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만화 읽기 11
[최애가 옆자리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어! / 츠츠이 테츠, 스가와라 코유비 / 프리지에 / 전 7권(완결) / 권당3500원(전자책)]
"좋아하는 마음은 굉장한 거잖아. 기왕이면 확실하게 '좋아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마나카 사키코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아이돌 그룹 '하루이로 선샤인(하루선)'의 광팬이다. 그중에서도 치로라는 멤버는 사키코의 최애로,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한다면 치로에 대한 덕질이야말로 사키코의 존재 이유나 마찬가지다. 그런 사키코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만난 옆 자리 짝꿍의 이름은 요시다 치히로. 바로 사키코의 최애 아이돌인 치로였다. 사키코는 자신이 치히로의 열렬한 팬임을 알리며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된다. 한편 두 사람과는 반이 다른 친구 토자와 마아야까지 합류하면서 세 사람이 좌충우돌 학창 생활을 보내는 이야기.
......그렇게 가볍게 소비할 법한 흔한 코미디로 여겨지는 초반부지만, 실은 사람 간의 관계성에 대한 묵직한 고민과 깊은 고찰이 작품 내에 녹아나 있다.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내용를 지레짐작했던 나의 편견을 좋은 의미로 박살내 준 작품이다.
좋아한다는 단어는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알고자 하는 욕망. 순수한 헌신과 애정. 알고자 하는 욕망. 소유욕과 독점욕.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고 찬란하게 빛나는 부분과 이면의 그림자가 공존한다. 그렇기에 좋아한다는 단어의 갈래도 여러 가지다. 연인 간의 사랑에서부터 친구 간의 우정이나 가족 간의 유대감, 심지어 명확한 범죄인 스토킹이나 음습한 페도필리아마저도 '좋아한다'는 단어에 구겨넣을 수 있는 개념들이다.
이 작품은 개중에서도 세 가지 부류의 좋아함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첫째는 팬이 아이돌을 바라보는 감정인 '동경'이다. 팬은 아이돌을 좋아하지만, 아이돌이 자신을 좋아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팬이 위치한 공간과 아이돌이 서 있는 공간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렇기에 팬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은 일방적이며 보답을 바라지 않기에 쉬이 꺾이지 않는 좋아함이다.
둘째는 친구 간의 감정인 '우정'이다. 친구라는 관계는 대등함을 전제로 한다. 친구와 친구는 심리적으로 같은 공간 내에서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는다. 그렇기에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쌍방향으로 작동한다. 만일 친구 사이의 감정이 한쪽으로만 흐른다면 그건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셋째는 연인 간의 감정인 '애정'이다. 애정은 일방성과 쌍방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완성되기에 쌍방향이며, 서로에 대한 좋아함의 경중이 있기에 단방향이다. 그러면서도 애정은 동경이나 우정에 비해 반대급부를 훨씬 강하게 원한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기에, 상대도 나를 좋아해주기를 원하는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기에 애정은 셋 중에서 가장 뒤틀리기 쉬운 좋아함이기도 하다.
사키코는 치히로에 대한 동경과 우정 사이에서 헤맨다. 그가 바라보는 치로는 결코 손이 닿지 않는 아득히 높은 곳에 위치한 아이돌이며, 동시에 같은 학년 같은 반 옆자리에 앉은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치로의 팬인 자신과 치히로의 친구인 자신이 충돌했을 때, 사키코는 무의식적으로 팬으로서의 자신을 선택한다. 그가 사진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 까닭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존재를 사진으로 담아내어 타인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이 사키코의 바람이다. 사키코는 치히로에게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한다.
마아야가 치히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연 애정이다. 겉으로는 동경이나 우정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마아야가 원하는 것은 아이돌 '치로'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겨 주는 것이다. 자신이 치로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아야는 괴로워하고 질투한다. 치히로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치히로에게 있어 때로는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곤 하는 사키코에게 질투한다.
한편 치히로가 사키코와 마아야에게 느끼는 감정은 명확하게 우정이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평범하고 일반적인 교우 관계'를 맺는 것이 치히로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사키코와 마아야는 그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치히로에게 있어 두 친구는 마음의 안식처나 다름없다.
이렇듯 세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그 형태가 다르다. 그렇기에 충돌이 생겨나고 갈등이 빚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일까. 이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여러 갈래의 좋아하는 감정이 종종 서로 모순되거나 대립되기 때문에, 작중 인물들은 특정한 형태의 좋아함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곤 한다. 그리고 타협점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마아야가 치히로를 좋아하는 감정은 너무나 헌신적이기에 역설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성의 한계를 역력히 드러낸다. 치히로에 대한 마아야의 동경은 자기완결적이어서 굳이 보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치히로에 대한 마아야의 우정은 동등한 우정으로 보답받는다. 하지만 치히로에 대한 애정은 결코 보답받을 수 없다. 그리고 보답받을 가능성이 없는 애정만큼 괴로운 것도 드물다.
인상적인 건 작중 마아야의 선택이다. 그는 결국 단념하고 자신의 마음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애정을 포기하는 대신 우정을 유지한다. 백합 만화에서는 보기 드문 전개지만 그 또한 마아야가 스스로 선택한 '좋아함'의 방식이라는 설득력아 작품 내에서 부여된다. 그렇기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다'는 마아야의 독백은, 좋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자신의 방식이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한 발짝 성장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쩌면 토자와 마아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