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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May 20. 2024

걸프렌즈 - 예스럽기에 끌리는 백합

백합만화 읽기 12

[걸프렌즈 / 모리나가 미루쿠 / 조은세상 / 전 5권(완결) / 권당3500원(전자책)]


"마음을 숨길 새도 없이, 내 다리는 이미 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




오늘은 먼저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모리나가 미루쿠는 연식이 꽤 있는 작가다. 단지 나이만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국내 출판된 작품의 연재 연도가 2003년에서 2015년 사이에 걸쳐 있다 보니 시대적 배경 또한 예전이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올드하다. 그림체, 컷 배분, 연출, 심지어 빽빽한 대사 배치조차도 상당히 예스럽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단점이 아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감도는 이 특유의 옛날 감성들이 서로 찰떡처럼 잘 어우러지니까. 모리나가 미루쿠는 그런 식으로 우직하지만 꾸준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쌓아올린 작가다. 그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야 여럿 있을 것이고 그보다 연출이 훌륭한 작가도 여럿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리나가 미루쿠처럼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잘 어울리게끔 하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좋은 의미에서 프로답다. 


본 작품은 그중에서도 초기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아이폰이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인 2006년에 연재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피처폰을 쓴다든지, 미성년자인 여고생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등 예전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자에 따라서는 그런 감성에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택시 대신 마차를 타는 셜록 홈즈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읽히는 것처럼, 고전이란 시대를 뛰어넘어서도 살아남는 법이다. 그리고 본 작품 또한 이 바닥에서 충분히 고전의 자격이 있다.




쿠마쿠라 마리코, 통칭 '마리'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없다. 하지만 오오하시 아키코, 통칭 '앗코'는 그런 그에게 거침없이 다가온다. 함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같이 옷을 쇼핑하면서, 두 사람은 순식간에 친해진다. 그러던 와중에 마리는 앗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점차 변해감을 느낀다. 우정에서, 애정으로.


마리에게 있어 앗코는 처음 생긴 친구이자 절친이다. 하지만 그런 단어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앗코가 먼저 다가와 주었기에 비로소 마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앗코가 이끌어 주었기에 비로소 마리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더 넓은 세상에 한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된다. 마치 박찬욱의 <아가씨>에서 숙희가 히데코를 이끌어주었던 것처럼, 마리는 앗코에게 구원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마리가 앗코에게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마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애정이 확실하지만, 자신에 대한 앗코의 감정이 우정일지 혹은 애정일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물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물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대답이 자신의 기대와 다를 경우에 생겨날 파탄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앗코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두 사람에게 있어 서로의 감정은 무지(無知)가 아닌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에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이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로맨스물이다. 작가 모리나가 미루쿠는 우정이 점차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온갖 감정의 변화들을 능숙하게 엮어낸다. 특히 자신이 상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모순된 감정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디선가 지나치게 자주 본 듯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다루는 솜씨가 나쁘지 않다. 마치 재료의 양과 불을 세기를 적절히 조절할 줄 아는 어머니의 손맛처럼, 이 작품은 쉽게 질리지 않는 찌개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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