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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Oct 28. 2019

신이 만든 건축물 앙코르왓, 시엠립

화려했던 앙코르 제국


  수리야바르만 2세가 30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앙코르왓 사원. 하지만 앙코르왓은 신이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등극한 수리야바르만 2세는 절대 권력의 군주로서 자신을 신으로 여기며 사원새로 건축하기로 한다. 앙코르왓을 짓기 위해 20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었고 그중에는 전쟁포로도 있었다. 앙코르왓 사원은 60만 개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그 돌은 45km 떨어진 프놈쿨렌산에서 운반되었다. 강을 따라 운반하고 코끼리를 동원했다. 기둥이 1,532개, 기둥 한 개가 7톤의 무게도 있다.

  첫눈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이 건축물은 회랑이며, 성소며, 탑이며, 벽면 부조, 그리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200m 폭의 해자까지도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앙코르왓은 한두 번 보는 것으로는 다 알 수가 없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것은 신의 이야기고, 어떤 것은 수리야바르만 2세 왕 자신의 이야기고, 어떤 것은 크메르족의 삶 이야기다.

  앙코르왓 사원에 가까이 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해자다. 길이 1.3 km×1.5km, 폭 200m. 해자가 앙코르왓을 사면으로 감싸고 있으니 신비감을 더한다. 마치 큰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사원 같다.            

앙코르왓 해자 다리 앞 나가상과 해자의 모습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원이나 성 외곽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앙코르왓의 해자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의미가 강하다. 해자를 건너면 신의 세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앙코르왓 해자에는 고도의 건축공학이 숨어있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캄보디아 날씨에서 건기에 땅이 갈라지며 건축물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해자가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해자를 건너려니 '나가'(힌두 신화 뱀의 신)상이 인간의 출입을 통제하듯이 고개를 쳐들고 지키고 있다. 200m 물길 위를 걸으며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묘하다. 눈앞에 다가오는 탑문에서부터 앙코르왓의 신비가 느껴진다. 세 개의 탑문은 중앙은 신이나 왕이 들어가는 문이며 그 옆은 신하들의 문이다. 저 멀리 양쪽 끄트머리에는 일반 백성이 드나드는 작은 문이 있다. 탑문 앞의 나가상이 또 나를 검문한다. 왕이 아니면서 왜 이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냐고 묻는다. 나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되어 가운데 문으로 들어갔다.    

해자 다리와 탑문

  탑문을 빠져나오자 화려하고 장엄한 앙코르왓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원 입구까지 잘 정돈된 도로는 왕이 걸었다는 길, 길이가 무려 325m. 나가의 몸통이 좌우의 난간이 되어 왕을 호위하고 있다.   

  너무나 신비로운 광경이기에 주위를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걷는다. 사원이 한걸음 한걸음 내 앞으로 다가온다. 바다의 물길이 열리듯 신비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 왕의 길 양쪽을 호위하는 나가의 몸통이 오늘은 나를 위해 도열해 있다.

왕의 길
라이브러리

  넓은 광장 양쪽에는 '라이브러리'가 있다. 이곳은 왕실 자료를 보관했던 곳으로 앙코르 유적의 라이브러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 안에 보관되었던 수많은 서적, 자료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앙코르 제국의 역사는 글로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텅 빈 라이브러리는 그래서 나를 더 안타깝게 만든다.   



  라이브러리를 지나 걷다 보면 사원 앞 양쪽에 연못이 있다. 앙코르 유적 사원에는 빠짐없이 연못이 있다. 연못은 물이 귀한 캄보디아에서 물을 저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사원과 연못은 아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건축이 아무리 훌륭해도 인공으로는 완벽할 수 없기에 자연의 연못으로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곳은 매일 아침 중앙성소탑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연못에서 바라본 앙코르왓 사원

  왕의 길이 끝나고 목재 계단을 오르니 웅장한 사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눈에 담기에도 힘든 엄청난 크기의 사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바로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외곽을 돌며 둘러보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앙코르왓 같이 큰 유적은 외곽에서 전체를 조망하면 한눈에 구도를 파악하기 좋다. 사원 외곽을 걷는 길은 호젓해서 산책하는 느낌이다. 걸으며 사면에서 바라보는 앙코르왓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이다. 회랑 옆에 외롭게 서 있는 트나옷 나무는 앙코르왓 사원의 역사를 알고 있다는 듯 도도하다.

1층 회랑 외벽과 트나옷 나무

  1층 회랑의 4면의 길이가 총 800m니 나는 외곽으로 1km 정도 걸은 셈이다. 본격적으로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1층 회랑을 통과해야 한다. 1층 회랑의 벽면을 가득 채운 조각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수리야바르만 2세가 꿈꾸던 세계를 그린 대서사시가 끝없이 이어진다. 왕의 행진 장면에서는 절대군주의 위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속국의 왕은 남루하고 보잘것없이 그려져 있다. 왕의 행진 장면만 약 100m에 이른다.

왕의 행진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의 벽면 조각에서는 왕은 신이 되어 상좌에 앉아 인간을 심판하고 있다.







우유바다젓기

  앙코르톰의 남문 해자 다리 난간, 바수키(뱀신)를 잡고 줄다리기를 하는 악신과 선신의 모습은 사진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이곳 벽면 50m 길이에 섬세하게 조각된 힌두 신화 '우유바다젓기'에서 나온 것이다. 조각이 어찌나 섬세한지 눈길을 뗄 수가 없다.

  



  회랑을 한 바퀴 돌면 꽤 많이 걷는 것이다. 하지만 회랑 4면을 8개 이야기로 가득 채운 조각의 벽면은 살아 움직이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우주의 중심을 의미하는 십자형 회랑 천장

   앙코르 제국은 주변국을 평정하며 영토를 넓혔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었다. 1층 회랑을 지나 십자 회랑의 중간은 네 개의 대양을 상징하듯이 천장에는 네 개의 돌이 정확이 만나 돔을 형성하고 있다. 무심히 보면 그냥 돌 이건만 알고 보면 범접할 수 없는 뜻이 숨어 있어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이곳은 앙코르왓의 정중앙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앙코르왓 사원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으며 수난을 맞는다. 십자형 회랑 우측의 부처 갤러리도 그것이다. 불교사원으로 바뀌며 앙코르 제국 멸망 후 태국이 점령했던 시절에는 더 많은 불상이 이곳에 모셔졌다고 한다. 불상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뭔가를 비는 외국인의 모습이 생경하다. 부처 갤러리 맞은편에는 가슴을 치면 소리가 울린다는 울림의 방이 있다. 진짜로 쿵쿵하고 소리가 울린다. 울림의 방에서 수리야바르만 2세에게 물었다. 이곳이 힌두교 성전입니까? 불교 성전입니까? 하지만 어떤 울림, 어떤 대답도 없다.    

  앙코르왓 사원은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자 회랑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2층 회랑이다. 2층 회랑의 벽면에는 1,500명이 넘는 압사라 여신이 춤을 추고 있다. 일부는 복원하여 색상이 틀리다. 퇴색되었지만 옛것 그대로가 훨씬 아름답다.

2층 회랑 벽면의 압사라
가짜 창문

  2층 회랑은 1층 회랑에 비해 좁고 창문이 없어 어둡다. 회랑 밖에서 보면 창문인데 가짜인 것도 있다. 이런 창문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 건축물을 지탱하기 위해 기둥의 역할도 한다. 앙코르왓 사원보다 70년 뒤 자야바르만 7세 시대에 건설된 앙코르톰의 바이욘 사원은 많이 무너진데 비해 앙코르왓이 원형 그대로인 것은 기적에 가깝다. 앙코르왓이 판석의 축조 형태로 단단히 바닥을 다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돌 하나하나마다 과학적으로 설계한 기술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2층 회랑에서 바라본 3층 중앙성소탑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힌두 신화에 나오는 메루산을 본떠 만든 3층은 네 개의 모서리 탑이 있고 가운데에 중앙성소탑이 자리 잡고 있다. 금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탑, 이곳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어 영원히 묻히고 싶은 곳이었다. 그만이 올라갈 수 있었던 그곳은 지금은 여행객이 차지하고 있다. 2층에서 보면 3층은 고개를 높이 들어봐야 보인다. 우러러봐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접근이 쉽지 않아 보이는 곳, 그곳은 신의 세계다.     

2층에서 바라본 3층 성전
3층 중앙성전으로 오르는 계단

  3층 중앙성소를 오르려면 계단이 가팔라 손을 이용하여 기다시피 올라가야 한다. 신은 아직도 인간이 성소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중앙성소는 60m 길이의 정사각형이다. 중앙성소를 걸으며 잠시 상념에 젖는다. 수리야바르만 2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살면서 무엇을 원했는가? 저 아래 왕의 길을 걸어 들어오는 수많은 수리야바르만 2세의 모습이 보인다. 1층 회랑을 밖으로 돌며 볼 때도 경이롭지만 3층에서 아래를 보니 더 경이롭다.

3층 중앙 성전에서 바라본 왕의 길


중앙성소 사각탑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중앙성소를 걷다 보면 더 이상 할 말을 잊게 한다. 힌두 신화 상상의 산인 메루산을 상징한 오점식 탑, 네 개의 모서리 탑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 중앙에 성소탑이 있다





  앙코르왓 사원에서 가장 화려한 탑, 중앙성소탑. 프놈펜의 독립기념탑은 이 중앙성소탑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회랑과 연결된 프론톤 양식과 맨 위에 연꽃 봉오리처럼 피어나는 탑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그렇게 바라던 신의 세계를 향해 솟아있다. 지금 이곳에는 힌두 신화는 있지만 힌두 신상은 없다. 중앙성소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불상이 왜 그곳에 있는지, 수리야바르만 2세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가사의한 건축물만큼이나 신비한 앙코르왓 사원이다.  

중앙성소탑

  앙코르왓은 해자를 건너면 신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신계에 깊이 빠졌다. 1층 회랑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진짜 신계를 걷는다는 착각에 빠진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도저히 믿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앙코르왓의 원숭이

  한참 머물던 신계를 빠져나온 나는 광장 연못 앞에 다시 섰다. 정신이 아직도 신계에 있는 것 같이 몽롱하다. 나는 이제 인간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백성들이 다녔다는 탑 문의 끄트머리 문으로 걸었다. 그곳에는 몇 무리의 잡상인이 여행객에게 선물을 권하고 있고, 한쪽에선 원숭이들이 뛰놀고 있다. 나는 이제 비로소 인간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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