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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의 세상. 지금은 너만의 세상을 존중한단다

작은 딸과의 대화

by 김쫑

2007. 4. 12

발신 : 작은 딸

수신 : 아빠

제목 : 기분 다운


아빠 저 공부 여태까지 지금 시각 12시(밤) 공부했어요. 공부하며 늦게 아빠랑 네이트온에서 만났으면 했는데 아빠가 나가버리셨어요 ㅠㅠ. 내일부터 중간고사 시험을 봐요. 앗! 벌써부터 긴장되네. 저 전교 50등 안에만 들었으면 좋겠어요. 내일은 영어 듣기평가예요. 엄마랑 영어공부 했어요. 눈높이도 해야 돼요. 하기 싫은데~~ 훌하훌하.

오늘 혜정이랑 만났는데 엄마아빠랑 싸웠나 봐요. 그래서 3시에 만났다가 6시 반까지 혜정이가 저를 붙들고 있었어요. 오래 있다가 왔다고 엄마한테 혼났어요.

근데 아빠 편지지가 왜 고따구야? 이쁜 걸루 좀 해요.

안녕히 계셈. 사랑하셈요~~!

*비밀이야기*

엄마가 오늘 제 마음을 속상하게 하는 그런 점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울었더니 뭐라고 하셨어요ㅠㅠ. 마치 제가 쫄아서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 집중도 잘 안되잖아요 눈치 살피느라. 이런 때는 진짜로 아빠가 그리워요 아빠~~.


>> 언니는 늘 전교 1등을 했다. 언니가 중3일 때 예슬이는 언니 중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니 언니가 이슬이니?' 이렇게 물어볼 때 예슬이는 엄청 부담을 느꼈으리라. 그런 것도 모르고 난 '언니 땜에 공부하기 좋을 거야' 이렇게 말했던 거 같다.

어디 가면 어디 가니? 누구 만나러 가니? 언제 들어올 거니? 물어보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을 나이인데 그래도 작은 딸은 꼬박꼬박 대답해 줬다.

아이들이 고민이 있을 때 부모를 찾기보단 친구를 찾는다. 친한 친구가 엄마아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속상해서 예슬이를 불렀던 거 같다. 장장 3시간 반 동안 14살 나이의 고민을 얘기했을 것이다. 그런 대화의 시간이 성장의 시간이었을 텐데 시계를 보며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하며 조바심을 갖고 앉아 있었을 작은 딸의 모습에 지금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몇 시간 더 같이 있다 집에 와도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지금 나는 어떤가 돌아본다. 혹시 예슬이의 여유만도 못한 건 아닌지 말이다.


PS : 그 당시 카톡이 없었다. 네이트온이라는 메신저를 많이 사용했다. 예슬이는 늘 메신저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하지만 당시 나는 숙소에 들어오는 저녁 7시 전에는 메신저를 사용할 수 없었다. 숙소와 학과사무실에만 인터넷이 되던 시절이었다.

새해 들어 새로운 구상을 하며 고민이 많아질 때 나도 독일에 있는 친구같은 작은 딸, 예슬이가 진짜 그리워진다 진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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