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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Oct 30. 2019

거대 도시 앙코르톰, 시엠립

화려했던 앙코르 제국


  시엠립 앙코르 유적에서 앙코르왓과 함께 가장 유명한 곳이 앙코르톰이다. 앙코르톰은 자야바르만 7세(1181~1215) 시대에 조성된 도시를 말한다. 그 당시 앙코르톰을 중심으로 주변에 70만 명이 살았다니 어마어마하다(그 당시 송나라 수도 개봉은 80만, 고려 개성은 20만,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는 채 10만 명이 되지 않았다). 앙코르톰이 건설된 배경은 짬파국의 침략으로 일시적 지배를 받다가 나라를 되찾은 자야바르만 7세가 강한 나라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존의 도시를 재편하여 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3.3km 정사각형의 도성을 8m 높이의 성벽과 폭 100m의 해자로 감싸고 있는 계획도시로 만들었다. 물자 수송을 위해 도로도 새로 깔았다. 자신이 부처라고 믿었던 자야바르만 7세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102개의 병원도 세운다. 앙코르톰 도시의 생활모습은 원나라 사신 ‘주달관‘이 1296년 이곳에 와서 11개월 체류하며 쓴 ’진랍풍토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크다'의 캄보디아 말이 '톰'다. 앙코르톰은 하나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가운데는 바이욘 사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왕궁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원이 도시 안에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앙코르톰은 동서남북 4개의 문과 왕이 코끼리테라스로 나가는 승리의 문, 모두 5개의 문이 있다. 코끼리테라스는 왕이 직접 나와 출정하는 군사들을 격려했던 광장이다.   

  앙코르톰의 남문은 5개의 문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문이다. 남문을 통해 앙코르톰 중앙의 바이욘 사원을 보고 바푸온 사원을 거쳐 왕궁터를 거닐다가 코끼리테라스 쪽으로 나가는 것이 앙코르톰 전체를 걸으며 보기에 좋은 코스다. 하지만 다른 유적지를 보고 앙코르톰을 본 다음에 남문으로 나와 앙코르왓 사원을 맨 마지막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코스는 아무래도 앙코르왓을 먼저 보면 나머지 유적들의 흥미가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 가이드가 택하는 코스다. 어떤 코스를 택하던 남문은 앙코르톰을 지나는 관문이다. 여유가 있다면 앙코르왓에서 앙코르톰까지 걸어서 가면 좋다. 앙코르왓 해자를 끼고 걷다 보면 앙코르톰 남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해자와 해자 다리 난간

  해자를 건너는 다리 난간은 악신과 선신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앙코르왓 1층 회랑의 부조, ‘우유바다젓기’ 신화를 묘사한 것이다. 100m 해자를 건너면 남문의 자야바르만 7세 얼굴을 만난다. 4 면상이 모두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다. 영락없는 부처의 미소다. 언제나 봐도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은 나를 환영한다며 또 한 번 미소 짓고 있다.    

앙코르톰 남문

  직진하여 걸으면 바이욘 사원이다. 1.5km 정도 되니 걷기에 좀 먼 거리다. 하지만 도성 안을 걷는 기분은 아주 좋다. 주변은 숲이다. 당시 이곳에는 수십만 명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다. 백성들이 살전 집이나 장터는 목재나 흙으로 지어진 까닭이다. 바이욘 사원은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한 면이 150m에 이르는 거대한 바이욘 사원은 부처가 되기를 원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세웠다. 그는 자신을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는 존재로 본 것이다.    

바이욘 사원
바이욘 사원의 돌

  바이욘 사원은 20만 개가 넘는 돌로 만들어졌으며 54개의 탑과 200개가 넘는 부처상이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 부처상을 ‘바이욘의 미소’라고 부른다. 사원 앞 한쪽에 남아있는 연못에 물이 고여 바이욘 사원이 거울처럼 비추고 근처에서는 원숭이들이 뛰어 논다.


  

  바이욘 사원의 외부 회랑 벽면에는 짬파국을 물리치는 모습과 전투에서 승리한 자야바르만 7세가 행렬하는 모습, 앙코르 제국 역사 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라고 칭하는 1177년 돈레삽 해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돈레삽 해전, 짬파국과의 전쟁, 왕의 행진
앙코르톰에서의 중국인들 생활모습

  특이한 것은 벽면 한쪽에 중국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원나라와 교류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원나라 사신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는 앙코르 역사를 기록한 유일한 책이다.     





무너진 내부 회랑

  바이욘 사원은 많이 무너져내려 사방이 돌무덤이다. 특히 내외부 회랑은 거의 다 붕괴되었다. 앙코르왓 보다 뒤에 만들어졌는데도 붕괴가 더 심하다. 복원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다. 앙코르왓 건축 시 이미 좋은 석재를 다 썼기에 질이 좋지 않은 석재를 사용한 것도 원인이라고 한다. 프놈쿨렌산에서 얼마나 많은 석재를 캤는지, 그걸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됐을지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이 건축물에

                                                              마냥 감탄만 하기도 그렇다.     

  바이욘 사원의 백미는 3층 중앙성소다. 이곳에는 수많은 바이욘의 얼굴이 있다.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미소는 한결같다. 미소 짓는 입술의 곡선미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나는 바이욘의 얼굴 앞에서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았다.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살아오며 웃는데 인색하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무척 어색하다. 부처의 미소를 실천하기 위해 자야바르만 7세는 전국에 많은 병원을 지어 아픈 사람을 치료했고, 큰 저수지와 도로망을 구축하여 백성들이 생활하기 편하게 했다.   

바이욘의 미소
수많은 바이욘의 얼굴

   3층 중앙성소에 오르자 수많은 바이욘의 얼굴이 나를 유혹한다. 모두가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데다가 내 머리와 부딪힐 정도로 빼곡히 들어서 있어 갈 때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많은 바이욘의 얼굴을 보다 보면 어디로 나가야 할지 헷갈린다. 그래도 이곳에 오면 누구나 미소를 짓는다. 나는 바이욘의 미소를 담고 서문으로 빠져나왔다. 부처의 미소, 바이욘의 미소, 자야바르만 7세의 미소를 닮으려면 먼저 자주 웃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바푸온 사원으로 걸으며 나는 손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걸었다.     

  바이욘의 미소를 상상하며 걷는데 눈앞에 육중한 건축물이 나타난다. 바푸온 사원. 앙코르톰이 건설되기 전인 우다야디티야바르만 2세(1050~1066)때 지은 힌두 사원이다. 높이가 43m로 무척 높다. 첫인상이 미소와는 연관 없는 우람한 남성이 연상되지만 자세히 보니 층층의 피라미드 계단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고 있다.

진입로

  200m 길게 이어진 진입로를 보면 사원의 격이 꽤 높았을 것 같은데 사원의 용도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다. 진입로를 걸으니 차분해진다. 난간이 없는 게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진입로 폭이 좁아 나 혼자 독차지하고 걷는 기분도 든다.   




아름다운 선율

 진입로 아래 풀밭에서는 신혼부부의 야외 촬영이 한창이다. 웨딩드레스의 아름다운 곡선과 바푸온 사원의 선율이 뭔가 비슷하다.






  1층 기단으로 가까이 가서 보니 선의 층층이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었다. 바푸온 사원은 피라미드식 기단 위에 육중한 사원이 안정되게 배치된 구도다.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아름다운 미술관 앞에 서 있는 상상을 하게 한다. 바푸온 사원을 보고 미술관이 연상되는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바푸온 사원
중앙성소탑

  3층에 올라서니 중앙성소는 많이 무너져 내려 다른 돌로 얽기 설기 쌓아놓았다. 보수라고 하기엔 성의가 없을 정도다. 밑에서 봤을 때 모습에 비해 중앙성소는 너무나 보잘것없다. 마치 버려진 무덤 같다. 바푸온 사원은 아직도 무슨 목적으로 세워졌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이곳이 미술관이었을 거라고 나 혼자 결정 내려도 무방하다.    





 중앙성소는 꽤 넓다.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이욘 사원과 왕궁이 저 멀리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바푸온 사원은 앙코르톰의 중심지역으로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을 그 누군가에 의해 지어진 것 같다.

바푸온 사원 중앙성소에서 바라본 왕궁터

  바푸온 사원을 나오면 왕궁 남문 고푸라(입구 문)를 통해 들어간다. 사라진 왕궁의 흔적만큼이나 고푸라도 무너져내려 지지대로 지탱했다. 문을 통과하여 숲 속 오솔길을 걷는 이곳이 왕궁터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도 없다. 그저 숲길이고 풀밭이기 때문이다. 무상함이 느껴지는 장소다

 앙코르톰에서 사람이 가장 적은 곳이 왕궁터다. 왕궁터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가이드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면서 가장 많이 상상하는 곳이 이곳이기도 하. 보이는 게 없으니 자기 맘껏 상상하며 보면 다. 원나라 사신 주달관의 기록에 따르면 왕궁은 금색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고 웅장했다고 쓰여있다. 왕궁은 바이욘 사원에 가까이에 있어 앙코르톰 중앙이라고 할 수 있다. 왕궁터는 직사각형의 담장에 싸여있다. 담장 안에는 왕궁이 있었고 왕궁의 사원이라고 알려진 피미엔나까스 사원, 왕족과 궁녀들이 목욕했다는 연못 두 개, 그리고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지금 왕궁터에는 피미엔나까스 사원과 연못 두 개만 남아있다. 누군가는 재미없는 이곳이 나는 무척 흥미롭다. 사람이 거의 없어 호젓하게 산보하듯이 걸을 수 있어 좋다.

왕궁터의 흔적

  왕궁터를 걸으며 수많은 왕의 역사를 기억해 본다. 그 안에는 전쟁의 역사와 피비린내 나는 권력싸움의 역사, 영광의 역사도 있고, 굴욕의 역사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굴곡 없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나온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힘들었던 시절이 먼저 떠오르니 나의 인생도 비슷하다.



  왕궁 가운데에 위치한 피미엔나까스.  왕궁 안의 사원이니 왕만이 사용했던 사원이다. 전설에 따르면 왕이 인간 여자와 동침하기 전에 뱀이 변신한 여인과 동침해야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해서 왕은 해가 지면 여인이 사는 피미엔나까스 사원의 계단을 올랐다고 한다. 지금 이곳은 보수 중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전설은 그냥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사원을 둘러보는데 뱀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진다.     

피미엔나까스 사원

  왕궁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쓸쓸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 왕궁의 목욕탕이라고 알려진 연못이다. 큰 연못은 정교하게 조각된 석재로 둘러싸여 있다. '주달관'은 왕궁 목욕탕의 모습을 보고 많은 여인들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데 왕족의 여인들은 피부가 하얀 반면 시중을 드는 하녀는 까만 피부를 가졌다고 기록했다. 석축 부조에는 이끼가 끼여 있고 물은 탁하다. 과거의 영화가 그저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작은 연못은 신분이 낮은 궁녀들의 목욕탕으로 추정된다. 물이 탁하지만 물이고, 석축 위 큰 나무의 그늘도 있어 나는 한참을 쉬었다. 다시 봐도 연못이 정말 크다. 이곳이 정말 목욕탕이 맞다면 그 당시 왕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다는 말인가?

목욕탕 연못
왕궁 고푸라

  왕궁터를 거닐다가 발길 닿는 대로 나가면 된다. 북문 고푸라로 나가면 문둥왕테라스 방향이고, 왕궁 고푸라로 나가면 바로 코끼리테라스와 연결된다.

나는 승리의 전사를 맞이하기 위해 왕궁 고푸라로 걸었다.




  코끼리테라스는 출정하는 병사들이나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을 맞이하고,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진행했던 곳이다 이곳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고 커다란 광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누가 봐도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했을 것 같이 넓다. 코끼리테라스는 300m 길이에 폭이 14m다. 끝이 안 보인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돈레삽 해전에 출전하는 수십만 명의 군사들이 자야바르만 7세에게 맹세하는 모습이다.

코끼리테라스
코끼리테라스의 실물크기 코끼리 형상과 왕이 서있던 테라스
루퍼킹, 문둥왕

  코끼리테라스와 이어져 끝에는 문둥왕테라스가 있다. 조각상이 문둥병을 앓은 형상을 하고 있어 문둥병을 앓았다고 전해지는 야소바르만 1세로 추측한다. 나는 프놈펜 박물관에서 진품을 본 적이 있다. 진품에 비해 복제품은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다. 이곳에 있는 조각상은 복제품이다. 하지만 문드러진 손을 보면 진품이나 복제품이나 맘이 아픈 건 똑같다.







코끼리테라스에서 본 쁘라삿수오 12개 탑

  코끼리테라스에서 눈앞에 펼쳐진 넓은 광장을 보면 시야가 탁 트인다. 더위에 걷느라 지친 몸에 생기가 돈다. 나는 일이 있어 씨엠립에 갈 때마다 티켓을 사지 않아도 방문이 가능한 코끼리테라스 광장까지 운동삼아 뛰었다. 코끼리테라스 맞은편에 보이는 횡렬로 늘어선 쁘라삿수오 12개 탑, 테라스에 서서 탑을 바라보며 그동안 살아오며 고마웠던 사람들 12명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늘 더 많은 사람이 

                                                               기억나 무척 감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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