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쫑 Oct 25. 2019

킬링필드, 프놈펜  

부활하는 캄보디아 왕국


  프놈펜에 낭만만 있는 건 아니다. 아픈 역사도 있다. 킬링필드. 1975년 집권한 포트 정권은 잔인한 살육을 자행한다. 안경을 끼고 있다는 이유로, 손에 굳은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 적게는 150만 명, 많게는 200만 명이라고 한다. 킬링필드의 흔적은 캄보디아 전국 곳곳에 있다. 크고 작은 킬링필드가 삼천여 곳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캄보디아 여행에서 ‘뚜얼슬랭’이나 ‘킬링필드’ 방문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잔인했던 현장을 보는 게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한번은 봐도 괜찮을듯하다. 뚜얼슬랭 박물관은 대량학살 박물관이다. 원래는 고등학교였다. 1975년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고 S-21 교도소로 사용하였다. museum이라는 명칭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에는 당시의 수용시설과 고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7,000명 이상이 수용되었으며 수감자 대부분은 이곳에서 17km 떨어진 킬링필드로 옮겨져 처형되었다. 이곳을 다 보면 어떤 말도 안 나온다. 첫 방문 때 내가 받았던 충격은 무척 컸다. 오히려 상상이 안가 두려움을 못 느낄 정도였다. 두 번째 방문에서 나는 그 당시의 현실을 냉철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여전하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교실 복도에 설치했다는 쇠창살만 제거하면 오래된 학교의 모습이다. 인간의 잔인함을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은 곳이 이곳이다.   

뚜얼슬랭 대량학살 박물관

  이곳에 갇혀있던 사람들 중 12명만이 생존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쩡아엑의 킬링필드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킬링필드 가는 외진 길

 쩡아엑은 지명이며 원래 중국인들의 공동묘지였다. 프놈펜 시내에서 쩡아엑까지는 큰길을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어도 한참을 다. 두 눈을 가린 채 트럭에 실려 끌려가던 사람들에게 이 길은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 시간들이었을까? 툭툭을 타고 가는 내가 생각만 해도 몸에 전율이 느껴지니 말이다. 샛길 주변은 민가도 없는 외진 곳이다. 마치 내가 폴포트에 의해 끌려가는 기분이다. 갈증이 느껴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 길은 뚜얼슬랭 박물관에서보다 발걸음이 훨씬 무겁다.    

  킬링필드 입구에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위령탑, 위령탑은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같은 인간으로서 미안해지는 맘은 어쩔 수 없다. 위령탑 유리 장식 안은 5천 개가 넘는 인간 두개골로 채워져 있다. 위령탑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오래 머물기가 힘들다. 보던 걸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야외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린다. 야외는 당시의 생매장 현장을 그대로 두었다. 뼈가 드러나 있는 땅을 보자니 자꾸 눈을 피하게 된다. 나는 킬링필드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이건 인간이 한 짓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킬링필드를 나와 툭툭을 타니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나는 툭툭 기사에게 왕궁 근처의 왓우나롬 사원으로 가자고 했다. 무거운 맘을 위무하기 위해 잠시 사원에 들러야만 할 것 같아서다.

위령탑
쩡아엑 킬링필드

  캄보디아는 국민의 90% 이상이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다. 그래서 원망보다는 자비를 우선한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다시 들춰내기에는 너무나 아픈 역사기도 하지만 포용하는 맘씨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캄보디아는 어딜 가나 사원(절)이 많다. 왓 우나롬 사원은 1422년에 지어진 캄보디아 불교의 본산이다. 현재 캄보디아 큰 스님이 있는 곳으로 500여 명의 스님이 있다. 사원 안에는 45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다. 바로 앞은 돈레메콩강이다. 사원을 걷다 보니 잠시 킬링필드를 잊는다. 캄보디아 불교는 대중의 종교로 사람과 무척 가까이 있어 좋다. 

왓우나롬 사원

  195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보호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기념탑은 캄보디아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1958년 세워졌다. 왕궁 인근 중심가에 세워져 있으며 앙코르왓의 중앙성소탑을 본떠서 만들었다. 5개 층으로 높게 만들어져 잘 보인다. 밤에 보면 더 장관이다. 독립기념탑은 매일 밤 캄보디아의 염원을 담고 화려한 불빛으로 빛난다.

  이곳은 공원으로 꾸며져 아침저녁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와 운동을 한다. 이 공원은 캄보디아의 심장부다. 현 국왕 노로돔 시아모니 아버지인 노로돔 시아누크의 동상도 여기에 있다. 이곳 길가에 북한대사관이 있다. 지금이야 인공기가 아무렇지 않게 보이지만 서슬 퍼런 시절에는 인공기는 애써 외면해야 하는 깃발이었다. 인적 없는 대사관 안에 축 늘어진 인공기가 북한의 현 실상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독립기념탑

  독립기념탑을 가까이 두고 휘황찬란한 불빛을 쏟아내는 것은 나가월드카지노의 불빛이다. 프놈펜의 카지노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카지노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마구 허가를 내주고 있다. 나가 호텔과 카지노도 중국자본이다. 독립기념탑의 화려한 불빛은 나가호텔카지노의 화려한 네온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독립은 되었으나 자본의 독립은 요원한 것이 캄보디아의 현실이다.    

프놈펜 시내 카지노의 화려한 네온

 

스님의 아침

  프놈펜은 껀달주에 둘러싸여 있다. 돈레메콩강 맞은편도 껀달주다. 왕궁 앞 선착장에는 건너편을 가는 통근용 배가 수시로 다닌다. 배가 커서 차량, 오토바이도 많이 탄다. 가격은 0.25$. 배가 강 가운데로 나가면 마치 바다에 떠있는 기분이다. 그만큼 강폭이 넓다. 배의 기계소리 굉음이 자못 시끄러운데 그 소리가 스님의 귀에는 불경 소리로 들리나 보다. 왕복 20분 정도 걸리는데 배를 타고 아침을 맞는 기분이 상쾌하여 나는 하릴없이 두세 번 왔다 갔다 한적도 있다.





트마이 시장

  프놈펜의 재래시장은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시장 건물의 우아함으로 보면 당연히 트마이 시장이다. 흔히 중앙시장이라고 말한다. 1937년에 지어진 아르데코 양식의 시장이다. 네 개의 날개와 높은 천장의 거대한 돔이 특색이다. 이곳의 돔은 기둥이 없는 돔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트마이 시장은 농수산물에서부터 관광 상품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다. 프놈펜에 살 때 가끔 트마이 시장에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틀려 애를 먹곤 했다. 4곳의 날개가 똑같고 시장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어 한번 발을 들여놓고 구경하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나오기 쉽다.


뚤똠봉 시장

  캄보디아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하지만 과거 사회주의 국가와 관계가 좋았기에 구 공산권 대사관의 규모가 크고 위치도 좋다. 대표적으로 북한대사관은 왕궁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 노로돔 시아누크가 실각했을 때 북한 김일성은 평양에 그의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러시아 대사관 규모도 무척 크다. 예전에는 러시아 주재원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뚤똠봉 시장은 1980년대 러시아 주재원들이 많이 방문했기에 러시아 마켓이라고도 부른다. 재래식 건물의 시장이지만 그 안에는 실크 스카프, 다양한 골동품 등 신기한 물건이 많아 눈요기하기에도 좋다. 시장 안은 폭이 좁아 다니기 불편하지만 그만큼 물건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 저녁 시간에는 시장 공터 앞마당이 거대한 먹거리 장터로 변한다. 가격도 저렴하여 내가 이 근처

에 살 때는 뚤똠봉 시장 노천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곤 했다.



  

돈레메콩강의 그늘

  요즘 프놈펜에는 높이 빌딩이 즐비하다. 자가용 가진 사람도 많다. 고급 쇼핑몰도 들어섰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뒷골목은 쓰레기 천지며 지류의 강물도 오염되어 시커멓다. 돈레메콩강에서 보는 야경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왕궁 앞에서 보이는 강 건너 최고급 쏘카 호텔, 쏘카 호텔 밑의 강가에는 너무 다른 세상이 있다. 나무 기둥 위에 얽기섥기 지붕을 얹히고 지은 집. 맨발의 아이들, 구걸하는 할머니. 프놈펜의 화려한 밤은 이곳에는 없다. 이런 프놈펜의 두 얼굴을 보면 삶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프놈펜을 ‘아시아의 진주‘라고 말한다. 돈레삽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거대한 바다를 보면 그렇게 말해도 손색이 없다. 급속한 도시화로 어두운 그늘도 있고 킬링필드의 아픈 기억도 있지만 프놈펜은 매일 밤마다 화려한 불빛으로 빛난다. 왕궁은 고고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돈레메콩강은 프놈펜을 품고 도도히 흐른다. 캄보디아가 미래로 나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전 04화 돈레메콩강, 프놈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