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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Nov 02. 2019

스펑나무가 삼켜버린 사원 따프롬, 시엠립

화려했던 앙코르 제국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 '툼레이더'로 더 유명해진 따프롬 사원. 앙코르 유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의외로 따프롬 사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무엇이 그렇게 강한 인상을 준 걸까? 아마도 폐허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열했기 때문이리라. 그 폐허의 주범은 스펑나무다. 따프롬 사원은 프랑스보호국 시절 앙코르 유적 복원계획을 세우며 스펑나무에 의해 붕괴되는 사원의 실제를 연구하며 한 곳은 그대로 두기로 했는데 그 사원이 따프롬 사원이다.

  따프롬 사원은 너무나 많이 무너져있고 무너진 틈 사이로 길을 만들었기에 내부를 자세히 보기가 쉽지 않다. 서너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나도 매번 갈 때마다 제대로 본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따프롬 사원은 동쪽 탑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서쪽 탑문을 통해서도 많이 들어간다.

  자야바르만 7세가 죽은 어머니를 위해지었다는 사원. 짬파의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왕조를 천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자야바르만 7세는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크메르 왕족인 어머니를 부각하며 700×1,000m인 엄청난 규모의 사원을 짓는다. 어머니를 위한 사원이기도 했지만 권력 강화의 목적이 더 컸다.

십자 회랑과 스펑나무

 동쪽 탑문을 통해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십자 회랑보다 커다란 스펑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스펑나무의 높이가 앞으로 만나게 될 나무의 위력을 예견하게 한다.





  철저한 불교도였던 자야바르만 7세는 즉위 후 많은 불교 사원을 짓는다. 힌두교 사원이 판석축조 방식으로 바닥을 3중으로 튼튼히 다진데 비해 불교 사원은 평면건축 방식으로 맨땅에 그냥 지어 지반이 약하다. 따라서 따프롬을 비롯 쁘레아칸 등 그 당시 지었던 많은 불교 사원의 붕괴가 심하다. 거기에 붕괴를 재촉한 것이 스펑나무다. 새의 분비물이나 바람에 옮겨온 스펑나무 씨앗은 물을 찾아 사암의 틈 사이에 자리 잡는다. 스펑나무는 자라며 사암과 사암 건축물 사이를 삐집고 들어가며 석재 틈은 더 벌어지게 되고 결국 건축물은 스펑나무에 감기게 된다. 그러다 스펑나무가 썩어 죽으면 공간이 생기면서 감싸고 있던 건축물이 붕괴된다. 따프롬 사원의 스펑나무는 제거가 불가능하기에 그대로 두는 것이다. 따프롬 사원은 인간이 아무리 완벽해도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중앙성소로 접근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폐허를 만난다. 길이 미로다. 무너진 돌 사이로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만 길이 나 있으니 알아서 구경하고, 알아서 전진해야 한다.

무너진 따프롬. 미로

  벽면 한쪽을 집어삼킨 스펑나무 앞에서는 말이 안 나온다. 신기한 광경에 오히려 사진 찍는 명소로 유명해졌다. 이런 스펑나무의 모습은 신이 되고자 했던 자야바르만 7세에 대한 경고 같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다고.

스펑나무의 경고
신음하는 문지기 조각상

  걸으면서도 자꾸 위를 쳐다보게 된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탑문을 지날 때는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사원 대부분이 무너져있어 차분하게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탑문을 지키던 문지기 조각상이 무너진 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사원이 무너져 신음하던, 스펑나무가 경고를 하던 눈은 즐겁다. 어떤 스펑나무의 풍경에서는 사진 찍느라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하늘로 쭉 뻗은 스펑나무속으로 들어가 연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스펑나무가 주인인지 사원이 주인인지 모르겠다.

스펑나무의 손
한 폭의 그림

  사원의 형태를 그리며 보기가 어렵기도 해서 그렇지만 스펑나무로 더 유명해서 그런지 스펑나무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사원을 파괴한 스펑나무가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하니 엄청난 모순이다. 억지로 이름을 붙인다면 아름다운 붕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스펑나무는 잔인하게 사원을 파괴했다. 그사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의 무력감이 느껴지는 곳이 이곳이다. 오늘도 스펑나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어떤 건 정말 아름다워 한 폭의 그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중앙성소 주변에 모여있지만 어디가 중앙성소인지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중앙성소 주변은 대부분 무너졌다. 스펑나무에 취해 다니다 가이드의 말에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마치 집이 폭격을 맞아 뛰쳐나온 사람들 같다. 중앙성소는 네 개의 무너진 탑들 사이에 있다. 그 가까이에 스펑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어 언젠가는 중앙성소도 스펑나무의 먹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중앙성소

  따프롬 사원을 보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가기 전 사원의 구도를 미리 알고 가지만 그만큼 무너진 돌과 스펑나무의 인상이 강한 곳이라 진짜 사원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따프롬 사원 석문에 보면 당시 사원 안에는 승려, 신도, 무희 외에도 행정기관이 들어와 있어 5천 명이 넘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따프롬 사원은 하나의 작은 도시였던 것이다. 지금은 스펑나무가 그 모든 역사를 삼켜버렸다.

서쪽 고푸라

  따프롬 사원을 빠져나오니 서쪽 고푸라를 만난다. 서쪽 고프라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고푸라 너머에 우뚝 솟은 스펑나무는 따프롬 사원의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이래저래 맘이 싱숭생숭한 사원이다.




  따프롬 사원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계를 갔다 온 느낌을 준다. 그만큼 신비스러운 체험이다. 하지만 인간이 결코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말해준다. 붕괴된 사원의 신비스러운 모습은 인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내가 따프롬 사원 방문을 마치면 맘이 늘 무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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