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시드니 여행 06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해외여행이라는 게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던 지난 세기 후반부에 호주는 캥거루의 나라였다. 어린이용 백과사전에 실린 사진을 통해 배에 주머니가 달려 있다는 캥거루라는 짐승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 머리가 좀 더 굵어졌을 무렵, 호주는 코알라의 나라였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회색 털뭉치에다 둥근 코와 조그만 눈을 붙여놓은 코알라 인형은 상당히 귀여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호주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동물은 쿼카다. 웃는 얼굴로 유명한 이 동물은 그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셋 다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이들을 보기 위해 페더데일 야생동물 공원으로 향했다.
명심할 점은 이들이 죄다 야행성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코알라는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퍼질러 자기 일쑤다. 말인즉슨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은 자는 중이거나, 혹은 잠이 덜 깨어서 멍한 모습이라는 뜻. 실제로 우리가 만난 캥거루들은 죄다 바닥에 비스듬히 드러누운 채 게슴츠레한 표정이었고, 쿼카는 너덧 마리씩 한데 뭉쳐서 머리를 서로의 몸에 묻은 채 자고 있었다. 코알라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나뭇가지 사이에 끼여서 졸고 있었다.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생동하는 동물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나도 졸려올 지경이었다.
딱히 잠을 쫓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코알라 사진을 찍으러 갔다. 거액을 지불하는 대가로 코알라의 등짝이나 궁둥이를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유료 코스다.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거의 사오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는데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같이 한국인들이 분명했다. 이 성격 급한 나라의 국민들이 줄을 선 바로 옆에는 이삼 미터 높이의 나무들이 있고 그 위에는 코알라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들이 가끔 몸을 꿈지럭거리거나 기지개를 펼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저 자다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코알라를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은 후에는 다시 한번 쿼카를 만나러 갔다. 조금 전에 갔을 때는 죄다 자고 있었는지라 얼굴 한 번 못 본 것이 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는지, 쿼카 한 마리가 깨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몸을 세우고는 앞다리를 들어 올리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딸아이가 탄성을 내지를 정도였다.
잠시 후에야 나는 쿼카가 두 발 달린 대형 영장류를, 다시 말해서 나를 위협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급하게 휴대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는데 다행히도 잘 찍혔다. 딸아이와 함께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나는 사진 속 쿼카처럼 손을 들어 올리면서 찍찍 소리를 냈다. 사춘기 소녀의 표정이 무척이나 짜증스럽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