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만화 읽기 08
"오만일지도 몰라. 단지 나의 고집일지도. 그래도 그 사람을 바꾸고 싶어."
아이는 성장을 통해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지 겉모습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의 자아를 구축하고, 그 자아의 토대 위에서 타인과 접촉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기존의 자아를 무너뜨리고, 그 폐허 속에서 다시 한 번 자아를 구축한다. 그렇게 새로이 구축된 자아는 필연적으로 이전의 자아와 같을 수 없는 변화된 존재다. 성장이란 그러한 과정의 무수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토우코는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유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채로 그대로 있어주기를 원한다. 유우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유우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토우코는 유우를 좋아한다. 자신은 유우를 좋아하면서도 유우에게는 자신을 좋아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다.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응석이고 투정이다. 왜냐면 이미 토우코는 변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마음이 설렌 적이 없었다고 말하던 그가 유우 앞에서 설레어 한 바로 그 순간부터 토우코는 변하기 시작했다. 끝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상대가 변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변하지 말아달라고 요구는 단지 어리광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서로가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순간, 그때부터 두 아이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된 소재는 연극이다. 토우코는 세상을 떠난 언니의 꿈이었던 연극 공연을 자신이 이루어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 생겨나고 다시 해소된다. 그리고 마침내 진행되는 연극은 극중극 방식의 사이코드라마에 가깝다. 아니, 사이코드라마라는 표현 그대로다. 토우코는 배우의 입장에서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연기함으로써 자신의 페르소나를 들여다보고, 그 과정을 통해 실제 삶에서의 결론을 이끌어냄으로써 한 단계 성장한다.
서정적인 분위기와 인상적인 연출이라는 명확한 장점, 그리고 군더더기가 많은 전개와 도구적으로 소모되는 주변 인물이라는 명확한 단점이 상충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만화의 본모습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본질은 명료하다. 이 만화는 미처 성장하지 못한 채 언제까지고 응석만 부리던 아이가 마침내 조금쯤 더 어른이 되는 이야기다. 아주 약간 더 먼저 성장한 꼬마가 손을 내밀어 뒤쳐진 꼬마를 이끌어주는 이야기다.
그렇게 서로를 이끄는 가운데 서로가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나아가 변화한 자신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리하여 이윽고, 나는 내가 되고, 너는 네가 된다.
사족인 걸 알면서도 현지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게 아니라, 한글로 표기된 일본어를 보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마지막 권에서는 일부 검열된 부분이 있다. 두 사람의 성애를 묘사한 장면을 아주 가차없이 허옇게 칠해 버렸다. 몹시 유감스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