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일본 여행 02
나라 공원에 있는 사슴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첫 번째는 귀엽고 순수한 사슴들이 평화롭게 길거리를 거니는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전설이고, 두 번째는 사람을 볼 때마다 덤벼들어 머리로 들이받으며 간식을 갈취하는 무도한 생명체들에 대한 전설이다. 정답은 후자에 가깝다. 현실이란 원래 씁쓸한 것이다.
나라 공원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은은하게 내음이 느껴진다. 잠시 걸어가다 보면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똥이다. 초식동물의 똥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들의 멱살을 잡아다가 데려다 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야말로 사방에 사슴 똥이 널려 있다. 바닥을 잘 보고 다니지 않으면 물컹, 하고 밟아 버리기 십상이다.
그런 지뢰밭을 지나다 보면 사슴이 떼로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띈다. 사슴용 센베이(전병)를 파는 곳이다. 사슴이 많다 보니 똥도 더 많다. 무수한 관광객들이 짓밟고 다니는 바람에 바닥은 똥과 흙이 뒤섞여서 엉망진창이다. 그런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들이 앞다투어 자기 돈을 내고 사슴의 센베이를 사고, 사슴들은 센베이를 든 사람들을 뿔로 들이받으며 어서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심지어 앞다리로 걷어차거나 입으로 깨무는 사슴마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센베이를 갈취당하고 잠시 후 또다시 센베이를 사서 사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반복되는 비명. 가히 묵시록적인 진풍경이다.
이 사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한다. 어디를 가도 사슴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에는 사슴이 있다. 차가 갈 수 있는 곳에도 사슴이 있다. 사람이나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도 사슴이 있다. 심지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도다이지 경내에서도 무리를 지어 거침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카페나 식당에 앉아 있어도 문밖으로 사슴들이 총총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도저히 사슴으로부터, 그리고 그들의 암갈색 배설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짐승을 무서워하는 아내는 살짝 신경쇠약에 걸려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결국 우리는 패배를 선언하고 예정보다 빠르게 후퇴했다. 사슴들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서 우리를 배웅했다. 한참을 걸어가자 마침내 똥 냄새가 사라졌다. 더 이상은 시선을 아래로 고정한 채 바닥을 살피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내게는 사슴이 걷어차는 바람에 더러워진 바지와 신발 밑창에 들러붙은 불쾌한 감촉이 남았다. 그날부터 나는 사슴이라는 동물을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