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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Feb 14. 2023

매일 고민되는 점심시간

회사인턴 생존 일기

    내가 출근하는 곳은 성수동이다. 점심때마다 한 무리씩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 모습이 해맑다.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나도 한때는 저랬는데……'하며 지난날을 떠올리곤 한다. 이곳은 핫플레이스이니 만큼 커피나 음식값도 만만치 않다. 출근하고 이틀 임원과 점심식사를 한 이후로 나는 점심에 혼자가 되었다. 직원들과 아직 서먹서먹해서 내가 먼저 청하기도 그렇고 직원들은 나이 차이 많은 나와 식사테이블을 마주하고 앉는다는 불편함이 있는 거 같고. 내가 퇴직할 무렵 나는 직원들에게 점심식사 함께를 강요하지 않았다. 저녁 회식은 더더욱 그렇고. 그때에도 나는 식사 종류나 식사 패턴이 젊은 직원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 직원들도 점심을 간단히 샐러드만 먹거나 살빼기 위해 아주 거르는 직원도 있는 듯 보였다. 직원들은 시니어 세대인 내가 당연히 무슨 탕이나 찌개 종류 같은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젊은 직원들이 나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먼저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강 이렇다. 그럼 내가 먼저 그들에게 식사 제안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지? 서먹서먹한 것도 있지만 우선 돈 때문인 게 분명하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젊은 사람들과 식사나 술자리에 나이 많은 사람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사고에 갇힌 나는 퇴직 후에도 직장 생활하는 후배들 식사 자리에서 계산을 하는 바람에 아내에게 혼난 적이 여러 번이다. 후배들이 낸다는 데도 굳이 내가 내겠다며 카드를 내미는 것은 허세며 만용인 걸. 후배들과의 술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후환을 없애려고 카드 영수증을 찢어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영수증을 들여다보는데 숫자가 대문짝만 하게 내 눈에 박힌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지만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점심 같이 가자고 하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다 따라오면 계산이 얼마나 나오는 거지?' 재빨리 머리를 굴리다 '앗 여긴 핫플레이스 동네잖아?' 정신이 번쩍 든다. 인턴 주제에 직원들 밥값까지 지불하는 것이 웃기는 행동이지만 계산할 때만큼은 인턴이라는 자기 주제는 잊고 시니어라는 허세만 내세우며 그 허세의 증명으로 카드를 내밀거 같은 모습이 상상되며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스멀스멀 고민이 몸에 스며든다.

"준석님 자연님 석철님 오늘 점심 같이 갈래요?"

내 자리에서 가까이 앉은 그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목소리의 음율은 치사하다. 우리는 한층 사무실에서 다 같이 근무한다. 조금만 말하는 소리가 커도 다 들린다. 그래서 세명 외에는 들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속삭였다. 사실 다들 자기 일에 열중이기에 내가 좀 크게 한다 해도 관심 가질 직원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12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모여 밥 먹으러 나간다.

세명의 직원이 앞서고 내가 뒤따라 회사문을 나섰다.

"우리 스파게티 먹을까? 저번에 먹었던데 어때?"

준석님의 말이 귀에 스치자 '스파게티 12,800원 네 명이면?' '스파게티 먹고 커피도 하면? 그럼 4,500원 곱하기 4는?'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아니야 종건님도 같이 가니깐 냉면에 찐만두는?"

다시 내 머리는 냉면 11,000원 네 개에 찐만두 하나 추가하면?'하며 다시 계산기를 두들긴다. 셋은 걸으며 뭘 먹을까 즐겁게 말하는 데 내 눈에는 식당 입간판의 가격표가 더 크게 들어온다. 그렇게 걷다가 자연님이 나에게 말했다

"종건님 뭐 좋아하세요?"

"아~~ 네…… 저는 아무거나요"

버벅대며 말했지만 말투가 꼭 뭐 훔치다 걸린 도둑 폼새다 .

"우리 햄버거 먹을까 하는데 종건님은 햄버거 안 좋아하죠?"

내가 안 좋아한다면 그들은 아마 메뉴를 계속 고민했을 것이다. 그들이 햄버거를 제안한 것은 내가 계산하는데 부담을 덜 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런 결정을 하며 혹시나 내가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른 저렴한 점심식사로 다시 찾으려고 한거고.

"저 햄버거 좋아해요~~"

달리기 운동을 마치고 가끔 맥도널드에 간다고 덧붙여 설명한 건 내가 억지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걸 부연 설명해 주고 싶어서였다. 맥도널드. 젊은 직원들은 가끔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듯했다. 문을 열자마자 내가 앞서 걸어 비어있는 한대의 키오스크 앞에 섰다. 그리고 그들에게 뭘 먹을 건지 말하라고 하며 터치를 시작했다. 나의 빠른 터치 동작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종건님 대박이다"

"저는 상하이버거에 커피요" "저는 맥치킨모짜렐라하고 콜라요" "저도 같은 거로요"

나는 그들이 원하는 메뉴에 따라 터치를 계속했다. 그리고 내 건 핸드폰 맥도널드앱을 열어 할인 쿠폰으로 주문하는 것으로 모든 주문을 마쳤다. 그렇게 합이 23,500원. 맥도널드의 가격을 알고 있는 나는 그들이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저렴한 햄버거 세트를 시킨 걸 안다.

"종건님 완전 신세대다. 우리 아빤 여기 오면 아마도 헤매다 그냥 나갈걸!"

"감사합니다 종건님!"

맥도널드에서 나는 부담없는 지출로 한턱 냈다. 키오스크를 통해 달라진 요즘 시니어 세대의 이미지도 심어 주고. 햄버거를 먹으며 그들은 다음엔 제가 사드리겠다며 한 마디씩 했다. 애초에 그들은 얻어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은 직장인들에겐 꿀맛 같은 시간이다. 친한 동료와 속 깊은 얘기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는 식도락의 즐거움도 있고 누군가는 혼자만의 휴식시간이기도 하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산 후에 나는 세명의 직원들로부터 햄버거보다 더 비싼 식사를 얻어 먹었다. 점심시간 혼자서 했던 유치한 고민, 공짜로 먹을 젊은 직원은 아무도 없는데 지레 쓸데없는 상상이나 하고.

    그런 고민은 사라졌지만 공간과 시간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점심시간 나의 고민은 매일 된다. 공간의 문제는 메뉴의 문제와 상통하는 것이고 시간의 문제는 식사 방법과 연관 있는 것이다. 두 가지 다 배를 채운다는 시니어 세대의 점심식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요즘 젊은 직원들의 빵과 커피가 있는 카페 점심식사에도 가끔 동참한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집밥 먹을 건데 점심 한 끼 이렇게 먹는다고 죽나 하면서 자리를 함께 한다. 돈 때문에 머리 굴리는 머릿속 계산기는 없어진지 오래다.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 자리(식당의 분위기)가 대화 분위기나 정서적 안온감을 느끼기에 확실히 좋다. 무슨 탕이나 찌개집은 배를 채우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해 대화 내용도 뭐 특별할 게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 가는 기회를 만들려고 눈치를 본다. 그렇게 좋은 고민을 한다.


    아직 규모가 작은 기업이다 보니 직원들 급여가 많지 않다. 나는 가끔 직원들과 점심식사 후 내 지갑을 연다. 그들이 만류하지만 그래도 카드를 내민다. 몇만 원 정도는 내가 계산해도 될 정도니까.

    젊은 직원들과 생활하다 보면 의외로 알뜰하다는 것에 놀란다. 소비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다. 허세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나와는 다르다. 젊은 직원들이 생각하는 점심시간과 나의 점심시간 단어는 같은데 의미는 많이 틀리다. 젊은 직원들의 점심시간에는 뭔가가 들어 있다. 나는 그 뭔가를 같이 느끼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할 꺼리를 만드느라 고민한다. 요즘 나는 점심시간에 꼭 한식을 찾지는 않는다. 작고 아담한 베이글 집에서 진한 커피와 함께 혼자서 한 시간의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시니어에겐 무척 생경한 자유로움이다.

"희진님 오늘 점심약속 있어요?"

"아니요 왜요 종건님!"

"베이글 어때요? 저기 모퉁이 돌아 작은 베이글집 제가 어제 먹었는데 맛있어요. 이따 같이 가실래요?"

베이글집에서 둘이 대화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상큼한 맛의 베이글에 진한 커피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종건님"

"아니오 담에 사주세요"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밀치며 내 카드를 내밀었다. 요즘은 점심시간이 고민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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