러나 유비에게 한중은 계륵이기는커녕 매우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일단 이곳을 확보함으로써 더 이상 파 일대를 공격받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량주 일대를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였고, 동시에 동쪽으로는 상용을 차지하여 형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통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의미도 있었죠. 예전 한고제 유방이 한왕으로 책봉되었을 때 수도가 있었던 곳이 바로 한중군 남정현이었습니다. 즉 한중은 유방이 대업을 이루어낸 기틀이 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219년 7월, 유비는 한중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조조는 한실의 역적이다. 
   이제 나는 조조와 대등한 입장에 서서
   바야흐로 역적을 토벌하겠노라! 
   (참고자료 : '한중왕표' 번역 및 주석)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에 즉위합니다.  그와 동시에 형주에서는 관우가 무신(武神)의 맹위를 떨치며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유비에게는 더 이상 장해물이 없었습니다. 일생에 걸쳐 그를 가로막았던 숙적 조조를 격파할 때가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지요. 



  그리고...... 그때 강동에서 쥐새끼 한 마리가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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