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시드니 여행 04
흔히 여름휴가를 피서라고 한다. 피할 피(避)에 더울 서(暑). 그러니 피서는 당연히 덥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시드니의 7월 기온은 10도에서 18도 사이를 오르내린다. 열이 많은 내 기준에서는 선선한 날씨고,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다소 춥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시드니를 택했다. 다만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비였다.
시드니에 있는 일정의 절반 이상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가랑비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쏟아지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소나기였다.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빗물이 겨울 운동화를 뚫고 들어와 양말이 질척해질 지경이었다. 밖을 돌아다니다 숙소로 복귀하면 일단 티슈를 뭉쳐서 신발 안에 쑤셔 넣는 게 일상사였다.
인상 깊은 건 시드니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비가 오든 말든 간에 우산을 잘 쓰지 않았다.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길거리 사람들의 절반가량만이 우산을 썼고, 외모가 동양인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 비율은 더 내려갔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는 말은 종종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역시 신기한 느낌이었다.
특히나 비가 많이 내렸던 날이었다. 기껏해야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두 아이를 포함한 네 식구가 비옷 한 장씩만 걸친 채 비가 퍼붓는 길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넷 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은 모습이었다. 저러다가 감기 안 걸리는지 걱정되었던 건 내 오지랖이 넓은 탓이겠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해안도시라 그런지 바람이 거센 탓에 툭하면 우산이 뒤집어지곤 했다. 또 작은 우산으로는 고작해야 머리만 가릴 수 있을 뿐, 비스듬히 날아드는 빗방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우산을 어설프게 쓸 바에야 아예 안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영상 10도 날씨에도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은 채 달리는 시드니 사람이 아니다. 나는 똑같은 날씨에 옷을 세 겹이나 껴입은 채 추위에 떠는 평범한 외국 관광객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산을 썼다. 그리고 결국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내 우산은 대가 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