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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pr 29. 2024

열대어는 눈을 동경한다 - 고독과 함께 살아가는 백합

백합만화 읽기 09

[열대어는 눈을 동경한다 / 하기노 마코토 / 프레지에 / 전 9권(완결) / 권당3500원(전자책)]


"아아. 몸이 얼어붙을 만큼 고독하구나!"




도쿄 출신인 아마노 코나츠는 부모님의 사정으로 인해 멀리 떨어진 작은 해안도시의 고모 댁에 얹혀 살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선배 호나미 코유키는 수족관부의 유일무이한 부원이다. 믿음직한 우등생인 코유키의 내면에 깃든 고독함을 눈치챈 코나츠는 그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하여 코나츠는 수족관부의 두 번째 부원이 되어서 코유키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한편 코유키는 코나츠와 함께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관계의 폭을 넓혀갈 때마다 역설적으로 코나츠와의 관계는 줄어들고, 이 때문에  코유키는 오히려 더욱 고독함을 느낀다. 코나츠 역시 마찬가지다. 코유키가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갈 때마다 코나츠는 자신만 홀로 남은 것 같은 끝없는 고독함을 느낀다. 


이렇듯 고독하기에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가 필요하기에 다시금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 




모두가 의지하는 모범생이지만 사실 내면의 약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코유키의 설정은, 솔직히 말해 식상하기 짝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밝고 명랑하지만 내심으로는 외로움을 잘 타는 코나츠의 설정 또한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설정의 식상함을 극복할 만한 서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딱히 없다. 두 사람은 그저 자신의 고독 속으로 침잠하며 홀로 고뇌를 거듭할 뿐이다. 가끔씩 친구가 등을 밀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님이 따뜻한 말을 건네 주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너무나 작위적이다. 아마 이런 식의 만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1권을 다 읽는 것조차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당초 서사 따위를 죄다 무시한다면 어떨까?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지난 세기말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떠오른다. 온갖 종교적 설정을 덕지덕지 붙인 데다 거대 로봇의 화끈한 액션신이 등장하지만, 그런 겉치레를 모두 걷어치운 후에 남는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에 서툰 중학생이 성장하는 이야기다.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갑자기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소도시에서 살게 된 코나츠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자. 예민하고 감수성이 넘치는 십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레 친구들과 헤어졌고, 이사를 온 곳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고모 한 사람이 전부이며, 해외로 전근을 나간 아버지는 일 년에 한두 번 가량 얼굴을 비추는 것이 전부다.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렇기에 처음 말을 걸어준 코유키의 존재는 코나츠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한편 코유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학년에 학급이라고는 둘밖에 없고 후배가 선배의 집이 어디인지 아는 게 너무나 당연한 작은 사회에서 십수 년간이나 살아온 코유키에게 있어, 낯선 교복을 입은 채 대도시에서 전학 온 코나츠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 무척이나 내성적이고 내향적이며, 외로움을 싫어하면서도 타인에게 다가서기를 망설이고, 관계를 원하면서도 쉽게 상처입는 모순적인 존재다. 이카리 신지의 여고생 버전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딱 맞는 설명이다. 혹은 요즘의 유행을 살려 INFP라는 네 글자로 요약해도 좋겠다. 작품 내에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꽤 피곤한 면이 있다'고 표현한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도중에도 쓸쓸함을 느끼는 건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다. 지금 뭐하느냐는 문자 하나를 보내지 못해 삼십 분을 고민하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건 자신의 심력을 죄다 소모해야만 간신히 해낼 수 있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면서도 먼저 사과부터 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반대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정서불안에 걸린 두 인물이 번갈아 가면서 자폭을 반복하는 웃지 못할 희비극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가만히 놓아두어도 혼자 펑펑 터져나가니까. 반면 등장인물들과 엇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울릴 정도로 와 닿는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이 성장하면서 마침내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때 그들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 작품은 이부세 마스지의 <도롱뇽>이라는 단편소설을 모티브로 삼아 작품 전체가 진행된다. 배경지식으로 해당 작품에 대해 알아두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작중에서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따로 찾아볼 수밖에 없다. 백합만화 하나 보기 위해 어째서 일본의 교과서에나 나오는 근현대 단편소설까지 찾아봐야 하느냐고 투덜거릴 수도 있지만 아무려면 어떠한가. 세상사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일단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도롱뇽>은 암굴 속에서 살아가는 사이에 머리가 성장해버려 더 이상 입구를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그래서 평생토록 암굴 속에서 홀로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도롱뇽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화도 내 보고 암굴 밖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다른 물고기들을 조소하기도 하지만 도롱뇽이 혼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개구리 한 마리가 암굴 안으로 들어온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개구리가 부러웠던 도롱뇽은 자신의 머리로 암굴 입구를 막은 채 개구리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롱뇽과 개구리는 내내 말싸움을 거듭한다. 그러다 이태가 지난 후 개구리가 바깥 세상을 그리워하며 탄식하고, 그 말을 들은 도롱뇽은 마음이 바뀌어서 마침내 개구리가 나갈 수 있도록 입구를 비켜 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늦었던 탓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개구리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코나츠는 코유키에게서 도롱뇽의 모습을 본다. 그가 바라보는 도롱뇽은 암굴 속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간절히 개구리를 원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코나츠는 자신이 개구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고독을 위로해 주는 도롱뇽과 개구리의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함께 있다 해서 고독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두 사람에게 있어 고독이란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불변의 존재다. 그렇기에 결코 극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도롱뇽은 개구리를 원하고 개구리는 도롱뇽을 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둘이 함께 있다면 서로에게 위안과 온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독을 없앨 수는 없더라도 약간이나마 가볍게 해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결코 고독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항존하는 고독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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