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Apr 15. 2024

설령 닿지 않을 실이라 해도 - 어긋나고 뒤틀린 백합

백합만화 읽기 07


[설령 닿지 않을 실이라 해도 / tMnR / 레진코믹스 / 전 7권(완결) / 권당4500~5000원(전자책)]


"옳은가 그른가로 말하자면, 이 사랑은 처음부터 잘못투성이였다."




오빠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오빠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동생의 이야기. 꽤나 자극적인 설정치고는 비교적 느슨하게 시작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는 극한을 향해 질주한다.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가족이라는 껍데기가 사실은 매우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간신히 지탱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괴로움의 구렁텅이에 처박히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애정의 방향은 극단적으로 어긋나 있다. 우타는 카오루를 사랑하고, 카오루는 레이이치를 사랑하고, 레이이치는 리사코를 사랑하고, 리사코는 카오루를 사랑한다. 다들 앞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볼 뿐,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애초에 방향이 어긋나 있다 보니 행동 또한 뒤틀린다. 레이이치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의무감으로 부부가 된다. 카오루는 외도가 의심되는 남편의 행동을 목격하고도 대답이 두려워 추궁하지 못한다. 리사코는 자신이 좋아하게 된 사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의 짝사랑 상대를 빼앗는다. 우타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대를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이른바 건강한 관계 따위는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어긋나 있고, 모든 뒤틀려 있다. 등장인물들은 다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혐오한다. 과도한 불안감과 지나친 긴장감 사이에서 휩쓸리는 건 일상사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서사보다는 심리 표출에 중점을 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작품은 냉정하게 판단해서 수작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못 된다. 자기혐오를 사명으로 삼고 자학을 의무로 여기는 자들의 독백을 일곱 권에 걸쳐 감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극단적인 전개이기에 느낄 수 있는 매력도 있다. 왜냐면 세상에 깔끔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랑만 존재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절한 짝사랑이 더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 보상을 받은 이들은 모두, 어떠한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변화시킨 이들이었다. 반면 끝내 자신을 바꾸지 못한 자들은 결국 보상을 받지 못했다. 물론 모든 변화가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 잃을 것이 없겠지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건 무척이나 서글픈 일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렇게 말해 보자. 설령 시작은 어긋나고 뒤틀렸더라도, 변하고자 한다면, 비록 확신할 수는 없더라도, 때로는 변할 수 있다고. 그런 과정을 거쳐 실은 이어진다. 




tMnr(토모노리) 작가의 상업 데뷔작인데 그 탓인지 가끔씩 인체비례가 망가지는 일이 생긴다. 멀쩡했던 사람이 12등신으로 변할 때마다 요괴가 둔갑한 것만 같아 신경 쓰인다. 뜬금없이 작가 본인의 그림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 등장한다든지, 여백의 미를 빙자한 무신경한 작화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상당히 거슬리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무려 일곱 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연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을 방증한다. 


그래서 엔딩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굳이 비극적인 결말을 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다섯 페이지는 차라리 없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너절하기에 오히려 좋았던 이야기를 일곱 권에 걸쳐 진행시켜 놓고서는 그런 지나치게 깔끔한 마무리라니.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