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미친 시드니 사람들

사진 한 장 짜리 시드니 여행 01

by 글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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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여행 중 이틀은 맑았고 나머지 기간 내내 비가 내렸다. 촉촉한 가랑비 수준이 아니라 흡사 열대지방 스콜처럼 쏟아지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뛰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긴 팔 맨투맨 셔츠에다 조끼를 걸치고 그 위에 패딩 점퍼까지 겹쳐 입었으면서도 춥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겨울 날씨였다. 하지만 시드니 사람들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 한 장만 걸친 채로 달렸다.


바랑가루 보호지역을 구경하러 간 때는 마침 평일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녀들이 해안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내가 본 사람만 해도 세 자릿수는 거뜬히 넘었다. 거센 바닷바람을 탄 빗방울이 사선으로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도 그들은 뛰고 또 뛰었다. 열두 시 사십오 분 무렵이 되자 그들은 헐떡이며 지하철역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지하철이나 혹은 버스를 타러 갔다. 하지만 한 시가 되어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프마라톤 완주 기념 티셔츠를 입은 채 달리는 머리 허연 노인들이었다.


직장 근무가 끝났을 저녁 무렵에는 달리는 사람들의 수가 확 늘어나곤 했다. 날씨와는 전혀 무관했다. 비가 오든 말든, 날이 춥든 말든, 그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복장은 대개 반바지에 티셔츠였다. 가끔은 근육을 자랑할 요량인지 웃통을 벗은 남자도 있었다. 몸매가 확 드러나는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은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속도는 내 전력 질주와 맞먹었다. 이른바 패션 러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달리기는 삶이자 운명처럼 보였다. 거룩하기까지 한 달리기에 대한 집착에 나는 질릴 지경이었다.


시드니에서 돌아오는 날은 비행기가 일러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샤워를 마친 후 커튼을 열어보니 비가 미친 듯이 내리고 있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스산한 겨울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사람들 한 무리가 달리고 있었다. 대략 일고여덟 명쯤 되었을까.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반팔 티를 입고,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커튼을 닫으며 나는 생각했다. 진짜 미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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