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 브리지, 평생 가장 비싼 화장실

사진 한 장 짜리 시드니 여행 08

by 글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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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랜드마크가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대부분 같을 것이다. 첫째로는 오페라하우스일 테고, 둘째로는 하버 브리지가 꼽힌다. 그 중에서도 내 관심은 하버 브리지에 쏠려 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는 스토리텔링적 요소도 그렇거니와, 그 웅장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백여 년 전의 과거에 이런 거대한 다리를 건설할 수 있었는지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시드니에 간 첫날에 이미 하버 브리지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비 오는 날에 하버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자고 바득바득 우겼다. 물론 아내와 아이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정말 가기 싫지만 별수 없이 함께 가 준다는 표정이었다.


페리에서 내려 공원을 통과하여 노숙인이 누워 있는 어두컴컴한 다리 밑을 지나 하버 브리지로 향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 날이라 평지에서도 걷기가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서니 바람이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도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구태여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을 골라서 다리를 도보로 건너보겠다고 마음먹은 바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물론 비합리적인 바보가 되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바람이 세차서 우산이 두 차례나 뒤집혔다. 빗방울이 끊임없이 몸을 두드렸다.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서인지, 혹은 자살을 방지하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형광빛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들이 여럿 배치되어 있었다. 덩치 큰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조금씩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워낙 다리 길이가 긴 탓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좋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오페라하우스의 모습은 색다른 멋이 있었다.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묵묵히 도로를 지탱해 온 역사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다리를 2/3쯤 건넜을 때였다. 갑자기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급하다고 했다.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꾹꾹 눌러놓고 일단 구글맵을 켜서 화장실을 찾았다. 당연하지만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도 10분 이상 걸어가야 했다. 당황하던 차에 문득 눈앞에 큰 건조물이 보였다. 교각 남쪽에 설치된 유료 전망대였다. 간판 옆에 조그맣게 화장실 표시가 있었다. 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갔는데 아차. 화장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도 한참 더 올라간 곳에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어른 둘과 아이 하나를 합쳐 대략 칠만 원쯤 되는 돈을 지불했다. 그렇게 해서 딸아이는 시드니 하버 브리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칠만 원짜리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 평생 가장 비싼 화장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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