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과의 대화
2007. 08. 26
발신 : 아빠
수신 : 작은 딸
제목 : 기운 내자 우리 이슬이
이슬이 오늘 통화하는데 너무나 기운이 없이 느껴져 아빠 맘이 영 그러네. 언니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 아빠가 언니한테도 얘기 많이 하니깐 괜찮을 거야. 언니도 나름대로 공부가 신경 쓰이고 하니깐 그러는 것도 있어. 엄마 아빠는 이슬이가 효심이 깊고 심성이 착하고 어떤 땐 언니도 이해하려고 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이슬이가 정말 사랑스러워.
이슬이는 아빠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빠가 이렇게 중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건 이슬이의 장래를 위해 아빠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깐 그러는 거야. 아빠는 여기서 열심히 공부한 후에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해. 이슬이하고 언니가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 잘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인재가 되게끔 뒷바라지하는 게 아빠의 행복이기도 해.
이슬이 아빠랑 같이 기운 내자. 인생은 마라톤이야. 앞으로 좋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 조금 맘이 아프고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이겨내고 즐거운 맘을 갖고 해 보자꾸나. 이슬이는 지금도 잘하고 있어. 아빠 글 읽고 기분 좋아질 수 있지? 그래 착한 우리 작은 딸. 그럼 이슬이 답장 기다릴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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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생활하며 아내보다 두 딸에 대해 걱정이 더 많았다. 큰 놈은 중3으로 공부를 잘했지만 특목고 진학을 앞두고 있어 예민한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언니와 비교되는 작은 딸은 스스로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착한 심성이라 속으로 참고 지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그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하긴 힘들었다. 가끔 통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딸들의 목소리를 통해 집안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작은 딸은 아빠의 목소리를 자주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더 부담스러웠다. 작은 딸과 시무룩하게 통화를 마치고 나면 내가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통화를 마치면 늦은 밤시간 기숙사를 나와 학교를 어슬렁거리며 걸었던 기억이 많다. 그리고 가끔 그 발길은 학교 앞 허름한 맥주 집에 닿곤 했고.
PS : 그 당시 학교 앞 맥주를 파는 곳은 우리나라 1970년 대 시골마을 구판장의 모습과 비슷했다. 내가 즐겨먹던 안주는 돼지고기에 야채를 넣고 들들 볶아 낸 중국식 돼지고기 야채볶음. 칭다오 맥주가 가게 한쪽에 사람 키만큼 쌓여 있고 주인은 박스 안에 손을 넣어 맥주병을 꺼냈다. 술을 먹지 않기로 작정하고 공부하러 갔지만 한달에 두세 번 이렇게 맥주를 마셨다. 특히 작은 딸과 통화하고 난 후에. 두세 병 정도. 집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마시는 맥주가 그나마 쓸쓸한 맘의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먹으면 한국 돈으로 3천 원 정도?? 큰 맥주 한 병이 4위안(그 당시 한국 돈으로 600원)이었던 거 같다. 1년 동안 중국에 머물며 가장 많이 갔던 곳이 대학교 도서관, 다음으로 허름한 그 술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