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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Nov 04. 2019

 왕의 아버지를 위한 사원 쁘레아칸, 시엠립

화려했던 앙코르 제국


  앙코르 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는 즉위 후  따프롬 사원을 세우고 이어서 죽은 아버지를 위해 쁘레아칸 사원을 건설한다. 쁘레아칸은 '신성한 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원 안에 칼이 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여성적인 따프롬 사원에 비해 쁘레아사원은 남성적이다. 동서 수직으로 길게 이어진 통로를 따라 좌우에 수많은 문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쁘레아칸 사원은 앙코르톰에서 그다지 멀지 않지만 big tour 지역에 속해 가기 전 툭툭 기사나 가이드와 가격을 협상해야 한다.

  사원 주 출입구는 동쪽이다. 그래서 왕이 드나들던 동쪽은 고푸라와 테라스가 크고 화려하다. 그 앞에는 엄청난 크기의 인공저수지 '자야타타카'가 있다. 하지만 쁘레아칸 관람은 서쪽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동쪽의 진입로가 좋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다.

진입로

  서쪽 진입로는 라테라이트 바닥에 양 옆에는 사자가 불상을 받쳐 든 링가가 서 있다. 울창한 숲 사이에 조성된 진입로는 적막하다. 쁘레아칸은 관람객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호젓하게 진입로를 혼자 걸어 들어가니 앙코르톰 남문 해자 다리 난간에서 보았던 악신과 선신이 바수키를 잡고 줄다리기를 한다. 앙코르왓 1층 회랑 부조'우유바다젓기'다.






  서쪽 고푸라를 지나자 숲길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나이가 지긋한 외국인 부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앞에서 걷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서로 의지하며 살 사람은 아내뿐인 걸 살아오며 그다지 잘해준 게 없어 미안한 맘이 든다. 나지막이 아내 이름을 불러본다. 아내의 미소가 보인다.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쁘레아칸 사원에는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 부처의 미소가 없다. 숲길이 끝나자 울퉁불퉁하지만 단단히 펼쳐진 테라스가 나온다. 테라스를 밟고 지나 십자 회랑 앞에 서니 입구에는 머리가 없는 우람한 체구의 장수가 서있다. 입구에 압사라 여신이나 문지기가 서있는 곳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입구에서부터 강한 남성의 뭔가가 느껴진다. 손에 쥔 긴 칼은 금방이라도 적을 향해 찌를듯하다. 십자 회랑을 경계로 쁘레아칸 사원700 × 800m의 직사각형으로 축조되었다. 하지만 중앙성소를 감싸고 있는 부분과 수직선 통로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너져 숲 속에 방치되어 있다.

십자형 회랑

  십자형 회랑을 들어서면서부터는 800m 일직선으로 방과 방, 문과 문으로 연결된다. 중앙성소에 가까워질수록 문이 작아지는데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들어갈수록 문이 작아지니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느낌이다. 좌우는 정확히 대칭형으로 지어져 똑같은 크기의 문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 무너졌지만 문의 크기는 똑같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중앙 통로를 벗어나 옆으로 가면 헷갈릴 게 뻔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무너져내려 옆으로 벗어나 가기 쉽지도 않다.  

쁘레아칸 사원의 똑같은 크기의 문
중앙 통로의 링가

  쁘레아칸 사원은 중앙 통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걸어서 이어진 방을 통과하면 길을 잃을 일은 없다. 하지만 통로가 좁아 맞게 가는지 불안하기도 다. 나는 중앙 통로에 놓인 링가를 보며 앞으로 걸었다. 링가는 대개 건물의 중앙 또는 통로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중앙성소에 가까이 가며 성스러운 칼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중앙성소에는 원래 자야바르만 7세 아버지의 석조물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원형탑은 16c 교체된 것이고. 이곳에도 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원형탑 안에는 자야바르만 7세 아버지의 사리가 있다고 하는데 그 말도 믿기 어렵다. 하지만 원형탑 상단 하늘로 향하고 있는 부분이 정확히 사원의 중앙을 가리키며 이는 자야바르만 7세의 아버지를 향한 맘이라는 설명은 이해가 된다.

사원 한 가운데 있는 원형탑

   쁘레아칸은 중앙성소 원형탑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아버지를 위한 마음이자 강한 앙코르 제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뜻이 담긴 곳이다. 그래서 쁘레아칸 사원은 전체적으로 강한 느낌을 준다. 건물의 구조가 단순하지만 배치된 선은 굵다. 자야바르만 7세 사후 쁘레아칸 사원은 힌두 사원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조각이 파괴되거나 변형된다. 자세히 보면 불교 조각과 힌두교 조각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눈에는 거의 비슷해 보이지만 쁘레아칸 사원이 갖고 있는 슬픈 역사다.

  

스펑나무의 습격

 이런 슬픈 역사를 말해주듯 동쪽 회랑은 거대한 스펑나무에 감겨 있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따프롬 사원과 아버지를 위해 지은 이곳이 유독 붕괴가 심한 것이 안타깝다. 자야바르만 7세가 즉위 후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사원을 지으면서 빠른 시간에 마치려고 서두른 탓에 설계의 미흡, 허술한 공사 등도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앙코르 유적은 앙코르 제국 멸망 후 600여 년간 밀립에 있었다. 유적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동쪽으로 나오니 끝도 없이 펼쳐진 호수(실제는 인공 저수지)가 펼쳐진다. 자야타타카 호수다. 자야바르만 7세는 사원 앞에 거대한 인공 저수지를 축조하여 쁘레아칸이 신성한 곳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인공 저수지, 자야타타카

  부처가 되기를 원했던 자야바르만 7세, 그래서 수많은 사원에 부처상을 세웠던 그. 그는 백성을 보살피며 영원히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늘날 쁘레아칸 사원은 그의 뜻과는 반대로 무너진 돌로 짓눌려 있다. 오늘날의 캄보디아 현실과 비슷하다. 자야바르만의 미소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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