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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디버그 Jun 22. 2016

배고프지 않아도 배고픈 세상

쿡방이 우리에게 의도하는 것

 바야흐로 쿡방의 전성시대이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으로 불어 닥친 먹방이 한 단계 진화해서 나타났다. 이제 먹기만 하던 것은 만드는 것으로 바뀌면서 수많은 사람의 위액을 더욱 분비시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얼마나 쿡방의 전성시대일까? JTBC의 월요일 ‘냉장고를 부탁해’, 수요일 ‘쿡가대표’. tvN의 화요일 ‘집밥 백선생2’, 수요일 ‘수요미식회’. KBS 목요일 ‘한국인의 밥상’. Comedy TV의 금요일 ‘맛있는 녀석들’. SBS의 토요일 ‘백종원의 3대 천왕’, 일요일 ‘잘 먹고 잘사는 법, 식사는 잘하셨어요’. 한국인의 월요일~일요일은 전부 쿡방으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다가 방송 종료한 프로그램과 더불어 지금도 인터넷 방송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먹방까지 포함하면 한국인의 24시간은 음식 방송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쿡방의 대두는 대한민국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인은 먹지 못해 안달 났으며, 맛있는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2015년 OECD 국가 중 GDP 14위 대한민국에서 쿡방이 활개치고 있는 현 상황을 서해성 작가는 한겨레 크리틱을 통해 ‘밥의 습격’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한국인은 정말 배고픈 것일까? 아니면 무엇이 한국인을 이토록 밥에 굶주리게 하는 걸까?     


 우리가 느끼는 배고픔에는 2가지의 종류가 있다. 진짜 배고픔과 가짜 배고픔이다. 진짜 배고픔은 진짜 배가 고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짜 배고픔이다. 가짜 배고픔은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다. 스트레스는 체내 세로토닌 분비를 줄어들게 한다. 세로토닌이 떨어지면 우리 몸은 피드백 작용으로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하는 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배고픔이라는 감정이다. 즉,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배가 고픔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2010년 인터넷에서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마치 지옥과도 같다는 뜻을 가진 ‘헬조선’,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만큼 청년들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이 느끼는 삶의 고단함은 극에 달했다는 뜻이다. 특히 청년 실업이 대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배고픔을 유발하고, 먹방의 대두는 이를 시청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는 그의 저서에서 ‘국가적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으로 대중문화를 설명했다. 국가가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유지하려고 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중이 현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회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해 눈을 돌리게 해야 한다. 그리고 알튀세르는 그 수단으로 대중문화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무의식적으로 침투시킨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가짜 배고픔을 진짜 배고픔으로 치환해야 한다. 국민은 현재의 잘못된 사회구조에서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단 회피해야만 한다. 이에 대한 효과적 수단으로 이미 지배계급에 종속된 미디어들은 현실 비판적 의식에서 발생한 배고픔을 진짜 배고픔으로 착각하게끔 시도한다. 먹방은 시청자들의 눈과 입 그리고 위를 가득 채워준다. 먹방을 보면서 현실의 상황과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망각한다. 마치 진통제와 같은 역할이다. 먹방으로 하여금 ‘힘든 현실을 맛있는 음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무의식 중에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먹방은 쿡방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더욱 우리 무의식 중에 들어와 이데올로기를 견고히 하고 있다. 특히 ‘냉장고를 부탁해’의 경우 그 이데올로기가 명확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연예인의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음식으로 두 명의 요리사가 요리를 완성한 후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과연 연예인의 냉장고 안에는 과연 어떤 것이 들어있을까’란 생각에 호기심을 가지고 본다. 그리고 그 재료가 아름답고 맛있는 요리로 되어가는 과정을 즐기며, 그 음식을 먹는 패널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의 입맛을 달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예인의 냉장고란 것이다. 연예인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성공한 연예인의 냉장고 음식은 일반 시청자들에게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나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선, 연예인의 음식 재료가 나에게도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선사한다. 즉, 쿡방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음식 재료의 유무 혹은 요리를 먹는 것으로 확인하려 한다. 이제 사회 구조에서 나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고,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은 현 사회의 구조를 지적하고 바꾸려는 의지와 행동을 통한 근본적 변화가 아닌 음식의 소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대중들은 소비의 소외를 경험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쿡방은 언제나 우리의 음식 소비를 부추기기에, 자신이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 즉, 지배계급에 논리에 순응해야 한다. 그로 인해 신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불합리한 노동 조건, 사회 구조 안에 또다시 편입될 수밖에 없다. 이는 끊임없는 소외를 불러일으키며 지배 계급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먹방으로 시작된 가짜 배고픔은 쿡방에 와서야 비로소, 불합리한 현 사회 구조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완벽한 이데올로기 생산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쿡방의 전성시대는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연관이 되어있다. 물론 식욕이 인간의 고유한 욕망 중 하나기에 쿡방은 분명 고단한 삶의 휴식처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그것을 소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하는 대중문화 속에는 지배계급의 무의식적 이데올로기가 함의되어있다. 따라서 우리가 쿡방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잘못된 인식을 역설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떠한가. 그렇게 됐을 때 지금의 사회구조가 일시적 해소가 아닌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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