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시드니 여행 02
시드니에는 새가 많다. 조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피해야 할 도시가 아닐까. 도심은 서울마냥 비둘기로 가득하고, 바닷가로 가면 갈매기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풀밭이 있는 공원에는 머리가 검고 부리가 길쭉한 아이비스가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굵은 나무 아래로 가면 큼지막한 앵무새인 코카투가 괴성을 질러대곤 했다. 해양박물관에 전시된 군함 근처에는 펠리컨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들 걸어 다닌다는 점이다. 애초에 날지 못하는 놈들도 아니다. 두 날개가 멀쩡하게 달렸고 본인들이 필요하면 날기도 한다. 하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날아가는 것보다 두 다리로 걷는 게 훨씬 더 편한 모양이다. 그래서 비둘기는 아스팔트 깔린 도로 위를 걷고, 갈매기는 백사장 위를 걷고, 아이비스와 코카투는 잔디 위를 걷고, 펠리컨은 해안가 도로를 따라 걷는다. 꽤 웃기는 광경이다. 심지어 빌딩 1층 로비에서 태연자약하게 걸어 다니는 비둘기도 있었다.
물론 정말로 날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새도 호주에 존재한다. 에뮤나 화식조처럼 사람만 한 새들이다. 하지만 도심에서 살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다. 그런 녀석들을 보려면 야생으로 나가거나 혹은 동물원으로 가야 한다. 반면 시드니 한복판의 새들은 하나같이 날 수 있는데도 날지 않는 놈들이다.
조류가 현대까지 살아남은 공룡이라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호주에서는 그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용반목 수각류에 속한 이 최후의 공룡들은 하나같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도심을 배회한다. 사람은 물론이고 차조차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근엄하게 활보한다. 간혹 주변을 둘러보는 자태는 자못 웅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필요할 때면 간혹 날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깨달았다.
바닷가 인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에다 맛있어 보이는 크레페를 사서 나올 때였다. 그 순간 사방에서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흠칫하면서 시선을 들던 찰나에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를 향해 날아드는 갈매기 수십여 마리였다. 놈들은 내 크레페를 덮쳤고, 나는 본능적으로 반대쪽 손으로 크레페 위를 덮었다. 부리가 내 손을 쪼고 발톱이 손등을 할퀴었지만 끝내 소중한 크레페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마침내 놈들이 포기하고 내 주변을 떠났을 때, 주변 관광객들이 신나 하면서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공룡의 존재를 저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