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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ug 13. 2021

달리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

한여름밤 한강변 도보여행 후기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좀 가셨으면 하는데 델타 변종이 다시 나타나 더 기승을 부린다. 인간은 본래 같이 섞여 살아야 하는 동물이거늘 지금은 혼자 있는 게 정답인 시대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행동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 년이 넘도록 이러니 사람들의 삶이 엉망이다. 어느덧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마는 마냥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으니 그리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족끼리 모이고, 친구를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거늘 그게 위법인 시대니 참 어이가 없다.

  마라톤 동호회를 이끌던 나도 올봄 모임을 해체했다. 야외 운동, 특히 마라톤은 모여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뛰기만 하고 바로 헤어졌는데도 사람들이 불안해하며 나오질 않았다(하지만 나 혼자서는 여전히 같은 루틴으로 마라톤을 즐기고 있다). 게다가 한번 모이면 최소 10~15km 뛰기에 초보자들이 부담이 되는 운동이어서 그런지 참여자가 많질 않았다. 3월부터 모임을 중지하고 두세 달이 지나도 코로나는 여전했다. 사실 질병관리청의 공식적인 자료에 의하면 야외에서는 2m 간격을 유지하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되어있다(지금도 당연히 유효하다.) 다만 야외지만 가끔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서 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집 밖을 나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야외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여전히 두렵다. 그래서 야외에서 운동다운 운동을 할 기회가 없다.

  내가 장거리 도보여행을 기획하게 된 것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6월에 처음으로 성남 산성역에서 경기도 양수리 두물무리까지 남한강변(34km) 걸었다. 참가자는 모두 11명. 30대 1명 외 대부분이 40대 중년 이상이며 여성이 반을 넘었다. 한낮 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걷는 것이 좀 힘들었지만 모두 완주했다. 참가자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모두가 처음 걸어보는 장거리 도전에 두려움으로 출발했지만 완주 후 느낀 삶의 활력,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은 자신감, 코로나로 우울했던 기분을 날려버린 후련함 등으로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도 빼먹지 않았다.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말 두 번째 도보여행으로는 한강변을 밤에 걷는 코스였다. 별을 보며 걷는 야간 도보여행.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까지 쉬지 않고 걷는 것이었다.

40km 별밤한강도보여행 코스

  참가자는 나를 포함 모두 6명. 모두가 여성이고 40대 중반의 나이. 장거리 걷기 기획을 하며 느낀 것은 참여자들의 대부분이 중년 이상이며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것이다. 남성의 참여를 기대했던 나는 왜 여성이 더 많을까 생각해 봤다.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 이유보다는 남성의 참여 저조 이유가 더 뚜렷한 듯했다. 한국의 남성들, 직장 생활에 찌들고 가장의 무게로 늘 축 처진 어깨로 다니는 그들의 모습에 인생이 그다지 재밌어 보이진 않는다.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자기 계발이나 창의력 등이 빈약한 편이다. 대신 조직 순응력은 뛰어나 대과 없이 사회생활을 잘해나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바뀌었다. 50살을 넘기기 전에 퇴직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조직에서는 충실한 사람보다는 창의적인 사람을 원한다. 중년에 창의력을 다시 계발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의 나를 다 버려야 가능하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나? 나를 지금껏 버티게 한 것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졸업장이고 얄팍한 경험이라며 그 끈을 움켜잡고 놓질 않을 테니 말이다.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래커가 20년 전에 이미 말한 중장년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시작,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래슬릿이 말한 The third age 개념은 50살을 시작하는 세대가 다시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제3의 연령기를  말하는 것이다. 여생을 생각하는 노인인 제4의 세대는 80살을 넘는 나이를 말하고. 그러고 보면 제3의 인생 기간을 55살부터라고 봐도 20년이 넘는다. 이 긴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오늘도 이걸 고민하며 하루를 살고 있다. 남들은 30년 넘게 직장 생활도 해서 먹고 살 큰 걱정 없고 나이도 있으니 쉬엄쉬엄 살아도 된다고 하지만 할 일이 없이 어찌 앞으로 20년을 놀면서 지낸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The third age 때에도 job이 있어야 한다. The third age 시대를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이 많겠지만 그 첫 번째는 건강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50대 초반부터 시작한 마라톤으로 잔병치레 없이 지금도 과거의 기록만큼 달리고 있다. 건강하니 의욕이 넘친다. 활력이 넘치니 뭐든 해야 한다. 그래서 고민도 많다. 몸과 머리를 쓸 곳을 찾으려 하니까.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는 job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일자리가 많질 없다. 그래도 나는 매일 생각하고 움직이고 새로운 사회 트렌드를 공부한다. 그리고 제3의 인생 실천계획을 기획한다. 몸을 쓰는 job도 책상머리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상를 경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힘들게 뛰고 걷는 것도 기획한다.

  사실 나는 걷는 것보다 뛰는 걸 좋아한다. 운동의 역동성으로 보나, 뛰고 나서 느끼는 쾌감으로 보나 역시 마라톤이다. 마라톤만큼은 아니겠지만 장거리로 걷는다면 조금은 운동한 맛이 날 것 같아 함께 걷는 장거리 도보를 기획하게 되었다. 7월 31일 별밤 한강 도보여행은 40km를 야간에 걷는 것이었다.

한밤의 한강변 풍경

  걸으며 서로 얘기한다. 왜 이런 야밤에 힘들게 걷냐고. 모두 웃기만 한다. 사연이 있겠지. 나는 묵묵히 앞에서 길을 이끌어준다. 30km 지점을 지나며 다들 힘들어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거의 다 왔어요' 단지 이 말. 여성 한분은 발바닥이 불이 나는 것 같다고 운동화를 벗고 싶단다. 벗고 걸으라 했다. 한강변 자전거 보행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 있어 맨발로 걸어도 된다. 신발을 벗고 걸으니 마치 어린 시절 개울가 나와서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웃는 미소는 소녀의 미소다. 걸으며 많은 말을 하긴 어렵다. 힘들기도 하지만 초면인 사람들이기에 말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으며 느끼는 공감, 그것이 각자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든 건 분명했다. 나도 걸으며 나의 The third age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날이 밝고 6시가 되어 혼자 집으로 돌아가며 내가 느낄 그 무엇에 대해 기대해 봤다.

  '지금 시간이 밤 3시 좀 넘었는데 지금 시간에 한강변을 걷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요? 아마 인생에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없을 거예요' 내가 한마디 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다. 특히 중년의 여성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한강변을 이 시간에 혼자 걸을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다시 이런 기회를 갖기를 바랐다. 일상의 루틴을 벗어나야만 나의 몸을 감싸고 있는 군더더기를 털어낼 수 있고 빈 머릿속에 도전과 창의, 꿈을 담을 수 있을 테니까. 나이를 먹으며 꿈을 잊는 게 왜 당연한 것인가? 그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우린 지금까지 살아오며 담았던 하드웨어를 좀 비워야 한다. 1,000G 뇌의 하드에 과거의 쓸데없는 기억, 지식들이 꽉 차서 새로운 것이 들어갈 틈이 없다. 채우기 위해서는 하드에 저장된 것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컴퓨터 저장 이치와 다름이 없다.

  별밤 한강 도보여행은 저장 하드를 비우는 시간이었다. 완주 후 다들 표정이 밝았다. 저장 하드에서 불필요한 자료를 나열하여 삭제하는 과정이 10시간을 걸어온 시간이다. 중장년의 저장 하드에는 버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우리는 뭘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 저장 하드를 비우는 연습을 하라고 중장년에게 권하곤 했다. 하지만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참여한 중년의 여성들은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완주 후 그들의 표정에서 빈 usb공간을 볼 수 있었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며 아쉬운 거 한 가지는 40km를 이 밤에 뛰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달렸다면 아직도 남아있는 나의 불필요한 저장 기록까지 다 삭제되어 나의 usb가 텅 비어 있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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