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과 짜증. 그게 때론 예술혼의 바탕이 된다

작은 딸과의 대화

by 김쫑

2007. 09. 09

발신 : 작은 딸

수신 : 아빠

제목 : 짜증 나 진짜로.


아빠! 저 금요일에는 폭발했어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폭발했어요. 소리 지르면서 막 울었어요. 학원도 안 갔어요. 그런데 이렇게 난리를 쳐도 아무 의미가 없더라고요. 아무도 내편 안 들어주고... 아빠한테 메일 보내는 데도 살살치라고 하고 진짜 짜증 나 죽겠어요. 진짜로 너무 힘들 때가 있어요.

후~~ 아빤 모를 거예요. 저 진짜로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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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1학년. 감성적인 작은 딸은 성적이라는 굴레를 버거워했다. 의무감에 수학 학원을 다녔지만 머리를 감싸곤 했다. 메일을 받았을 때 걱정되어 아마도 전화했을 것이다(기억은 없다.) 18년 전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작은 딸 곁에 있어 하소연이라도 들어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예민한 성격의 작은 딸.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보다는 아빠를 찾았다. 나는 짜증을 받아주며 달래곤 했다. 그리고 작은 딸의 장점을 들춰내며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며 다독였다. 그러는 사이 부녀의 품사이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눈물을 닦아주고 나면 작은 딸의 손을 잡고 집 근처 떡볶이 집으로 향하곤 했다. 걸으며 나는 늘 엄지를 치켜세우며 얘기했다. "으뜸! 우리 이슬이, 으뜸이야!"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성적(이성적인 부분)으로 줄 세우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감성적인 부분은 작은 딸이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PS : 작은 딸과는 어린 시절부터 참 많은 얘기를 했다. 지금도 그렇고. 지금 작은 딸은 독일에 산다. 공부하며 작가활동하지만 카톡은 항상 열려있고 작은 딸이 작품을 구상하며 설치물 등을 자문할 땐 우린 서로 진지한 토론을 한다. 작은 딸 작품이 올해 세계 3대 단편영화제인 '독일오버하우젠 영화제 M.V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KBS뉴스 기사로도 났다. 얼마 전 귀국하여 개인전을 준비하며 나는 전시장에 자질구레한 설치를 하느라 일주일을 작은 딸과 함께 땀을 흘렸다.

전시 준비하면서 작은 딸의 예민함은 극에 달한다. 그것은 작은 딸 예술 혼의 발현이며 진정성을 표현하는 의식의 준비과정이다. 그런 분위기에선 나는 작은 딸의 지시를 정확히 실행해야 하고 때론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가끔 내 멋대로 해서 혼나기도 하고. 함께 한 그런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딸과 함께 준비하는 개인전. 어느 집에 이런 부녀가 있을까 싶다.

개막일 전날 전시장을 보며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작은 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수고 많았네 울 딸~~'하니, 작은 딸은 '아까 짜증내서 미안해 아빠! 근데 작품 활동하는데 아빠 도움이 정말 .' 라고 한다. 나는 아버지지만 작은 딸의 어씨로서 작업에 참여하며 작은 딸과 친구가 될 때 너무 행복하다. 작은 딸 덕분에 예술세계 언저리라도 밟아볼 수 있어 내 삶이 폭신폭신한 감성에 젖게 되는 거 같다. 시니어 나이에 독선적 이성만 남은 마른 가지에 감성의 새 순이 돋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나도 어떤 구상(?)을 할 때 가끔 예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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