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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Oct 22. 2019

돈레메콩강, 프놈펜  

부활하는  캄보디아 왕국


  프놈펜 왕궁 주변은 그냥 걸어도 좋다. 돈레메콩강이 눈앞에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온몸에 느껴진다. 주변에 걸어서 가볼 곳도 많다. 프놈펜 국립박물관은 왕궁 바로 옆에 있다. 어느 나라를 가던 박물관 기행은 기대가 된다. 한 나라의 역사를 한눈에 보기에는 박물관이 제격이다. 이곳에는 14,000점 이상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유물의 대부분은 앙코르 시대 및 그전 시대인 첸라 시대의 것이다. 박물관 입구에 서면 건물 자체가 유물이다. 크메르 양식의 적색 박물관 건물은 1920년에 지어졌다.   

프놈펜 박물관

  박물관에 들어서니 수많은 유물이 앙코르 제국 시대로 나를 돌려놓는다. 앙코르톰에서 봤던 바이욘의 얼굴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미소 짓고 있다. 썸보쁘레이쿡 사원 중앙 성전 네 모서리 탑 중 한 곳에 있던 모조품 여신상, 진품은 여기에 있다. 두 팔이 잘려 없지만 어깨와 허리를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실루엣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하다. 7c 경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앙코르톰 코끼리테라스 끝에 있던 루퍼킹 문둥왕의 석상은 현장에 있던 복제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문둥병 걸렸다는 야소바르만 1세(889~910)의 모습이 더 애처롭다.

바이욘의 얼굴과 비쉬누 여신상
문둥왕 야소바르만 1세의 석상

  수많은 유물을 연대별로 정리하며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점점 헷갈리니 처음에 집중하며 천천히 걷던 걸음도 빨라지고 대충 본다. 집중력에 한계가 온 것이다. 다행히 출구가 보인다. 박물관은 크지 않은 편이다. 다 돌아보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처음보다 끝이 성의 없었지만 박물관 기행은 그래도 맘이 뿌듯하다. 중학교  선생님이 박물관에 자주 가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박물관 앞 거리는 그림과 골동품, 공예품, 실크 스카프 등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다. 길거리 갤러리다. 나는 기웃기웃 훔쳐보며 길을 걸었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뚫어지게 한 작품을 쳐다봤더니 살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흥정을 건다. 가격이 비싸진 않다. 하지만 필요치 않으니 짐짓 뒤로 발을 빼며 슬며시 가게를 나왔다.  

프놈펜 스트리트의 모습


씨클로 아저씨

  street 19길로 접어들면 왓프놈 가는 길이다. 백발의 씨클로 아저씨가 지나가며 말을 건다. 나는 걷는 게 힘들지 않지만 씨클로를 탔다. 씨클로는 사람이 페달을 밟기에 아주 천천히 간다. 힘겹게 페달을 밟는 아저씨를 생각하면 미안한 맘이 들기도 하지만 앉아서 주변을 감상하기에 딱이다. 어린 시절 형이 끌던 리어카를 타고 동네를 돌던 기억이 떠오른다. 프놈펜에서도 씨클로는 점점 사라지고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씨클로를 타고 연신 주변을 사진 찍자 아저씨는 페달을 멈추고 내려서 찍어도 된다고 친절을 베푼다.


캄보디아 중앙우체국

  매일 보는 아저씨 눈에는 신기할 게 없지만 나의 눈에 비친 고풍스러운 건물은 프놈펜을 유럽의 어느 도시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 길은 프랑스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여유와 낭만이 천천히 페달을 밟는 씨클로와 닮았다. 프놈펜 시내는 툭툭이 대중교통 수단이다. 앱을 깔면 툭툭을 어디서나 쉽게 부를 수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하지만 씨클로는 비싼 편이다. 사람 힘으로 가는 거니 당연하다. 사실 왕궁에서 왓푸놈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어서 걷거나 씨클로를 타거나 시간은 비슷하다. 왓프놈에 도착했다. 두발로 힘겹게 페달을 저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아저씨에게 나는 기꺼이 팁을 더해서 줬다.


  왓프놈은 산에 있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높이가 27m밖에 안되니 언덕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1373년에 지어져 프놈펜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왓프놈 주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번잡한 프놈펜 시내에서 숲의 느낌을 주는 유일한 곳이다. 프놈펜도 차가 많다. 차량의 소음, 매연은 프놈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피곤하게 한다. 왓프놈을 끼고는 원형의 도로다. 원형의 도로는 빨리 달릴 수가 없다. 직선만 알고 앞으로만 달리며 살았던 나에게 원형의 도로는 이젠 천천히 가라고 말하고 있다. 산이 낮으면 어떻고 사원이 작으면 어떠랴! 숲이 있고 조용하니 산은 산이다    

왓프놈

  한낮의 더위에 프놈펜 시내를 다니는 것은 캄보디아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낮에 돈레메콩강 강변 리버프론트에 늘어선 카페에 앉아 쉬다 보면 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다. 강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배가 나른함을 더한다. 걷다가 힘들면 시원한 카페를 찾아 커피나 음료를 한잔 하며 편하게 쉬는 것이 참 여행이다. 왕궁 근처에서는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기보다는 강변에 길게 늘어선 노천카페에서 스파게티, 피자와 맥주, 음료를 함께 즐기며 긴 점심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돈레메콩강을 눈에 담는다면 한낮의 더위도 금방 잊는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좀 과하게 시키는 호사도 괜찮다.

  오후 네다섯 시쯤 되면 왕궁 앞은 다시 사람들로 붐빈다. 더위를 피해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강변으로 쏟아져 나온다. 외국인이 무척 많이 눈에 띄니 이곳이 어딘가 싶다. 나이트마켓은 그 시간에 맞춰 문을 연다. 오후 5시에 열고 11시에 문을 닫는다. 이곳은 낮에는 공터 주차장이다. 나이트마켓은 뭘 사는 것보다 구경이 더 재밌다. 누가 주인인지 모른다. 서로 웃으며 흥정하는 모습도 정겹다. 천막 뒤쪽에는 먹거리 장터가 서는데 다양한 캄보디아 음식을 판다. 길바닥에 좌판을 깔고 먹는데 외국인이 접하기 힘든 음식도 이곳에선 선뜻 손이 간다. 분위기 때문이다. 역시 시장에는 먹는 게 있어야 한다.    

나이트 마켓

   프놈펜은 밤이 더 화려하다. 특히 프놈펜 왕궁 앞 강변은 형형색색 네온이 켜지며 외국인들로 붐빈다. 강변을 끼고 길게 늘어선 카페나 식당은 화려한 조명 아래 매일 밤 다시 태어난다. 누구도 그곳을 걸을 때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노천카페에서 외국인들이 소시지를 안주삼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니 내 발걸음도 당연히 그쪽으로 향한다. 프놈펜의 밤은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한 도시다. 그래서 이곳은 혼자 걷기에 외롭다.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괜히 아내, 두 딸에게 영상통화를 누른다. 그만큼 이곳은 혼자 즐기기에 아까운 곳이다.    

돈레메콩강변 리버프론트의 야경

  프놈펜 여행은 이곳에서만 즐겨도 며칠이 행복하다.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가 많은 지 적은 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처음 만나지만 서로가 낭만과 꿈을 이야기하면 된다. 강변에 음악소리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화려한 네온을 받은 강물도 물결을 일으키며 함께 춤을 춘다.

  왕궁과 조금 떨어져 위쪽에는 작은 섬이 있다. 꺼삑섬이다. 강폭이 좁아 언뜻 보면 육지로 보인다. 라오스에서 흘러내려온 메콩강의 한 줄기는 이 섬을 끼고 바삭강으로 흐른다. 최근 이 섬은 중국 자본의 개발 붐이 일어 현대식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밤에는 화려한 네온이 반짝인다. 특히 연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혼자 걷기 민망하다.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에는 매일 많은 청춘남녀가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강변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레스토랑과 카페가 늘어서 있어 야경의 유혹이 만만치 않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곳을 프놈펜의 홍콩이라고 부른다. 저 멀리 보니 강 건너 쏘카 호텔이 희미하게 불빛을 비춘다. 돈레메콩강에 비친 프놈펜은 매일 밤 오색찬란한 불빛으로 반짝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캄보디아의 홍콩, 꺼삑섬

  왕궁 앞 선착장에서 일몰크루즈 배를 타고 나간 적이 있다. 석양의 붉은 노을에 취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화려한 불빛의 프놈펜 시내는 마치 시내 전체가 산등성이에 불이 타오르듯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돈레메콩강에서 바라본 프놈펜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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